소년원 아이들에게 책으로 말 걸다 [책과 삶]

선명수 기자 2021. 1. 2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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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
사계절 | 224쪽 | 1만3000원

“책을 펴면 낯선 세계로 달려갈 수 있고, 다른 존재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소년은 자신의 일상 너머의 것을 조금은 욕망할 줄 알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택배’란 단어에서 주문한 물건을 기다리는 설렘의 감정을 떠올리지만, ‘까대기’의 고통부터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몸으로 그 일을 해본 이만 알 수 있는, 노동이 남긴 구체적인 몸의 감각이다. 여기 그런 소년들이 있다. 어떤 소년은 “먹고사는 일의 급급함”을 반복해 말하고, ‘일’이란 단어에서 꿈이나 자아실현 같은 싱그러운 말보다 그저 힘든 노동을 떠올린다. 또 다른 소년은 열일곱이 되도록 누군가 책을 읽어준 적도, 단 한 권의 책도 읽어본 적이 없다. 삶의 신산함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 여러 이유로 사회에선 ‘학생’으로 살기 어려웠지만 소년원에 갇히고 나서야 비로소 ‘학생’이 된 아이들. <소년을 읽다>는 소년원에서 국어를 가르치게 된 선생님과 그곳 아이들이 함께 책을 읽으며 ‘환대’를 배워나간 1년의 성장 기록이다.

<소년을 읽다>는 소년원에서 국어를 가르치게 된 선생님과 소년원의 아이들이 ‘환대’로 서로의 마음을 물들인 1년의 성장 기록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저자 서현숙은 교육청 파견교사로 2019년 한 해 동안 소년원에서 국어 수업을 하며 책을 통해 그곳 아이들의 마음에 다가간다. 사계절 제공
파견 교사로 1년 동안 국어 수업
책 통한 원생들과 교감 과정 그려
갇히고 나서야 ‘학생’이 된 아이들
글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환대’를 배워나간 성장의 기록

저자 서현숙은 인생의 절반을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살아온, 평범한 국어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소년원은 그런 그에게도 낯설고 두려운 곳이었다. ‘학교’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해도 소년원은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정 교육을 하는 법무부 소속 특수교육기관이다. 저자는 의무교육을 마치지 못한 아이들이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청 파견 교사로 2019년 한 해 동안 소년원에서 국어수업을 하게 된다.

부담감이 가득했던 첫 수업에서 만난 건 ‘초능력 소년들’이었다. 매주 2시간씩 만나는 예닐곱 명의 소년들은 “오늘은 열 장만 읽자”는 교사의 말에 단 2분 만에 스무 쪽을 휘리릭 읽어낸다. 이들에게 독서란 낯선 경험이었고 시늉만 한 것이다. 첫 수업이 이렇게 ‘실패’로 끝난 뒤 선생님은 전략을 바꾼다. 돌아가며 소리내 책을 읽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이들은 “서로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된다.

소년들은 처음으로 책에서 즐거움을 찾게 되고, 자신들도 ‘독자’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읽은 책의 작가를 수업을 통해 만날 수 있음에 설렌다. 작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서서히 ‘환대’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것은 “나도 타인도 소외시키지 않는 연습”이자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연습”이다.

책을 읽고 인상 깊은 문장을 나누며, 선생님은 아이들의 구체적인 삶의 이력, “마음의 맨살”을 발견한다. 때로 표정이 사라지는 아이들 얼굴에서 “주인공이 되어본 경험의 빈곤”을 읽어내기도 하고, 어쩌면 이 아이들이 “말썽꾸러기보다 투명인간의 역할을 기대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점을 아프게 상기한다. 어쩌면 이는 ‘소년원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사회에 나오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투명인간’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 소년원 아이들과 네 계절을 통과하며 저자는 이런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확인하면서도 이들에게 ‘책으로 말 걸기’를 멈추지 않는다. 저마다 안온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극심한 가정폭력을 경험했거나 형기를 마쳐도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들, 교육보다는 온갖 노동의 이력을 몸에 새긴 아이들이 ‘자신을 돌보며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소설을 읽고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찬현이가 “그 생각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삶이었으면, 그것이 가능한 사회였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고, 시를 읽을 때 예뻐지는 강준이에게 시가 그의 외로움, 삶의 고단함을 매만져주길 바란다.

“이별이 빨리 찾아오는 것이 기쁘고 다행스러운 관계”가 있다면, 소년원이 그렇다. 소년원에서의 시간은 그들 인생에서 “삭제하고 싶은 순간”이고, 그 숨기고 싶은 시간의 일부에 국어 선생님인 작가 자신도 있다. 작가는 그런 생각에 헛헛함과 서늘함을 느끼면서도, “이 서늘함이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것을 안다. “다음에는 ‘이런 곳이 아닌 곳’에서 만나요”라는 아이들 말에 위로를 받는다.

작가는 소년원에서 만난 아이들을 변호하거나 함부로 동정하지도, 그들이 죄를 지어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는 점도 잊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의 고생한 손을 보고 마음 아파하는 아이를 보며 “이런 ‘고운 마음’으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까?” “이곳에는 ‘어떤 부류의 마음’을 지닌 소년이 오는 걸까”라는 고민과 혼란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다만 그는 이 아이들이 죗값을 치르는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범죄를 저질렀어도 “영혼의 뿌리까지 어쩌지 못하게 병든 존재는 아닌” 아이들은 사회의 구성원이자 이웃으로 다시 서게 될 것이고, 이들에게도 ‘좋은 삶’을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경험해본 적 없는 ‘좋은 삶’을 욕망하게 하는 것, 그게 사회와 어른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한다.

“저를 늘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운이의 편지는 수신자인 작가뿐 아니라 읽는 이의 마음까지 뻐근하게 한다. 단죄와 외면은 쉽지만 환대는 어렵다. 당장의 악행에 대한 분노와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이 쌓여 그 존재가 쉽게 지워지기도 한다. 그 단절의 벽을 넘어 환대받지 못한 소년들에게 조금씩 다가서는 선생님의 세심한 노력이 값진 까닭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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