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5%의 노력가 / 홍인혜

한겨레 2021. 1. 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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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거하는 프리랜서로 살며 얼마 전 모처럼 밖에 나갈 일이 있었다.

나는 늘 5%의 게으름으로 많은 일을 그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결정한 나의 신년 목표는 '5%의 부지런함'이다.

낮에 집에서 티브이로 영화를 볼 때, 재생 직전 벌떡 일어나 커튼을 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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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  홍인혜 시인

칩거하는 프리랜서로 살며 얼마 전 모처럼 밖에 나갈 일이 있었다. 외부 활동이 끊어진 이후 늘어진 시곗바늘처럼 사는지라 외출 준비에도 늦장을 부리고 말았다. 내가 ‘느리광 부렸다’라고 표현하곤 하는 종류의 태만함이었다. 좀 더 눕자, 좀 더 졸자 하다 결국 시간에 쫓겨 헐레벌떡 집에서 뛰쳐나왔다. 나부끼는 앞섶을 달려가며 여몄을 정도로 정신없는 외출이었다.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안심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이어폰이 없었다. 급히 나오느라 빼먹고 온 것이다. 교통수단에 몇시간은 실려 다녀야 하는 날이었는데 소중한 고막 친구를 집에 두고 오다니. 엄청난 낭패였다.

딱 5분만 일찍 준비를 시작했어도,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나에게 5분의 여유만 더 있었어도 이어폰 정도는 챙기고 나왔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 긴 공허의 시간을 음악으로 채울 수 있었을 텐데. 문득 5분을 아쉬워하는 이 마음에 기시감이 들었다. 근래 내 일상이 경미한 게으름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언제나 5분 혹은 5%였다. 나는 늘 5%의 게으름으로 많은 일을 그르치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며칠 전에도 요리를 하며 도마 설거지가 귀찮다는 이유로 캔에 든 햄을 꺼내지 않고 칼질을 하다 찌개에 햄을 통째로 빠뜨린 적이 있다. 사방 벽에 붉은 국물이 튀어 닦고 치우느라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설거지를 할 때는 또 어떤가. 소매를 단단히 걷는 것이 귀찮아 대충 추키고 하다가 오후 내내 젖은 소매로 지내곤 했다. 업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저곳에 글을 기고하며 사는데 노트북에 몇개, 데스크톱 컴퓨터에 몇개, 태블릿 피시에 몇개 하는 식으로 파일을 산발적으로 흩어놓아 이따금 글이 유실되곤 한다. 작업을 마치고 파일을 한곳에 아카이빙하는 5분 정도의 노력을 빼먹어서 벌어지는 일이다.

5%의 부지런함을 더하지 못해 50%를 수습하며 사는 삶이라니.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결정한 나의 신년 목표는 ‘5%의 부지런함’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면 된다. 낮에 집에서 티브이로 영화를 볼 때, 재생 직전 벌떡 일어나 커튼을 칠 것. 고작 집을 어둡게 한 정도인데 두어시간 영화관에 온 것처럼 몰입감이 커질 것이다. 장을 보고 와서는 종이에 식재료를 메모해 냉장고에 붙여둘 것. 문짝에 붙은 몇줄의 메모 덕에 냉장고 어느 귀퉁이에서 절명하는 먹거리가 줄어들 것이다. 생수 열여섯병이 배달되자마자 커터 칼을 들고 라벨을 한꺼번에 떼어둘 것. 이 5분의 수고로 분리 배출할 때의 귀찮음이 대폭 감소할 것이다.

영혼이 리셋된 듯 부지런해지자는 원대한 계획은 감히 품지도 않는다. 그저 평소보다 5%만 에너지를 더 쓰자고 다짐해본다. 말하자면 ‘음식을 먹자마자 설거지를 하는 것’은 5%의 노력으론 턱도 없다. 부른 배만큼 커진 중력을 거스르며 일어나 싱크대 앞에 서려면 초인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릇들을 싱크대에 가져가 물이라도 부어두는 것은 5%의 노력으로 충분하다. 물론 이 행위를 하지 않으면 후에 기름때가 말라붙을 그릇을 설거지하며 이를 갈게 되고 말이다.

여전히 나의 몸은 습관적으로 퍼지고 늘어지려 한다. 그럴 때마다 신년 목표를 되새기며 5%의 에너지를 짜내본다. 외출했다 돌아와 겉옷을 아무 데나 부려두지 않고 옷장에 걸어두고, 요리를 위해 양파를 까며 한두개를 더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책을 읽다 좋은 착상을 하면 머릿속에 흩뿌려두다 증발시키지 않고 핸드폰에 손을 뻗어 메모해둔다. 이 5%의 자투리 노력들이 야금야금 모여 하루를 100% 바꿀 날을 꿈꾸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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