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 뉴노멀 아니 노노멀 / 정영목

한겨레 2021. 1. 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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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많은 사람이 뉴노멀(new normal)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전에는 주로 경제위기 뒤에 새로운 경제적 표준을 가리킬 때 사용했지만,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일상 행동까지 포괄하는 표현으로 확대되어 쓰이는 듯하다.

뉴노멀이라 해도 중독의 대상이 바뀔 뿐 다시 정상과 비정상으로 가르며 중독자처럼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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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정영목ㅣ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많은 사람이 뉴노멀(new normal)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전에는 주로 경제위기 뒤에 새로운 경제적 표준을 가리킬 때 사용했지만,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일상 행동까지 포괄하는 표현으로 확대되어 쓰이는 듯하다. 어느 쪽이든 “백 투 노멀”(back to normal), 즉 그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태도는 공통이다.

이전의 익숙한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그래서 그것이 정상, 즉 노멀이고 현재는 비정상이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더라이어스 마더 감독의 <사운드 오브 메탈>이다. 몇년 전 약물중독에서 벗어난 드러머 루빈(리즈 아메드)과 어머니의 자살 이후 집을 나온 보컬 루(올리비아 쿡)는 연인 사이로 2인조 메탈 밴드를 구성하여 캠핑용 자동차를 집 삼아 떠돌면서 공연을 하며 산다. 그러나 루빈이 갑자기 청력을 잃으면서 둘의 삶은 비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공연을 망치면서 삶의 중심이 사라지고, 그와 더불어 루빈이 담배를 다시 물고 폭력적인 면을 드러내는 등 중독의 증후들이 나타나면서 둘의 관계도 단절된다. 이 상태에서 제목이 말하는 메탈의 소리란 일차적으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터져 나오는 헤비메탈 음악의 소리, 루빈에게 정상적인 과거를 상징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중독치료소를 겸한 청각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간 루빈의 정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집요한 노력이 이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물론 루빈에게 정상이란 청력, 음악, 연인을 회복한 상태이며, 그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 또한 대개는 정상적이라 볼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원안과 각본까지 담당한 마더 감독은 중독이라는 문제를 끌어들여 영화를 다른 수준에 올려놓는다. 루빈이 청력을 잃고 당황하는 모습을 그럴 만한 반응이라고 감싸 안지 않고 단호하게 금단 증상처럼 다룰 때부터 느껴지는 것이지만, 감독은 루빈이, 또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익숙한 것에 중독된 상태가 아니냐고 묻는 듯하다. 실제로 루빈이 온 힘을 기울여 정상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영화의 구루 역할을 하는 청각장애인 공동체 지도자 조(폴 레이시)는 그가 중독자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한다.

이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영화는 묻는다. 루빈이 그렇게 복원하려고 애쓰는 관계가 과연 사랑인가? 우리는 영화의 음향을 통해 그 답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한다. 관객은 이 영화에서 루빈의 귀로 소리를 듣는데, 루빈이 정상을 복원하려 할 때 결정적 수단이 되는 인공 달팽이관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는 메탈의 소리이기는 하나 정상의 모조품, 거슬리는 금속성일 뿐이다. 결국 루빈이 내리는 결정은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가겠다는 발상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가 청각장애인 공동체에서 보낸 시간이 영화에서 결코 낭비가 아니었음이 확인된다. 이 공동체는 자신들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보조 장치를 통해 정상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거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가 정교하게 조합해놓은 대로, 사랑, 청각, 중독에서 루빈의 금단적 각성은 동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첫 장면의 메탈 소리와 대비되는 소리 아닌 소리를 듣는 루빈에게 떠오르는 것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찾아야 하는 뉴노멀일까? 영화의 논리는 그렇다고 답하지 않는다. 뉴노멀이라 해도 중독의 대상이 바뀔 뿐 다시 정상과 비정상으로 가르며 중독자처럼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지막에 루빈의 눈앞에 보이는 파란 하늘은 뉴노멀이 아니라 노노멀(no normal)의 사유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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