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취임식에 초청받은 대만, 국교 다시 수립?

2021. 1. 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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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고양이전사(戰猫)와 늑대전사(戰狼)

[김영신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HK연구교수]
퇴임한 선배 한 분이 개인장서를 모교 도서관에 기증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연락을 취하였다. 오래전 빌려간 책을 돌려받기 위해서였다. 며칠 뒤 구웨이쥔(顧維鈞, Wellington Koo, 1888-1985)의 회고록 13책 가운데 8-10책 3권을 돌려받았다.

영특한 고양이에 비유된 외교관

청나라 말엽 장쑤성 자딩현(江蘇省 嘉定縣, 현 상하이시 자딩구)에서 태어난 구웨이쥔은 미국으로 유학 1912년 콜롬비아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학위를 받은 해 귀국, 당시 중화민국 대총통이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영문비서 겸 외교비서를 맡았다. 이후 북양정부에서 국무총리와 서리 대총통을 역임하였다. 국민정부시기에는 주프랑스・영국・미국대사, 주국제연합수석대표, 헤이그국제사법재판소 부원장을 역임하여 중국 현대사상 가장 탁월한 외교관으로 평가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뒤인 1919년, 구웨이쥔은 중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전후 세계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하였다. 당시 일본은 전승국임을 내세워 패전국인 독일이 산둥(山東)에서 누리고 있던 일체의 권익을 승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구웨이쥔은 기독교도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포기할 수 없듯이 중국도 공자(孔子)의 탄생지인 산둥을 포기할 수 없다며 강화회의에 참가한 구미 각국 대표들을 설득하였다.

회의장 분위기는 중국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구웨이쥔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일본대표 마사노 노부아사(牧野伸顯)와 수십 회합의 설전을 벌여 마사노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설전을 지켜본 미국대통령 우드로 윌슨, 프랑스총리 클레망소, 영국수상 로이드 조지는 구웨이쥔의 자질과 품격에 매료되었다.

클레망소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영특한 고양이가 쥐를 다루듯 하였다"고 당시 광경을 묘사하였다. 국제여론으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은 구웨이쥔에게는 중화민국 제일의 외교관이라는 미명이 붇고, 이로부터 고양이전사(戰猫) 외교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늑대전사(戰狼) 외교의 도발

최근 수년 사이 중국 정부와 외교관들이 중국에 대한 비판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심지어 외교 관례에 벗어난 전투적인 언행을 사용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런 중국의 외교형태를 빗대어 늑대 외교 혹은 늑대전사 외교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늑대전사 외교라는 표현은 2017년 중국에서 상영된 영화 <전랑 2>(戰狼 2)에서 유래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중국을 모욕하거나 위해하려는 자는 지구 끝에 있어도 반드시 찾아 응징한다'는 카피에 함축되어 있다.

절치부심, 인고의 시간을 거쳐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탈바꿈하였다. 강대국으로 성장한 국력을 바탕삼아 세계 평화, 질서 유지 등의 명분을 내세워 패권과 무력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중국인들의 바람은 영화 전랑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늑대전사 외교는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하여 대다수 중국인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상대국의 반발을 불러 일으켜 불필요한 마찰을 촉발시키고, 이에 대해 중국은 다시 다양한 형태의 보복을 가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주와의 관계이다.

2020년 말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호주 군인이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를 살해하는 합성사진을 게재하였다. 호주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잔학한 전쟁범죄를 자행하였다고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관계가 틀어져 있던 호주와 중국의 관계는 이를 계기로 더욱 악화되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자오리젠이 합성사진을 게재하여 도발한 것을 거론하며 중국 외교부에 사과를 요구하였다. 중국 외교부는 사과는 커녕 호주 제품의 수입을 중지하는 등 경제적 보복을 단행하였다.

한 세기만에 소환된 고양이전사 외교

중국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최대 약점을 들라면 당연히 대만(臺灣)일 것이다. '하나의 중국'을 지향하는 중국은 대만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절대 양보가 없을 것임을 강조하여 왔다. 얼마 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중국은 연일 대만을 위협하며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압박하였다. 불과 일주일 전에는 중국 전투기들이 대만의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하여 대만해협의 긴장상태가 극에 달하기도 하였다.

중국은 그간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나라'로 인정받고 역할하는 것을 철저히 방해하고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대만과 관련한 사안에 있어서 중국은 힘의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늑대전사 외교를 더욱 강화하였다.

중국의 늑대전사 외교에 맞서 대만은 부드러움을 무기로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확산해 우군을 늘리려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를 고양이전사 외교라 이름 붙였다. 파리강화회의에서 활약한 구웨이쥔의 외교에 붙여졌던 고양이전사 외교라는 용어가 한 세기만에 소환된 것이다.

고양이전사 외교의 성과

1979년 단교 이후 대사관을 철폐한 대만은 워싱턴에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TECRO)를 두어 사실상 대사관 역할을 맡도록 하였다. 대만은 대표처 대표를 대사(ambassador)라 칭하지만, 미국 정부와 언론은 대표(representativ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연임에 성공한 차이잉원(蔡英文)은 작년 7월 샤오메이친(蕭美琴)을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장에 임명하였다. 총통부에서 샤오메이친을 만난 차이잉원은 '고양이전사'의 자질이 있다고 치켜세우며 부임 후 상황에 맞추어 유연한 대처를 주문하였다.

늑대전사 외교로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과는 반대로 대만의 고양이전사 외교는 민주적이고 인권을 중시하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대만의 위상을 높이는 데 공헌하고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고양이전사 외교의 성과라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샤오메이친은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취임식에 초청받아 참석하였다 1979년 단교 이후 42년만의 일이다.

▲ 1979년 단교 이후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은 샤오메이친(蕭美琴)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장 ⓒ샤오메이친 트위터

상원의 인준을 받은 토니 블링컨이 바이든 행정부의 첫 외교수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바이든의 오랜 친구", "바이든의 오랜 조언자"라는 평을 듣는 블링컨의 국무장관 취임으로 미국 외교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 중에서 유일하게 찬성 의사를 밝힌 것이 중국에 대한 강경노선이다. 블링컨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의 역할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대만과 국교를 재수립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있을 정도이다.

국제사회의 이슈를 만들고 선도해갈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그 중 하나가 중국임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작금 중국은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이슈를 생산해내기 보다는 도발적이고 부정적인 이슈들을 연달아 생산해내고 있다. 작용이 크면 클수록 반작용도 그에 비례하여 커진다는 것은 물리학에서만 통용되는 법칙이 아니다.

[김영신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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