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노·병·사(老·病·死)로부터 해탈

월호 기자 2021. 1. 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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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호 행불선원장

질병의 고통서 벗어나려면

그 원인을 찾아서 치료해야

코로나의 주관적 원인은 ‘나’

객관적인 원인은 ‘바이러스’

‘내’가 사라져야 고통도 소멸

몸·마음을 ‘0’으로 만들어야

이스라엘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이자 저명한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가 최근 한 TV 신년 토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는 역사로부터 배움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역사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다. 그래서 나는 또한 명상을 한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 말이 무심코 튀어나왔다.

“방향은 제대로 잡았구나. 다만, 아바타명상을 만나야 될 텐데….”

인생의 목적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인생의 목적은 다만 교훈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삶에서 해탈(解脫)하고자 함이다. 해탈이라 하면, 일반인과 무관한 것으로서 수행자만의 영역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해탈은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해탈의 의미는 한자어 ‘풀 해(解), 벗을 탈(脫)’의 뜻 그대로, 속박을 풀고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으면, 담배로부터 해탈한 것이다. 술이 없으면 못 살던 사람이 술 없이 살 수 있게 됐다면, 술로부터 해탈한 것이다. ‘그대 없이는 못 살아!’ 하던 사람이 ‘그대’ 없이도 잘 살 수 있게 됐다면, ‘그대’로부터 해탈한 것이다.

궁극적인 해탈은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것이다. 정말 피하고 싶지만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고통이 있다. 그것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다.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동기도 늙고 병들고 죽음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노·병·사(老病死)’로부터 해탈할 수 있을까?

싯다르타는 일단 기존의 수행자들이 하는 방법을 따라 했다. 먼저, 선정을 닦는 집단에 들어가 최고의 경지인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까지 도달하기에 이르렀다. ‘무소유처정’은 몸이 사라진 경지이고, ‘비상·비비상처정’은 마음이 사라진 경지이다. 몸과 마음에서 거의 해탈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일 년 삼백육십오일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때때로 일어나 탁발도 하고, 밥도 먹고, 사람들과 대화도 해야 했다. 그동안 노·병·사는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게 됐다. 그것은 고행이었다.

싯다르타는 지극한 고행을 통해 거의 죽기 직전까지 이르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노·병·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행에 탐닉하는 것이 늙고 병들고 죽음을 더욱 촉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의 수행자들이 하는 방법으로는 노·병·사로부터 해탈할 수 없음을 터득한 싯다르타는 결국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뜻밖에 간단했다. 노·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예컨대, 병고(病苦)에서 벗어나려면 그 원인을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중세 유럽의 페스트(흑사병)였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25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무시무시한 전염병 앞에서 성직자들도 피난길에 올라 무기력한 종교의 모습을 드러내며 권위가 상실됐다. 특히, 장례의식을 담당해야 할 사제들의 잇단 사망은 신에 의지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더욱 실망하게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전염병의 원인이 ‘신의 형벌’ 때문이 아니며, ‘세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병이 들면 무조건 교회에 가서 회개하고 치유를 신에게 기도할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서 원인에 합당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인류는 페스트 팬데믹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병고의 객관적 원인(緣·연)이며, 주관적 원인(因·인)은 ‘나’라는 사실을 깨우칠 기회가 왔다. 인(因)은 주관적 원인이요, 연(緣)은 객관적 원인이다. 인과 연이 만나 결과가 이뤄진다. 결국 ‘인×연=과(果)’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인(因)이요, ‘바이러스’는 연(緣)이다. 나와 바이러스가 만나 병고(病苦)를 초래한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영(0)이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 그리고 손 씻기’와 같은 위생 수칙을 준수해 최소한으로 줄일 수는 있지만,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제2, 제3의 바이러스가 나타날 수도 있다. 연(緣)을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모든 병고에서 벗어나려면, 인(因)이 공(0)이 되는 수밖에 없다. 공(0)에 어떤 수를 곱해도 결과는 공(0)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노·병·사의 근본 원인이 ‘태어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태어났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음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늙을 일도, 병들 일도, 죽을 일도 없다. 결국, 나의 고통은 ‘내’가 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고통이 온전히 소멸하려면 ‘내’가 사라져야 한다. 그렇다면 산 채로 몸과 마음을 공(0)으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바타(Avatar)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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