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용기를 얻어 신과 결별하라" [책과 삶]
[경향신문]
신, 만들어진 위험
리처드 도킨스 지음·김명주 옮김
김영사 | 364쪽 | 1만6800원
인간의 첫번째 종교는 애니미즘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삶의 모든 곳에서 어떤 행위자를 느꼈다. 심지어 잠자리에서 듣는 바람 소리조차 미묘했다. 그 미지의 행위자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신과 비슷한 존재로 여겼다. 신의 존재가 체계를 갖춰 이야기 형태로 등장한 것은 유프라테스강 하구에 고대 도시들이 건설되면서였다. 지금의 이라크 남부에 자리한 고대 도시 우르(Ur)에 지어졌던 거대한 지구라트는 신에게 경배하던 신성한 장소였다. 이른바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도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 살았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 데라가 이끌던 일족과 더불어 고향땅을 떠난 시기는 기원전 2000년 무렵이었다.
세계 곳곳에 수많은 신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다신(多神)을 상상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욕망과 감정을 지녔던 인간적인 신들의 이야기는 로마로 이어졌다.
북유럽에서도 신들의 이야기를 지어내 구전했다. 그중 으뜸은 보탄(오딘)이었으며, 그 밖에도 발드르(미의 신), 토르(천둥의 신), 스노트라(지혜의 여신) 등이 존재했다. 켈트족 신화에는 태양의 여신 에다인, 달의 신 엘라하 같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아프리카에는 태양의 여신 안야누, 달의 여신 마우가 있다. 그동안 세계 역사에 존재했거나 지금도 일정하게 섬김을 받는 신들은 세기 어려울 만큼 많다.
신을 주제로 한 저자의 두번째 책
아브라함의 낙타·노아 방주 등에서
모순·부정확성·표절 등을 찾아내
조목조목 거론하며 성서를 비판
종교적 믿음을 가지려는 경향은
인간 뇌의 진화적 속성으로 설명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믿는 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기원전 2000년경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에게서 3개의 종교가 유래했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그것이다. 이른바 ‘아브라함계 종교’로 불린다. <신, 만들어진 위험>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말한다. “여러분은 아마 요정과 픽시를 믿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세 아브라함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중 하나를 믿으며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나도 어쩌다보니 기독교인으로 자랐다. 기독교 학교에 다녔고 열세 살 때 영국국교회에서 견진성사를 받았다. 열다섯 살 때 마침내 기독교 신앙을 포기했다.”
올해 여든 살의 도킨스는 영국 옥스퍼드대 뉴칼리지 명예교수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이자 대중과학 저술가다.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주장했던 <이기적 유전자>(1976)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과학적 논증을 통해 신의 존재를 부정한 <만들어진 신>(2006)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책은 <만들어진 신>의 후속작처럼 보인다. 진화론자이자 무신론자인 그가 신을 주제로 두번째 책을 썼다.
책 1부는 성서를 비판한다. 기독교 신앙의 근거이자 좌표인 성서에서 찾아낸 “모순, 부정확성, 표절, 부도덕한 가르침”을 조목조목 거론한다. 예컨대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낙타를 소유했다는 서술이 등장한다. 도킨스는 “낙타는 아브라함이 죽었다고 추정되는 때로부터 수세기가 지난 뒤에 가축화되었다”고 반론을 편다.
노아의 방주에 대해서도 진화론 입장에서 전적으로 부정한다. “만일 노아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각각의 동물이 발견되는 장소는 노아의 방주가 마침내 멈춘 장소(터키의 아라라트산)에서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패턴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보는 모습은 대륙과 섬마다 그곳의 독특한 동물이 살고 있는 것이다. 남아메리카에는 개미핥기와 나무늘보가 살고, 마다가스카르에는 여우원숭이가 산다. 어떻게 캥거루 한 쌍이 방주에서 나와 도중에 자손을 전혀 남기지도 않은 채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껑충껑충 뛰어갔단 말인가?”
저자는 신약(27권)과 구약(39권)의 상당수를 누가 기록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 ‘구전’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면서 내용 자체가 왜곡됐을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비범한 주장에는 비범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예수의 어머니가 처녀였다든지, 무덤에서 일어났다든지 하는 주장은 매우 비범하다. (따라서) 그 증거가 훌륭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심지어 “성서 속의 신은 잔인할 뿐 아니라, 불안정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어지는 대목은 현실의 기독교인들을 충분히 불편하게 할 만하다. “(그 신은) 마치 소설에 나오는 질투심 많은 아내를 보는 것 같다. 남편이 바람을 피울까봐 불안한 나머지 일부러 남편을 시험한다.”
2부는 진화, 즉 생명의 복잡성을 다룬다. “신 없이, 고도로 복잡하고 다채로운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를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1부에서 신과 성서를 직접 거론한 것과 달리, 2부에서는 저자의 학문적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경이로운 진화의 힘”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1부와 2부는 결국 연결된다. 인간의 친절함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듯 종교적 심성 또한 그렇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다시 말해 종교적 믿음을 가지려는 경향은 “인간 뇌의 (진화적) 속성”이었다는 것이다. ‘신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일관된 입장이 여실히 확인되는 지점이다.
책 원제는 ‘Outgrowing God’이다. ‘outgrow’는 인간이 성숙해지면서 어떤 생각이나 습관을 버린다는 뜻이니, 저자 입장이 무엇인지 제목에서 드러난다. ‘성숙한 인간들이여, 이제 과학에서 용기를 얻어 신과 결별하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특히 책 마지막 문장이 재미있다. “나는 우리가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성장함으로써 모든 신을 단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그런가?”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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