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이자 지식인으로 살며 부정했던 과거 [책과 삶]

배문규 기자 입력 2021. 1. 29. 11:00 수정 2021. 1.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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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 344쪽 | 1만8000원

“랭스로 되돌아오면서 나는 끈질기게 따라붙지만 계속 부인해온 질문과 대면했다. 나는 가족과의 전면적인 단절이 내 동성애 성향과, 아버지와 내 성장 환경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동성애 혐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겉보기에 자명해 보이는 관념을 이론적 접근의 출발점으로 삼았는데─그리고 나 자신을, 내 과거와 현재를 사유하기 위한 틀로 취했는데─, 혹시 그것이 내 출신 배경과의 계급적 단절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그런 고상하고도 자명한 이유를 부여했던 것은 아닐까?”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동성애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동자계급 가족과 절연했던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탐사해나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리봉은 1956년 프랑스 파리 교외 랭스의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리베라시옹’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기자로 일하면서 피에르 부르디외, 미셸 푸코, 조르주 뒤메질 등 당대 거장들을 인터뷰했고, 그가 쓴 최초의 푸코 전기 <미셸 푸코 1926~1984>는 한국어 등 2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LGBTQ 학술 행사를 기획하고 관련 저작을 펴내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그는 학문적 공인의 정점을 앞두고 아버지의 부음을 접하면서 자신이 떠나온 과거에 대한 상념에 빠져든다.

“오랫동안 그곳은 내게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이야기는 에리봉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스무 살에 떠나온 후 30년 동안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던 고향 랭스의 어머니를 방문하며 시작된다. 그는 아버지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도 찾아가지 않았고, 심지어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뿌리 깊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시대 노동계급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로, 자신이 되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을 결합해놓은 것 같았다. 랭스는 그에게 ‘모욕’의 도시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인들은 호모포비아였고, 그는 ‘호모새끼’로 불리며 아우팅과 혐오범죄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요즘 그런 용어들을 지나치듯 듣기만 해도,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던 공포와 상처, 그것들이 내 정신에 새겨 넣은 수치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성적 지배 체계와 소수자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하는 파리의 좌파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이러한 고통의 경험은 과거로부터의 ‘탈주자’가 된 이유이기도 했다.

장례식 다음날 만난 어머니는 벽장에서 사진이 든 상자를 꺼냈다. 그의 어린 시절 사진들이었고, 형제들 사진도 있었다. 새삼스럽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주거지의 외관과 실내장식, 의복, 심지어 몸 그 자체에서도 드러난 노동자계층의 환경이었다. 랭스로의 귀향에 한 걸음 내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한 가지 질문이 그를 붙잡는다. “(섹슈얼리티에서) 수치의 감정에 그토록 중요성을 부여했으면서, 왜 사회적 수치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을까?” 다르게 말하면 “파리에 정착한 뒤, 나는 나와는 다른 사회 계층 출신의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종종 그들에게 내 출신 계급을 거짓말로 둘러대거나 진실을 고백하며 마음속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내 출신 환경에 대한 수치, 사회적 수치를 경험했다. 그런데 나는 왜 책이나 논문에서 이 문제를 다뤄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까?”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동성애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위해 노동 계급 가족과 절연했던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자기 성찰적 회고록이다. 오른쪽 사진은 프랑스어판 표지. 위키피디아
미셸 푸코 등 당대 거장을 인터뷰하고
관련 저작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저자,
사상적 좌파임을 자임하면서도 노동자계급 가족을 외면했다

에리봉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정신분석적 설명 대신 사회적 분석에 착수한다. 아버지는 1929년 1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그의 가족은 부르주아 박애주의자들이 빈민 복지를 위해 구상한 서민용 주거 단지에 정착한다. 집안 분위기는 노동자에 대한 ‘지지’와 ‘반대’로 세상을 나눌 정도로 철저한 좌파였다. 아버지의 학업은 초등학교를 넘어서지 못했고, 평생을 비숙련 노동자로 일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먼저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자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해 한동안 면허 없이 운전대를 잡는 편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사생아였던 어머니는 역시 초등교육에 그쳤고, 가정부로 일했다. 집안에선 부부싸움, 고함, 욕설의 교환이 일상처럼 이어졌다. 아버지는 상당히 폭력적이었지만,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갈비뼈에 금이 가게 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다. 부모와 다르게 학업을 이어간 저자와 가족 간의 문화적 취향, 교육 수준 차이는 단절을 더욱 키웠다. 하지만 부모가 공장에서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일한 덕분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어머니가 새벽 4시에 일어나려 잠든 동안 그는 마르크스와 트로츠키, 보부아르를 읽었다. 그에게 ‘프롤레타리아’는 책에서 얻은 추상적 관념이었으며, 부모는 이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실제의 노동자들에게서 더 잘 멀어지기 위해 ‘노동계급’을 예찬했던 것이다.”

어지러운 감정은 일상 곳곳에서 출현했다. 외할머니가 열일곱에 어머니를 낳은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그들의 나이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길에서 특이한 기자재 위에 올라타 있는 외할아버지와 만난 순간 누군가 알아볼까 겁을 냈다. “나는 분열되어 편치 않았다. 내가 끼어들어가 살아가는 부르주아 세계에서 내 신념은 불안정하게 돌출되어 있었다. … 나는 정치적으로는 노동자들의 편이었지만, 내가 일정 부분 그들 세계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는 집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분열됐다. 청소년 시절 우정을 가장해 사랑했던 동급생이 무소르그스키의 곡을 연주만 듣고 맞히는 데서 당혹감을 느끼고, 교수 아들인 그가 장뤼크 고다르와 사뮈엘 베케트를 이야기하는 데서 갈망을 느낀다. “부르주아나 평범한 중산층 정도의 환경에서 지내다보면, 우리도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일 것이라는 추정에 맞부딪힌다. 이는 이성애자가 자기와 대화하는 상대가, 자신이 조롱하고 비방하는 낙인찍힌 종에 속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해보지도 않고 동성애자에 관해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교분을 나누는 사람에게, 마치 그 역시 예전부터 자신과 동일한 실존적·문화적 경험을 해왔다는 듯이 말한다. 그들은 바로 그렇게 전제함으로써 상대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스무 살에 떠나와 돌아가지 않은 고향,
‘호모새끼’로 불리며 위협에 시달려야 했던 모욕의 도시…
아버지 죽음이 계기가 된 ‘사회학적 자기성찰’

에리봉은 사상적으로는 좌파임을 자임하면서도, 현실에선 노동자계급 가족을 외면하고 부끄러워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왜 그러한 ‘배신’을 하게 되었는지 질문하며, 전체 사회 안에서 노동자계급이 처한 상황과 그것이 재생산되는 구조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노동계급의 자녀들은 어떠한 궤적을 따라 성장하게 되는지, 그 안에서 이중의 소외를 겪는 동성애자에게는 어떤 선택이 주어져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가차 없는 시선으로 스스로의 이중성을 분석하고, 동성애와 계급의 교차성을 사고하는 데 있어 탁월한 통찰을 보여준다. 또한 제도권 좌파의 변질이 어떻게 그의 가족과 같은 노동계급의 극우정당 지지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놓는다.

에리봉은 책에서 시도한 글쓰기를 ‘사회학적 자기 성찰’이라고 이름 붙였다. 흥미롭고도 가슴 아픈 가족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들려주다가 곧바로 도마에 올려 해부의 칼을 들이댄다. 소설가 아니 에르노 등 ‘자기에 대한 쓰기’와 관련한 오랜 지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에서 에리봉의 이 책은 자기기술지·오토픽션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이 됐다고 한다. 소수자의 글쓰기에 대한 옮긴이의 해제가 책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제목처럼 오래전 자신이 부정하고 떠나온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 연구자로서 자기기술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객관적일까. 그리고 어디까지 가능한 일일까. 실제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책이 나온 뒤 가족의 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에리봉은 책을 마무리하면서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소설 <변경 지방>을 펼친다. 런던대 교수인 주인공이 아버지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얘기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주인공은 그가 결코 ‘되돌아갈’ 수 없음을, 숱한 세월 동안 구축된 경계를 없앨 수 없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아주 절제 있게 자신이 “거리를 확인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유배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선언한다. 그가 옳았을까, 아니면 틀렸을까. “확실한 것은, 이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그간 느끼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단지 잊고 있었을 뿐인 사랑의 감정을 되찾지만 그 순간 아버지가 사망했음을 알게 되는데, 그때 내 눈에서 눈물이 솟아났다는 것뿐이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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