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냉철한 분석뒤 따뜻한 시선.. 20세기 천재작가 에코의 遺作

박동미 기자 입력 2021. 1. 29. 10:30 수정 2021. 1. 2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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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영웅'을 찾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트위터를 해야만 존재를 입증하게 된 시대에 의문을 품는다.

에코는 이 칼럼을 1985년부터 썼고, 30여 년의 세월 동안 온갖 것에 다 '참견'했다.

에코의 탁월하고 날카로운 시선은 정치, 사회, 종교, 역사, 예술 등을 넘나들며 우리에게 새로운 창을 제공해주지만, 55편의 칼럼이 쓰인 날짜를 조금은 확인하며 읽는 것이 좋다.

에코에겐 모든 것이 어리석고 우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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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타계한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에세이가 국내 출간됐다. 열린책들 제공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 지음 |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정치부터 예술·인터넷까지 영역 넘나들며 풍자와 통찰

잡지에 연재했던 칼럼 엮어 특유의 비틀기 속 유머 가득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가 뭔지 몰라 일일이 지시 내려 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필사적으로 찾는 나라는 불행하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바로 그것이 ‘나의 투쟁’에 담긴 히틀러의 이념이다.”(2015년 1월 9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세상의 그 많은 장삼이사나 필부들은 대체 왜 트위터를 하는 것일까?”(2013년 11월 21일) “사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찾아 베꼈다. 그런 면에선 바뀐 건 전혀 없다. 다만 옛날엔 품이 좀 더 들었을 뿐이다.”(2006년 1월 12일) “일면식도 없는 에스키모를 우리 아버지나 아들과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내 사랑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바다표범 사냥꾼들보다 내 손자들을 향할 것이다.”(2011년 10월 28일)

사람들이 ‘영웅’을 찾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트위터를 해야만 존재를 입증하게 된 시대에 의문을 품는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사실은 자기만의 울타리를 더 공고하게 치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에 ‘작은 질서를’ 부여하는 이 말들은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남긴 말들이다. 기호학자, 미학자, 그리고 소설가. 20세기 최고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에코의 유작 에세이가 국내 출간됐다. 2016년 이탈리아어로 처음 발간됐던 책은 그가 한 시사 잡지에 ‘미네르바 성냥갑’이라는 이름의 칼럼으로 연재한 것들 중 가장 최근 것들을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에코는 이 칼럼을 1985년부터 썼고, 30여 년의 세월 동안 온갖 것에 다 ‘참견’했다. 휴대전화, 인터넷, 십계명, 시인, 교사, 논문, 거짓말, 좌파, 나폴레옹, 신문, 히잡, 9·11, 트위터, 문학 축제, 캘리그래피, 베를루스코니…. 차라리 에코가 안 쓴 주제를 찾는 게 더 빠를지도.

책은 거침없이 만물을 저격한다. 에코의 냉철한 분석 뒤엔 따뜻한 시선이 있고, 카리스마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는 2014년 좌초됐다가 성공적으로 구조된 애틀랜틱호와 관련해 많은 언론이 맨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린 자코마치 선장을 ‘영웅’으로 칭송하자 “언론의 과장은 말릴 수 없다”고 조소한다. “언론은 사람들이 단순히 말하는 것도 ‘천둥 같은 일성을 토했다’고 쓰고, 사람들이 단순히 어려움에 빠진 것도 ‘태풍의 눈 속에 빨려 들어갔다’고 표현한다.” 자코마치 선장을 예로 들어 언론의 침소봉대 행태를 꼬집은 그는, 성실하게 자신의 의무를 다한 사람을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일은 위험하며,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고 일갈한다. “그 나라에는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보통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 에코는 자신은 트위터를 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마치 트위터를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본다면서, “별 의미 없는 가벼운 의견들이 난무하는 공간”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남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야기만 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몇몇 극단적인 정신 이상자들의 생각만 전한다.”

에코의 탁월하고 날카로운 시선은 정치, 사회, 종교, 역사, 예술 등을 넘나들며 우리에게 새로운 창을 제공해주지만, 55편의 칼럼이 쓰인 날짜를 조금은 확인하며 읽는 것이 좋다. 그의 통찰력은 매우 우월하지만, 가끔은 그것조차 낡은 듯 느껴질 정도로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다. 시집이 더 이상 팔리지 않고, 많은 작가가 인터넷으로 글을 발표하는 세태를 꼬집은 글은 다소 고루하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스타 작가들이 탄생하고, 작가들이 독자들과 직접 소통에 나서고 있는 요즘 상황을 보면, 십수 년 전 ‘시인들은 어디로 가는가’라고 한 에코의 걱정이 무색해진다.

에코에겐 모든 것이 어리석고 우둔하다. 베를루스코니도, 트위터도, 좌파도,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모두 바보다. 때로 세상에서 멍청하지 않은 건 에코가 유일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 오해 없기를, 이것은 찬사다.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를 에코는 ‘유동 사회’라는 첫 글에서 설명한다)과 엉망진창인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척 하는) 방법은 바보들을 아는 것에서 시작하니까. 에코의 말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것이다. 맘에 안 드는 정치인에게는 비판적 태도로 관심을 주는 것보다 완벽한 무시의 자세를 취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그것이다. 320쪽, 1만48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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