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인터뷰-송재익 >"팔순이지만 은퇴 생각 안해.. 손흥민 월드컵 중계 꿈꾼다"

허종호 기자 2021. 1. 2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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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익 캐스터가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SRT 수서역 인근에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 스포츠 중계의 전설 송재익 캐스터

1986년부터 월드컵 20년 중계

2002년 못 잊어… 지금도 생생

전국 출장 쉽지않아… 송해 대단

하루 4㎞ 걷고 건강관리 꾸준히

캐스터는 침착함·애드리브 필수

기회 올때까지 목소리 유지할 것

송재익(79) 캐스터는 국내 스포츠 중계의 ‘전설’로 통한다. 송 캐스터는 1970년 MBC 공채 4기 아나운서로 입사, 1970년대 후반부터 스포츠 중계를 ‘메인’으로 담당했다. 송 캐스터는 1999년 MBC에서 퇴직한 뒤 이듬해 SBS에서 다시 중계 마이크를 잡았고 2009년 캐스터 활동을 중단했다가 10년 만인 2019년 복귀했다.

스포츠 중계 마이크를 잡은 지 50년이 지났지만 열정은 여전하다. 송 캐스터는 우리 나이로 팔순이지만 지난해까지 마이크를 잡고 축구 경기가 열린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특히 송 캐스터는 전성기와 다르지 않은 음색을 뽐냈고, 해박한 스포츠 지식과 구수한 입담을 늘어놓으며 ‘올드팬’의 향수를 자극했다. 송 캐스터는 최근 2년간 무려 K리그 54경기를 책임졌다.

노익장을 과시 중인 송 캐스터를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SRT 수서역에서 만났다. 송 캐스터는 “이 나이에 중계하는 것, 특히 전국을 다니면서 일하기가 쉽지 않다. 스포츠 중계는 모두 생방송이고, 축구는 최소 22명의 선수 자료를 챙겨야 한다. 게다가 원고가 없어서 진행이 어렵기에 내 나이까지 중계를 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송 캐스터는 “2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송해(94) 선생님을 떠올렸다. 90세가 넘는 나이에도 장시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시는 것이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송 캐스터는 특히 ‘축구통’으로 불린다. 송 캐스터는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열린 전 세계의 축구 축제인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무대에 20년 동안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송 캐스터는 1986년 멕시코, 1990년 이탈리아, 1994년 미국, 1998년 프랑스, 2002년 한국과 일본, 2006년 독일 등에서 월드컵 중계를 담당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1954년 스위스부터 2018년 러시아까지 64년간 10차례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송 캐스터는 그중 60%를 현장에서 생생한 순간을 전달했다.

송 캐스터는 “32년 만에 본선에 오른 1986 멕시코월드컵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2002 한일월드컵이다. 매일 한 경기씩 중계하기 위해 전국을 오갔고 결승전 때문에 일본까지 다녀왔다. 힘들었지만 보람찼기에 20년가량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송 캐스터는 “한일월드컵을 치르면서 우리 국력이 커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1970년대 수용인원 2만 명 남짓한 동대문, 효창운동장에서 시작해서 4만∼5만 명 규모의 월드컵경기장으로까지 커진것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캐스터의 별명은 스포츠의 ‘음유시인’이다. 송 캐스터는 또렷한 목소리와 함께 재치있는 비유로 긴박한 경기 상황을 침착하면서도 생생하게 전달한다. 국가대표팀 간 경기인 A매치는 송 캐스터의 장기가 발휘된 무대. “오늘 수비는 깨진 쪽박 같아요” “전차(독일)가 녹슬었어요” “빗장(이탈리아)이 낡았습니다” 등이 대표 어록이다.

송 캐스터가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은 1997년 9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 중계부터다. 송 캐스터는 당시 ‘도쿄대첩’으로 불린 경기에서 후반 41분 이민성의 역전 결승골이 터지자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써 일본의 패배가 치명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송 캐스터는 당시를 떠올리며 “일본은 사실상 배수의 진을 친 경기였다. 안방에서 열린 라이벌전, 게다가 프랑스월드컵 본선 진출도 불투명했다. 반면 우리는 본선으로 가는 길이 무난했고 지더라도 여유가 있는 등 양 팀이 전혀 상황이 달랐다. 우리의 역전골로 일본이 최악의 상황에 처했기에 일본의 자존심이자 최고봉인 후지산을 언급했다”고 말했다. 또 송 캐스터는 “그 멘트를 미리 준비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표현이 바로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스포츠 중계 경험을 쌓으면서 저절로 그런 멘트가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만 60세이던 송 캐스터가 광주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 승부차기를 앞두고 남긴 장문의 멘트도 화제였다. 송 캐스터는 당시 “시청자 여러분, 국민 여러분. 두 손을 마주 잡으시고 한번 간절히 기도합시다. 종교 있는 분들은 신에게, 그리고 없는 분들은 조상께 의지합시다. 우리 선수들이 잘 차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승부차기를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등산 산신령님도 도와주십시오”라며 온 국민의 간절함을 그대로 목소리에 녹였다.

송 캐스터는 그때 기억이 생생한 눈치였다. 송 캐스터는 “그때 승부차기에서 졌다면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지상파 방송에서 하나님, 부처님, 조상, 산신령까지 찾으면서 방정을 떨었으니 모든 종교계로부터 혼났을 것”이라며 “다행히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마지막 키커로 승부차기를 골로 연결하면서 어떤 항의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 캐스터는 축구와 함께 복싱 중계도 전문이다. 지난해 11월엔 복싱계의 최고 스타 마이크 타이슨의 15년 만의 복귀전을 중계했다. 라이트 훅, 어퍼컷 등 복싱 용어는 시청자 귀에 쏙쏙 꽂혔다.

사실 송 캐스터에게 스포츠 중계는 적성에 딱 맞는 일이었다. 송 캐스터는 “난 아나운서 중에서 뉴스 진행이 서툰 편이었다. 원고대로 진행돼야 하는 뉴스가 힘들었다. 하지만 애드리브가 좋은 편이었기에 스포츠 중계가 뉴스보다 편했다”고 귀띔했다.

송 캐스터는 초기엔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송 캐스터는 “1970년대 후반쯤부터 스포츠 중계 배정이 더욱 많아졌고, 연례행사였던 전국체전의 앵커를 맡아 장시간 진행도 했다. 당시 군사정권에서 스포츠를 정책적으로 이용했기에 스포츠 중계 역시 방송사에서 중요하게 여겼다”면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 축구와 복싱이었기에 중계 비중도 점차 늘어났다. A매치, 복싱 세계 타이틀 매치가 있을 땐 길거리가 한산해질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송 캐스터는 캐스터의 덕목으로 침착함을 꼽는다. 송 캐스터는 “누구나 경기에서 벌어질 사건을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캐스터는 당황하지 않고 그 순간을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그 순간을 표현할 수 있는 애드리브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21일 서울 이랜드와 전남 드래곤즈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2년간의 K리그 중계를 마감했다. 송 캐스터는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출장길이 부담스러웠기에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송 캐스터는 “건강에서 비롯된 결정은 아니다. 늦은 밤 출장에서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며 “먼 지방은 대중교통을 이용했지만 수도권과 충청도는 자가용을 직접 운전해 다녀왔다. 나이가 많다 보니 순간적인 대처가 어려운 늦은 밤 운전이 점점 무서워졌다. 이런 이유로 내 나이엔 운전면허를 많이 반납한다”고 설명했다.

송 캐스터는 지난 15일 한국아나운서연합회가 주관하는 2020 한국아나운서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송 캐스터는 “방송을 시작한 후 한 번도 은퇴를 말한 적이 없다. 언제든 중계에 투입되기 위해 꾸준히 건강을 관리, 겨울에도 하루 4㎞씩 걷고 있다. 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경기를 중계한 적이 없는데, 손흥민이 출전하는 월드컵을 맡으라고 하면 사양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허종호 기자 sportsher@munhwa.com

■ 송 캐스터의 어록

“오늘 수비는 깨진 쪽박 같아요”

“전차(獨)가 녹슬었어요”

“빗장(伊)이 낡았습니다”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국민 여러분. 두 손을 마주 잡으시고 한번 간절히 기도합시다. 종교 있는 분들은 신에게, 그리고 없는 분들은 조상께 의지합시다. 우리 선수들이 잘 차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승부차기를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등산 산신령님도 도와주십시오” <2002 월드컵 한국-스페인 8강전 승부차기 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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