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기, 여유·웃음 보여주고파" 판화 장인들이 찍어낸 희망메시지

장재선 기자 입력 2021. 1. 29. 10:20 수정 2021. 1. 2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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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해학의 풍경' 전은 두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요컨대, 한국 판화의 세대별 특징을 한자리에서 살피는 한편 현실의 어둠을 이기는 해학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장암 명의로 알려진 박재갑(72) 서울대 명예교수가 판화 공력을 쌓아 프로 작가들과 함께 전시하게 된 것도 흐뭇한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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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아, ‘서울. 범내려온다’, 60×40㎝, Linocut, 2020. 역병을 물리치는 민화 속 호랑이를 현대의 서울에 등장시켜 희망을 표현했다.
김상구(왼쪽), 민경아 작가가 ‘해학의 풍경’ 전에 걸린 김 작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해학의 풍경’ 판화展 참여 김상구·민경아 작가

세대별 작가 8人 작품 한자리

원판 전시·모빌작품까지 등장

‘서울. 범 내려온다’도 인상적

“판화=복제라는 인식 불식되길”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해학의 풍경’ 전은 두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첫째는 감염병 시대의 우울에 지지 않고 여유와 웃음으로 오늘의 고통을 건너 내일의 희망에 닿으려는 예술가들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둘째는 한국 현대판화 1세대 작가부터 밀레니얼 세대 작가까지 판화가 8명의 작품이 함께 있다는 것. 요컨대, 한국 판화의 세대별 특징을 한자리에서 살피는 한편 현실의 어둠을 이기는 해학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상구(75), 민경아(55) 작가를 지난 26일 통인화랑에서 만났다. 김 작가는 나무판을 깎아 그림을 새기는 목판화 작업에 반세기를 바친 거장이다. 자연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 그의 작품은 ‘그림 시(詩)’로 불린다. 영국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미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민 작가는 두꺼운 리놀륨판을 조각도와 끌로 깎아내는 리노컷 판화에 집중해온 중견이다. ‘피노키오’ 연작으로 유명한 그는 섬세한 선을 통해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18년 스페인의 ‘온 페이퍼 국제판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크게 인정받고 있다.

“이번 작품전은 작가마다 개성이 뚜렷해요. 김희진(35) 작가는 판화를 찍은 작품이 아닌 목판 원판을 전시했어요. 기존에 없었던 시도입니다. 홍승혜(39) 작가의 수성 목판 작업은 과연 판화인가 싶을 정도로 색채 표현이 풍성합니다. 정승원(37) 작가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작업한다고 할 만큼 밝은 색감이 특징입니다. 판화에서 전이한 모빌 작품도 전시했어요. ”

판화계 대부인 김상구 작가는 자신의 작품보다 후학들의 성취를 더 자랑했다. 자신보다 약간 아래 연배인 강행복(68) 작가가 목판을 겹쳐 찍은 작업으로 입체감을 얻어낸 것도 자세히 설명했다. 대장암 명의로 알려진 박재갑(72) 서울대 명예교수가 판화 공력을 쌓아 프로 작가들과 함께 전시하게 된 것도 흐뭇한 기색이었다.

“서울시 미래 유산으로 선정될 만큼 유서 깊은 통인화랑에서 김상구 선생님 같은 선배 작가들과 함께 전시한다는 것은 큰 영광이지요.”

민 작가는 겸허하면서도 유쾌함이 깃든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브랜드인 피노키오 연작뿐 아니라 여우·공작·범 등이 등장한 작품들도 선보였다.

특히 ‘서울. 범 내려온다’라는 작품은 대도시의 어둠을 배경으로 두 마리 호랑이가 노니는 모습을 담고 있어 이채롭다. 민 작가는 “모두가 힘든 시기에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역병을 물리치는 민화 속 호랑이를 통해 해학적으로 웃음의 여유를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전시 중 독일인 관람객에게 팔렸다. “서울을 잘 담았다는 것이 구매 사유”라고 화랑 측이 귀띔했다.

민 작가는 판화 작업이 인생과 닮았다고 했다. 자신만의 테크닉으로 한 치의 실수도 없도록 집중해서 작업해야 하고, 그 과정 자체가 작품 내용이 된다는 점에서다. 그는 “판화가 현대미술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인식이 미흡해 아쉽다”고 했다. 오프셋 인쇄물이 판화인 것처럼 시중에 일부 유통되며 판화 예술을 이미지 복제로 보는 시각이 퍼졌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유럽은 수요에 따라 한정된 판만 찍어내는 게 정착했더라”며 “그런 문화에서 파블로 피카소의 판화 작업 등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계선 통인화랑 관장은 “우리나라에 빼어난 판화 작가가 많다”며 “아트페어 등에서 적극적으로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오는 2월 7일까지.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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