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돌 소비는 PC한 일일까' 질문을 던지는 책 '여신은 칭찬일까'[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1. 1. 2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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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죄책감이 들면서도 즐기는 행동. 한국 사회에서 ‘여성 아이돌(여돌)’을 좋아하는 것만큼 ‘길티 플레저’의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행위는 없을 것이다. 머리로는 외모 칭찬도 평가라는걸 알면서도, 입에서는 어쩔수 없이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격한 안무와 라이브를 흐트러짐 없이 소화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그 피나는 열정에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진실의 순간’은 머지 않아 다가온다. 이들의 완벽함이 가능했던건 여돌의 외모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준과 착취적인 노동 환경 때문임을 알게 됐을때, 팬들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이 모든 모순을 알면서도 여돌을 ‘소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위일까.

<여신은 칭찬일까>는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이 질문에 피하지 않고 맞서는 책이다. 저자인 최지선 대중문화평론가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한 발을 더 나아간다. ‘여돌을 피해자이자 희생자로 규정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지난달 전화인터뷰로 만난 최 평론가는 “여돌 스스로의 주체적인 시선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결론내리지 못했다”며 “결론을 내리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픽 | 이아름 기자

20년간 대중음악에 관한 글을 써왔던 그에게 이 책은 도전이었다. “아이돌 음악을 좋아했지만 아이돌에 대한 글을 쓸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음악 평론을 하는 사람은 록·힙합같은 장르음악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은연중에 발목을 잡았거든요.” 그런 저자를 움직인 건 대중문화평론계의 오랜 동료였던 출판사 산디의 대표인 이민희씨의 제안이었다. 여성 아이돌에 대해 저자가 품었던 질문들을 나눠달라는 것이다.

창작을 하는 여돌은 왜 드물까. 여돌은 왜 힙합을 시도하고 실패하는가. 여돌의 위로와 응원의 노래는 누구를 향하는가. 뮤직비디오나 무대에서 여돌이 점유하는 공간은 왜 ‘남성 아이돌(남돌)’보다는 좁은가…. K팝 팬이라면 한번쯤 품었을 법한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다보면 ‘여성’이자 ‘아이돌’로서 여돌이 가지고 있는 이중고가 보인다. 저자는 이러한 이중고를 보여주기 위해 ‘남돌’과의 비교를 자주 수행한다.

“아이돌들은 동작이 크고 과격한 춤을 출수록 ‘춤실력’이 있다고 인정받아요. 남돌 역시 그러한 안무를 소화하기 위해 발목이나 어깨에 온갖 부상을 달고 살죠. 하지만 하이힐과 짧은 의상을 입고 춰야 하는 여돌의 댄스는 아예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해요. 여돌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남돌의 댄스를 커버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드문 것도 이때문이죠. 모든 아이돌들에겐 고충이 있지만, 여성의 것은 남돌과는 그 영역이 다르고 정도도 더 심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평론의 대상이 되는 아이돌과 너무 밀착이 되면 구조의 어두운 이면을 볼 수 없었고, 너무 거리를 두면 구조 속에서 분투해가는 개인의 노력이 잘 보이지 않거든요.” 집필 도중 설리·구하라 사건과 마주했을 땐 책을 그만 쓸 작정도 했었다. 여돌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회의감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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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해도 문제가 될 것 같아 어떤 말도 쓸 수가 없었어요. K팝이 성공가도를 달릴 땐 좋은 면만 조명하다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앞다퉈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는 상황이 아쉬웠거든요. 하지만 이런 제 고민이 저만의 고민은 아닐 거라는 이 대표의 설득에 마음을 돌렸어요. 여돌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쓰기 시작했죠.”

최 평론가는 ‘소녀’와 ‘요정’, ‘여신’으로 이어지는 정형화된 틀을 깨기 위한 여돌들의 분투를 읽어낸다. 동시에 이러한 노력이 가지고 있는 한계 역시 에두르지 않고 비판한다. 투애니원을 시작으로 일반화된 ‘걸크러시’ 컨셉은 기존의 여성성에 도전하려는 시도를 통칭하지만, 대개는 연애 관계에서 주도권을 쥔 ‘나쁜 여자’의 모습에 머무르는데 그친다. 블랙핑크의 한 노래에는 “‘언제나 남자를 조심하라’는 엄마의 조언”이 등장한다. 구시대적 순결 이데올로기와 전통적인 가족주의에 기반한 가사들이다.

그는 “대형 기획사들의 메인 프로듀서의 압도적 다수는 남성이고, 세대 교체 역시 지연된 상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 대중이 여성 아이돌에게 그정도의 변화만 원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블랙핑크, 오마이걸, 트와이스, 마마무, 레드벨벳.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요정’과 ‘여신’이라는 여성 아이돌의 전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시도한다. YG, WM, JYP, RBW, SM 엔터테인먼트 제공

“페미니즘 리부트로 인해 여러 변화가 있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한 건 많지 않다.”

책의 마지막을 비관적인 문장으로 마무리한 이유를 묻자 저자는 ‘AOA 지민 사건’에서 느낀 좌절감을 언급했다. 지민은 “꽃이 아닌 나무가 되겠다”(엠넷 <퀸덤>)고 선언하며 ‘주체적인 여돌’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불거진 동료 괴롭힘 논란으로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살인적인 스케줄과 사생활이 없는 합숙 생활, 정서적으로 소진될 수 밖에 없는 여돌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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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돌이 자신만의 꿈을 펼치며 오래도록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한 걸까. 최 평론가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여성 아이돌이 권익과 평등에 대해 발언하면 ‘메갈’ ‘페미’라는 낙인이 찍혀요. 주소비층인 남성 팬들의 이탈을 우려한 기획사들은 이를 엄격하게 단속하죠. 책에는 비관적인 문장으로 끝맺었지만 그럼에도 ‘변하고 있다’고 쓰고 싶고, 실제로도 ‘많이 변했다’고 느껴요. 다만 더 많은 변화를 위해선 칭찬이든 비판이든 여돌에 대한 논의가 더 늘어나야 해요. 기획사도 그래야 움직일 테니까요.”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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