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이 투기자본에 매각된다면..김진숙 복직이 부산의 미래 [기고]
[경향신문]
우리는 2011년을 기억합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했던 김진숙의 309일간 고공농성.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외치는 김진숙을 지지했던 희망버스의 거대한 움직임.
2020년 세밑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은 길을 나섰습니다. 12월 30일 부산에서 출발해 청와대까지 가는 긴 여정입니다. 오늘도 김진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도 지난 1월 10일 김진숙과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단 하루, 불과 13㎞의 길을 걸었지만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해고노동자 김진숙은 암에 걸린 몸으로, 방사선치료도 포기하고 걷는 길입니다. 김진숙의 걸음은, 대한민국에 더 이상 해고자가 없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염원인 것입니다.
우리 부산시의회는 2020년 9월 11일 한진중공업의 투명하고 공정한 매각 및 해고노동자 김진숙 복직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였습니다. 부산의 대표적 향토기업 한진중공업의 졸속 매각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부산을 상징하는 조선업 유지를 전제로, 투명하고 공정한 매각을 진행해야 한다는 결의였습니다. 매각 절차를 앞둔 한진중공업에서 다시 해고노동자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해고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산시의회뿐만 아니라 범 시민적 차원의 노력과 염원에도 불구하고 해고노동자 김진숙은 여전히 해고자의 무거운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외국계 사모펀드가 참여한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되면서 한진중공업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매각은 부산지역의 일자리와 경제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또한 부산의 난개발 문제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야 합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조선업을 유지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히고 있을 뿐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조선소로 역사적 의미를 가진 한진중공업은 단순하게 이러한 입장만으로 정상화되지 않습니다. 조선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투자가 동반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사업계획도 수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단순하게 3년 고용보장과 영도조선소 정상화라는 말로 구렁이 담 넘어 가듯 넘어가려고 합니다.
부산의 난개발은 매우 심각합니다. 외국계 사모펀드가 참여한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언론에서는 일제히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아파트 등으로 개발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해운대 LCT와 송도해수욕장, 용호동의 초고층 아파트처럼 부산은 또 다시 난개발로 몸살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부산시민 누구나가 누려야 할 조망권을 일부 특권층만 누리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한진중공업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매각되어야만, 부산의 일자리와 경제를 살리고, 난개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한진중공업의 매각 과정은 청춘과 열정을 바친 노동자의 관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해고노동자 김진숙의 걸음에 많은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확장하는 과정에 해고노동자 김진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해고는 우리가 받은 혜택의 씨앗이고,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부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진중공업이 외국계 사모펀드가 참여한 투기 자본에 매각되고, 겨우 3년간의 고용안정만을 받아들인다면, 지금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는 해고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김진숙이 가는 길은 해고노동자를 막는 길이고, 김진숙의 복직은 해고노동자가 다시는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한진중공업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관리 및 경영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일자리와 경제를 수렁으로 밀어 넣을 것인가,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을 것인가. 이에 대한 모든 것은 산업은행의 결단에 달려있습니다. 산업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한진중공업은 부산의 대표적 조선소로 재도약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해고노동자 김진숙은 35년간의 부당한 해고를 끝내고 복직되어야 합니다.
노기섭 부산시의원·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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