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의 특급논설] 게임스탑 전투, 온라인판 월가 점령인가

파이낸셜뉴스 2021. 1.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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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vs 헤지펀드의 대결 
증시의 권력이동 평가도 
오프라인 월가 점령 시위가 
온라인으로 옮겨온 느낌  
디지털 혁신이 만든 작품  
동학개미 일회성 현상 아냐 
온라인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주식정보 공유방 '월스트리트베츠' 메인 화면 갈무리. 미국 개미들의 성지 역할을 한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권력이동(Power Shift). 월스트리트저널은 27일자 기사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기사엔 "전문가와 개인투자자 사이에 전쟁이 터졌다"는 표현도 나온다. 야후파이낸스는 한발 더 나갔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지의 계급충돌(Clash of the Classes), 노동계급 대 헤지펀드의 대결. 거창하다. 도대체 게임스탑(GameStop)이란 회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게임스탑은 미국 비디오게임 유통업체다. 본사는 텍사스 그레이프바인에 있다.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호주, 유럽 등에 5500개가 넘는 샵을 운영한다. 첫 출발은 1984년이지만 여러번 손이 바뀐 끝에 2002년 뉴욕 증시에 상장(심볼 GME)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잘 나갔다. 이 때는 비디오게임 호황기와 겹친다. 2016년을 분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비디오게임 대신 휴대폰 게임에 빠졌다. 닌텐도 등 게임사들은 유통업체를 통하지 않고 게임 소프트웨어를 직접 온라인에서 팔았다. 매출, 이익 다 쪼그라들었다. 2018년엔 기록적으로 6억달러 넘는 적자를 냈다.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방역 차원에서 문을 닫는 샵도 많아졌다.

헤지펀드와 같은 기관투자가들은 게임스탑을 공매도 표적으로 삼았다. 주가가 더 떨어진다는 쪽에 베팅했다는 뜻이다. 누가 봐도 비디오 게임 유통은 사양산업이기 때문이다. 게임스탑은 죽은 회사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심봉사 심청이 만나듯 눈이 번쩍 떠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11일 애완동물 사이트 추이(Chewy)의 공동창업자인 라이언 코언이 게임스탑 이사로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코언은 온라인 애완동물 샵 추이를 지난 2017년 33억달러(약 3조7000억원)를 받고 펫스마트에 매각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코언이 합류하면 게임스탑이 디지털 게임 유통업체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번졌다.

게임스탑의 1년 주가 추이.(자료=야후파이낸스)

그 선두에 미국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섰다. 개미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본부는 레딧(Reddit)이란 커뮤니티 사이트에 차렸다. 그 중에서도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WSB)란 서브레딧이 총사령부 역할을 했다. 서브레딧은 레딧의 분야별 하부조직이다. WSB는 2012년 개미를 위한 주식 채팅방으로 개설됐다. 이용자는 400만명이 넘는다.

늘 공매도 세력에 당하기만 하던 개미들이 이번에 선빵 전술을 폈다. 온라인 거래 앱 로빈후드 등을 통해 게임스탑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주가가 뛰기 시작했다.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수록 이득이다. 그런데 180%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당황한 헤지펀드들은 어쩔 수 없이 개미들을 따라 게임스탑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주가가 뛸 땐 조금이라도 일찍 사야 손해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약한 처지를 전문용어로 숏 스퀴즈(Short Squeeze)라고 한다. 공매도 세력이 가장 두려워 하는 상황이다.

게임스탑 주가는 퀀텀 점프를 했다. 개미도 사고 공매도 세력까지 가세했으니 시너지 효과가 났다. 27일 주가는 135% 뛴 347달러로 마감했다. 1주일 전 주가는 39달러였다. 역대 최저가는 2.57달러다. 멜빈 캐피털을 비롯한 헤지펀드들은 아주 거덜이 났다. 미국 개미들은 헤지펀드에 제대로 한방 먹였다. 회사 이름도 마침 게임스탑이다. 마치 개미들이 헤지펀드를 향해 "니들 게임은 이제 끝났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기득권을 엿 먹이는 일이 영화관 체인인 AMC엔터테인먼트, 한물 간 휴대폰 업체 블랙베리에서도 벌어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가 공매도 세력을 조롱하기 위해 판매한 짧은 바지(Short Shorts). (사진=테슬라)
일론 머스크 "개미 잘한다" 응원

테슬라를 창업한 일론 머스크까지 힘을 보태면서 개미들은 신바람이 났다. 머스크는 자기 트위터에 월스트리트베츠 링크를 걸었다.

머스크는 공매도와 악연이 깊다. 전기차 테슬라는 오랫동안 논란을 불렀다. 한쪽에선 미래 자동차 산업을 선도할 유망주로 봤다. 다른 쪽에선 그저 허풍으로 취급했다. 허풍으로 본 세력은 테슬라를 수시로 공매도 도마위에 올렸다.

괴짜 머스크는 그다운 발상으로 공매도 세력을 조롱했다. 작년 7월 머스크는 테슬라 사이트에 빨간색 짧은 바지를 판매한다고 올렸다. 짧은 바지(Short Shorts)는 공매도(Short Selling)를 조롱한 것이다. 이 바지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공매도 세력이 손해를 볼수록 머스크에겐 행복이다.

2011년 9월 월가 점령 시위에 나선 시위대가 "우리는 99%"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Paul Stein, 위키피디어)
온라인에서 실현된 '월가를 점령하라'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어 2011년 가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 Street)는 시위에 불이 붙었다. 금융위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금융가들의 탐욕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일반 투자자들은 은행, 헤지펀드 등 월가 기득권자들에게 분노했다. 소득불평등에 분노했다. 1대 99 사회에 분노했다. 하지만 시위는 그때 뿐, 월가 기득권을 부수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시위가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채팅방 월스트리트베츠는 2012년 1월에 개설됐다. 이후 이 방은 개미들의 성지가 됐다. 월가 점령 시위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한 셈이다. 개미들은 더이상 모래알 조직이 아니다. 똘똘 뭉치면 어떤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게임스탑에서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뉴욕 증시에선 제2, 제3의 게임스탑 사태를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회장(왼쪽)이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매도 재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한투연은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힘을 합쳐 출범한 개인투자자 보호 단체다./사진=뉴스1
국내 증시에 주는 교훈

국내에서도 공매도가 논란이다. 금지 조치는 오는 3월15일로 끝난다. 추가 연장 여부는 가봐야 한다. 개인투자자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달라고 목청을 높인다. 이제 게임스탑 사건을 지켜본 뒤 동학개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여전히 공매도 금지를 연장하거나 아예 폐지하길 바랄까? 아니면 좋다, 공매도 허용해라, 그럼 우리도 미국처럼 개미들이 뭉쳐서 공매도 세력을 박살내겠다는 생각을 할까? 마침 서학개미들이 게임스탑 전투에 참전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결정권을 쥔 금융위원회는 무슨 생각을 할까. 전통적인 사고에 따르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공매도를 허용하는 게 맞다. 그런데 갑자기 게임스탑 변수가 끼어들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2021년 증시는 옛날의 증시가 아니다. 개미들은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다. 동학개미 현상은 무지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회성 유행이 아니다. 디지털 혁신 덕에 개미들은 소파에 앉아 클릭 몇 번으로 시장을 주무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과거와 전혀 다른 환경 아래서 시장 안정을 추구하는 게 금융당국에 던져진 숙제다.

미국 개미 완승은 아직

미국 개미들이 완승을 거둔 걸까. 아니다. 숏 스퀴즈 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나면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일쑤다. 손실을 마감한 공매도 세력이 더이상 주식을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게임스탑 사건을 투자 아닌 투기로 보는 이유다. 진정한 승자를 가리는 데는 좀더 시간이 걸린다. 미국 개미들이 1차 공매도 전쟁에서 헤지펀드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희희낙락할 수 없는 이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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