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 건축가 조남호

효효 입력 2021. 1. 2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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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 단독주택(2013년) /사진제공=조남호 건축가
[효효 아키텍트-71] 코로나19 팬데믹이 1년을 넘어가고 있다. 우리 일상과 사고도 많이 바뀌면서 건축사사무소에도 아파트를 벗어나 단독주택에 대한 설계 의뢰가 많이 늘었다. 여기부터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3층 규모인 서울 서초구 방배동 단독주택(2013)은 전체 구조는 철근콘크리트지만, 내부 공간은 경골목구조를 활용한 건식 벽돌로 쌓았다. 1층은 필로티 방식이고, 2층부터 구성되는 내부는 중정과 넓은 데크로 개방적인 느낌이 든다. 2층, 즉 주택 1층은 라이프타일에 따라 소파와 테이블 등 가구 배치를 달리도록 구획을 없앴다. 실린더처럼 설치된 화장실은 사각의 전형적 틀을 탈피했다.

주택은 마치 요새처럼 백색 화강석 벽으로 사방이 가로막혀 있다. 형태는 급속한 주변 환경 변화에 대응해야 했다. 아파트, 4층 규모 연립주택도 새로 생겼다. 시선을 흩트리는 곳은 막고, 조망권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곳은 막지 않았다. 신축 당시 60대 후반인 건축주는 집의 향후 쓰임을 비중 있게 고려해 달라고 주문했다. 건축주 이후의 사용자를 예상하고, 건물 주위가 카페·레스토랑·갤러리 등으로 바뀔 것을 감안해 설계했다.

방배동 단독주택(2013년) /사진제공=조남호 건축가
오스트리아 건축가 한스 홀라인(Hans Hollein·1934~2014)은 1968년 '모든 것은 건축이다(Everything is Architecture)'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물질적인 구축만이 아니라 비물질적 구축도 건축 공간이라는 뜻이다. 조남호는 여기에 빗대어 '모든 주택은 건축이다'라고 말한다. 주택은 그가 말하는 '건축의 보편성'을 담은 표본이다.

건축의 보편성은 무엇인가? 건축은 공학, 사회학과 같은 인문, 미학과 같은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어 자칫 구현되는 과정이 모호해지거나 사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조남호는 유형학적 접근이나 '매트릭스(matrix)' 개념을 고려한다. 그가 생각하는 '유형(類型)'은 건축가로서 자신의 고유성(개별성)에 앞선 보편성의 틀을 말한다. 매트릭스는 가로세로로 그물처럼 엮인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사람의 '동선(動線)'이 중심 개념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 건축가·이론가인 알도 로시(Aldo Rossi·1931~1997)는 도시의 역사성과 콘텍스트를 존중하는 유형학(typology) 건축을 제시한다. 장식을 배제하며 미니멀리즘 공간 구성을 특징으로 한다. 장구한 세월 동안 도시가 구성한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 로쿠스(locus·궤적)가 건축의 일부임을 주장한다. 모더니즘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지향점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모더니즘 철학은 모순을 드러냈다. 형태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형태 이전에 존재하고 형태를 성립시키는 논리적 원칙을 알도 로시는 '유형(type)'이라고 본다. 교회와 불당은 다른 종교 건물이지만 '중심형 공간'이라는 유형이 된다. 유형이란 불변하는 건축의 본질이며 문화적 요소이고 역사적 축적물이다.

단독주택이든, 아파트와 같은 집합 주택이든 주거·생활 편의성이 최우선이지만 건축가에게 시간을 뛰어넘는 비물질적 구축 장치는 중요하다.

조남호는 대형 건축사무소 '정림'에서 상업 건축 실무를 익혔다. 1995년 독립 3년 차 12명의 솔토지빈 건축사무소는 위기를 맞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경제 체제로 일이 절반으로 줄었다. 구성원 간 합의를 거쳐 일하면서 학습하는 조직으로 전환했다. 전 직원의 급여를 포함한 지출을 줄이면서 고용은 유지할 수 있었다.

본업인 설계 외에 시공 사업에 참여하는 경영상의 변화를 모색했다. 공정이 많은 콘크리트 건축은 신규 참여가 쉽지 않다. 목구조 건축은 공정의 70%를 목수가 담당한다. 목구조 건축은 모든 건축가들 바람이기도 하다. 설계·시공 일체는 건축 도면과 건설 현장, 구조적인 논리와 시각적인 효과를 엮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목구조 건축 시장이 부상하고 있었다.

학습지 회사 교원그룹의 충남 도고 연수원 게스트 하우스(2000)는 지명 공모 방식의 프로젝트이다. 대지 540평에 10채 규모를 지었다. 서양식 목구조에 한옥 공간 개념을 도입했다. 자연스러운 나무 질감과 색채도 우리의 전통 건축 양식에서 차용했다.

충남 도고 연수원 게스트 하우스(2000년) /사진제공=조남호 건축가
준공 당시 연못에 나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집을 얹어 물 위에 떠 있는 듯하게 만들었다. 앞마당 연못을 옆에 두고 나무 데크를 건너 라운지에 서면 집 밖에서 보았던 넓은 지붕이 집 안에서는 높고, 경사진 나무 천장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로비에는 5개 기둥이 가로지르고 있다. 각각 기둥에서 나뭇가지가 4개씩 뻗어 나가 넓은 지붕 면의 보와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부재가 가늘고 재료가 통일되어 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 회사에는 구조 해석과 자재 수급을 협력한 프로젝트다. 2000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인 하나뿐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건축적 완성도, 기술, 디테일이 평가받았다. 목조라고 하면 으레 통나무 집과 전원 주택을 연상하던 통념을 깨뜨렸다. 이후 회사는 상승 기류를 탔고, 교원그룹에서도 10여 년간 순차적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조남호는 '목조 건축가'라는 말을 싫어한다. 목조 건축이 일상인 유럽이나 일본은 보편적 직업으로 건축가가 있을 뿐이다. 그는 철근, 콘크리트, 유리 재료 중심인 도시 건축에 목조가 대입되면 어떠해야 되는지를 늘 질문한다.

이상적인 사무실 건축은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1886~1969)가 설계한 뉴욕의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1958)이다. 시그램 빌딩은 디테일의 완벽함과 거리에서 27m나 뒤로 물러난 곳에 위치해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광장이 조성됐다는 점이다. 그는 도심 속 목조로 구현될(접맥될) 오피스 빌딩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나무가 자라면서 탄소를 흡수하고 건축 재료로 남으면서 탄소를 보관한다. 나무 성분인 탄소 때문에 태워서 불을 낸다. 나무가 썩으면 나무 안의 탄소가 다시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나무를 건축 재료로 사용해서 썩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목조 건축이 친환경적인 이유다.

통상 아파트 건축은 대형 건축사무소의 주거 파트가 담당한다. 아틀리에 사무소는 잘 수주하지 않는다. 솔토지빈건축은 목조 건축 경험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공모하는 '공공성을 갖는 공공주택'에 접목했다. 그는 건축사무소를 경영하면서도 1년에 51강 코스의 목조 건축 강좌를 3년 내내 수강할 정도로 몰입했다.

2018년 중계본동 백사(104)마을 국제 지명 공모에 당선됐다. 천사(1004)가 천사(天使)가 아닌 것처럼 숫자에서 차용한 지명이다. 조남호가 보는 서울의 정체성은 '산과 강'이다. 한국의 현대화 흐름과 함께한 사람 숨결이 남은 불암산 자락의 달동네에 자연과 편의의 인공을 적절하게 결합하는 제안을 했다.

서울 중계본동 백사마을 조감도 /사진제공=조남호 건축가
전체 대지 4분의 1을 차지하는 옛 골목 생태계를 살리고, 구릉지에 2000가구가 들어갈 아파트를 어떻게 짓느냐는 문제를 던졌다. 아파트도 단지 내에 가족 수와 가구 특성 등을 구분해 몇 개 그룹으로 설계를 특화하면 정주(定住) 환경을 향상시킬 수 있다. 경사엘리베이터, 이곳저곳에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커뮤니티센터 등을 보완하기로 했다.

백사마을은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에 허물고 아파트를 지으려다 보존재개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남호는 자신이 긋는 선 하나가 한 인간의 삶을 바꾼다는 걸 안다. 타인의 삶을 실험 대상으로, 다른 이의 돈으로 자신의 건축 철학을 실험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국제 공모는 보편성, 설득력, 뚜렷한 가치를 가지고 구현할 수 있는 건축적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조남호의 논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는 시금석이었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장소는, '여기'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구성하기 위한 출발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여기는 미래 세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 속 장소에 머문다. 가치를 지닌 담론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점을 경계한다. 건축가에게 공모 준비 과정은 이러한 논리를 정리하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

궁극적으로는 건축적으로 정확하게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관건이다. 최종 설계안은 6~8월 납품 예정으로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남호 건축가는 자신이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디를 가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색깔이 뚜렷한 작품 보다는 궁극적으로는 '건축의 보편성'을 품은 '유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땅에서 건축이 마땅히 지향해야 되는 게 무엇인지 고민이 많은 듯하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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