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미스트롯] 심사위원들이 그들보다 나은가, 나는 회의적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1. 1. 29.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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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점수로 환산한다는 것 자체가 무례이다
그러나 대중은 금메달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
이 프로그램은 인생의 가장 비밀스러운 곳을 찌른다

스물다섯명만 살아남았다는 이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누가 더 노래를 잘 하는지는 더 이상 심사 기준이 될 수없다. 이들의 노래를 점수로 평가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이들은 모두 노래를 잘 하고 팀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서 최선의 무대를 보여줬다. 어떤 사람이 이들 중 일부를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인가.

5000만명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1200만명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투표를 했다고 한다. 고종이 나라를 말아먹은 이후 이만한 사람들이 한 가지 이슈에 뭉친 적이 있는가. 나는 이것이 두렵고도 놀랍지만 동시에 슬프다. 어떻게 대한민국이 세워진 이후 70년간 어떤 공적인 움직임도 이런 성과를 일궈낸 적이 없는가. 삼성과 현대와 LG가 그것을 해냈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 나라를 이끌고 간다는 자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업적을 파먹고 자신들의 권력을 틀어쥐고 있을지 골몰할 뿐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들과 수치스러운 권력자들 사이에서 매일 괴롭다. 나는 이 나라에서 살고 싶지만 동시에 이 나라에서 떠나고 싶다. 나는 왜 트로트 프로그램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가.

팀 미션으로 진행된 어제 미스트롯은 결국 김다현과 김태연 전유진의 삼파전이었다. 이럴 수가! 오랫동안 음악 동네에서 갈고 닦은 사람들이 춤 추고 몸을 비틀며 최선의 무대를 펼쳤음에도 저 10대 세 사람의 노래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시청자들은 어리석지 않다. 단지 노래 잘 하는 사람의 무대를 본 적이 없을 뿐이다. 미스트롯에 나온 모든 사람들이 엄청나게 잘했지만, 얄밉게도 대중은 그 가운데 더 잘하는 사람을 골라낼 줄 안다.

모든 팀이 코러스를 무기로 내세웠다. 대개 소프라노와 앨토로 나눴고, 어떤 자신 있는 팀들은 세 파트로 나눠서 더 다채로운 중창을 들려줬다. 이런 무대는 방송에서 거의 없었다. 우리는 왜 가끔 듣게 되는 오케스트레이션에 열광하는가. 멜로디와 그 저변에서 따라오는 코러스에 본능적으로 감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오케스트라를 듣다가 실내악에 관심을 갖게 되는가. 그 하모니의 세심한 분업에 눈을 뜨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하이파이 오디오에 돈을 쓰게 되는가. 그 사운드를 낱낱이 들려주는 기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스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은 마치 시골 오일장처럼 왁자지껄하지만, 사람들의 귀를 핀셋으로 찔러 자극하고 그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짜 음악에 눈을 뜨게 해주기 때문이다.

‘얘야 시집 가거라’라는 노래를 듣는 요즘 젊은 시청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열아홉살 순이가/ 집안 살림 잘한다고/ 동네방네 소문났는데/ 얘야 시집 가거라” 같은 가사를 시청률 30% 프로그램에서 듣는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마리아.

나는 마리아의 팬이지만 그녀는 마지막까지 가기 어려울 거란 생각을 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록 보컬리스트이고 모든 장르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다. 장윤정이 말한 대로 “미아리/ 눈물 고개” 부분을 “흑미아리/ 눈물 고개” 식으로 부르는 걸 보면 마리아는 트로트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트로트의 블랙홀이란 것을 모른다는 뜻이어서, 아쉽지만 마리아는 이 대회에서 최종 결선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의 분전은 너무 아름답다. 어떻게 한국 생활 3년 만에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됐는지는 미스터리다.

전유진

전유진은 분명 최종 무대에 갈 것이다. 이 어린 친구는 흠 잡을 데가 없다, 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녀의 저음은 30대 가수들보다도 원숙하다. 전유진이 마지막 왕관을 쓰지 못한다 해도 나는 이 천재적 가수가 어떤 길을 걸을지 꼭 지켜볼 생각이다. ‘범 내려온다’를 리드한 초등학생 김태연은, 이 경연에서는 아마도 최종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다. 이 소리 신동은 이런 무대에서 1등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 이런 친구는 한국의 국악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아홉살 김태연이 “양귀 찌어지고/ 가만히 엎졌겄다” 같은 부분은 노래할 때, 나는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웠다. 국악을 모르지만 국악을 이해할 수 있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2’ 심사위원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무대보다는 심사위원석을 더 쳐다보게 됐다. 그들이 이 엄청난 가수들을 심사할 수 있는가. 그들이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보다 노래를 잘한다고 할 수 없다. 다만 한국 음악시장에서 먼저 성공했을 뿐이다. 그들도 그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박자와 음정과 강약을 더 잘 안다고 해서, 그들이 낫다고 할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은 무대와 심사위원석이 격렬히 충돌하는 이상한 냄비 속이다. 다들 같이 끓어가면서 누가 튀겨져 나가는지 두려워하는 지옥의 무대다. 이것이 이 프로그램의 진짜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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