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은 밥이, 불평등 살찌웠다

최윤아 입력 2021. 1. 29. 05:06 수정 2021. 1. 2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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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승 "벼농사 유산, 재난 대처 능력 키웠으나 연공제 '씨앗\' 돼"
쌀과 재난 틀로 바라본 한국 불평등 새롭지만 환원론으로 읽히기도

쌀 재난 국가: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이철승 지음/문학과지성사·1만7000원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말해준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신작 <쌀 재난 국가>는 이 말을 충실히 따른다. ‘우리가 먹는 것(쌀)이 우리(의 불평등)를 설명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다. 전작 <불평등의 세대>에서 386세대를 한국 사회 불평등을 조장·방조하는 세력이라고 주장했던 이 교수는 이번엔 ‘쌀’을 불평등의 ‘기원’으로 소환한다. 오랜 세월 벼농사를 지으며 형성된 국가관, 노동 관행, 사고·심리 패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불평등을 빚어냈다는 것이다. 이른바 ‘쌀 이론’(rice theory)이다.

‘주식(主食)’을 창(窓) 삼아 특정 문화권의 습성을 도출해내는 지은이의 접근방식은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에 영감 받았다. 브로델은 밥과 빵의 차이가 동서양 문화권을 구분 짓는다고 주장한 대표적 학자다. 그는 밀의 불완전성(비타민D와 단백질 결핍)이 목축·분업·유통을 앞당겨 서구에 자본주의를 더 빨리 정착시키고, 반대로 쌀의 영양학적 완결성이 동아시아의 정체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브로델의 이론에 안개처럼 깔린 오리엔탈리즘을 걷어내고, 쌀이 한국과 동아시아에 남긴 ‘진짜’ 부산물이 무엇인지를 추적해 나간다.

쌀이 남긴 독자적 유산을 살피려면 밀과의 대조가 필연적이다. 지은이는 쌀과 밀의 재배 방식 차이 가운데 특히 두 가지에 집중한다. “쌀은 엄청난 물을 필요로 하지만, 밀은 그렇지 않”고, “쌀은 파종부터 수확까지 인간의 노동력을 짧은 시간 안에 다량으로 투입해 완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26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철승(오른쪽) 서강대 교수. 문학과지성사 제공

물 확보는 벼농사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변화무쌍한 동아시아 기후는 수시로 홍수와 가뭄을 불러왔다. 자연히 물을 필요한 때 가두고, 끌어오는 ‘물 통제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높았고, 정주민들은 이 역할을 나라가 해주길 기대했다. 정권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이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신라 일성왕이 “농사는 정치의 근본이요 식물은 백성의 하늘이니 여러 주·군은 제방을 수리하고 농토를 널리 개척하라 하였다”는 기록이나, 가뭄을 “(왕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 표현했던 조선왕조실록이 보여주듯, 통치는 곧 치수였다. 나라도 백성도 ‘재난 관리’를 국가의 존재 이유로 삼았기에 쌀 문화권인 동아시아 국가들은 재난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대처 역량도 대체로 뛰어나다고 지은이는 본다. 반면 재난에만 함몰된 국가관이 복지국가로 가는 동력을 떨어뜨려 불평등을 유지시킨다는 점도 동시에 지적한다.

봄철 모내기, 가을 수확 철에 집중적으로 대량의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는 벼농사 특유의 ‘공동노동’ 방식(품앗이·두레)이 훗날 불평등을 발아시키는 주요한 기제가 됐다는 건 이 책에서 지은이가 가장 힘주어 말하는 부분이다. 개별 가족끼리 지어도 되는 밀 농사와 달리, 벼 농사는 씨족·이웃이 함께 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험이 풍부한 연장자의 발언권에 과도한 힘이 실리고, 이렇게 형성된 ‘위계’가 산업화 초기 연공제(능력이나 숙련도가 아니라 근속연수에 따라 표준화된 임금을 주는 방식)라는 제도로 기업에 이식되면서 한국 사회 불평등이 가속화됐다는 주장이다. 연공제가 ‘베이비붐’이라는 인구구조와 엮이면서 비용 압박에 시달린 기업이 신입사원 대신 비정규직을 뽑고, 하청업체에 납품 단가 후려치기를 일삼으면서 노동시장을 소수 정규직과 다수 비정규직으로 이분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국의 ‘연공제 기울기’(최초 입사 노동자 대비 30년 뒤 임금 배율)는 3.3배로, 일본(2.4배)과 서유럽(1.7배)을 압도한다. 지은이는 그 원인으로 동일한 쌀 문화권인 일본과 중국이 연공제 개혁에 나선 데 반해, 한국은 ‘세대 네트워크’로 단단히 묶인 노조가 이를 저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제시한다.

공동노동의 부산물은 또 있다. “협력하면서 동시에 경쟁하는 태도”다. 우리 선조들은 서로의 논에 손을 담그며 함께 일했지만, 그 논에서 나온 생산물은 각자가 소유했다. 이런 ‘공동생산-개별소유’ 관행은 협력하면서 경쟁하고, 질시하며, 서로의 작업 방식이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간섭하는 이중적이면서도 끈적끈적한 관계를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이런 ‘점도’는 “타인의 간섭과 비난을 우려”하고, 늘상 타인의 눈치를 보게 만들어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역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이 교수는 쌀 생산량이 많은 국가일수록 코로나19를 잘 통제했다는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한다),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무한경쟁과 불신”을 조장해 불평등에 공동대응하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철승은 책에서 “벼농사 체제는 과거의 유산일 뿐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구성하는 촘촘한 그물망”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은 지난 2019년 서울 창덕궁에서 열린 모내기 행사.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쌀 재난 국가>는 벼농사 체제가 동아시아만의 독특한 습성을 만들었고, 이것이 불평등을 키웠다는 논리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면 쌀-습성-불평등 사이 연결고리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헐거운 고리가 간혹 보인다. 예컨대, 같은 밀 문화권인데도 불평등을 대하는 인식과 태도가 판이한 미국과 노르웨이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 같은 상식적 의문에 대한 지은이의 설명이 없다. 밀과의 대조를 통해 쌀 문화권의 정체성을 규명해 가야 하는 구조이기에, 밀이 흐려지면 쌀도 약화된다. 쌀 문화권의 특성이 과도하게 포괄적이어서(경쟁, 협력, 위계, 질시 등) 그 독자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부분도 아쉽다.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이 교수는 이런 평가에 대해 “(밀 문화권 내) 정치체제와 종교 등 다른 변인이 있는데 이 책에서 모두 언급하지는 못했다”며 “환원론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았지만, (…) 우리가 선조부터 반복하고 있는 것을 통해 불평등을 설명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또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청년실업이라고 본다”며 “벼농사 체제의 유산인 연공제를 해체하고 숙련도에 따른 직무제 도입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앞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과 혁신은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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