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해지려면 버려야 한다

한겨레 2021. 1. 2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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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집콕'의 겨울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틀어박혀 오랜 시간을 보내려니 방 안이 금방 더러워지는 것이 신경 쓰였다.

무고한 시민을 납치해 살인 행각을 벌이는 집단을 처단하는 젊은 킬러 스넨, 평범한 회사원치고는 나름 담력이 센 샤오쥔, 두 사람의 첫 만남이다.

다크웹을 통해 벌어지는 각종 강력 사건을 청소집착증 킬러가 응징한다는 추리 서사에 고단한 회사원의 삶에 대한 현대 사회적 관찰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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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책&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쿤 룬 지음, 진설희 옮김/한스미디어(2021)

소위 ‘집콕’의 겨울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틀어박혀 오랜 시간을 보내려니 방 안이 금방 더러워지는 것이 신경 쓰였다.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에 눈길이 갔던 건 이런 이유일지 모른다. 별일 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도 청소할 것이 산더미인데, 살인마라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대만의 익명 토론 커뮤니티 피티티(PTT)에 연재되어서 인기를 끌었다는 이 추리소설은 웹소설답게 빠른 전개와 개성적 인물, 동시대성이 특징이다. “대표는 뭣 같고, 동료는 엿 같고, 거래처는 거지 같은”(13쪽) 회사 생활을 하는 평직원 샤오쥔은 야근 후 비가 내리는 밤에 집으로 돌아가다가 납치당한다. 어두운 낯선 욕실에서 결박당한 채로 눈을 떴을 때, 누군가 샤워 커튼을 걷고 들어온다. 말간 얼굴의 소년은 샤오쥔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피가 뚝뚝 흐르는 걸레만 빨고 나간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손에 피자 상자를 들고 있다. 소설의 1장, “주기적으로 청소하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실례입니다”의 내용이다.

무고한 시민을 납치해 살인 행각을 벌이는 집단을 처단하는 젊은 킬러 스넨, 평범한 회사원치고는 나름 담력이 센 샤오쥔, 두 사람의 첫 만남이다. 다크웹을 통해 벌어지는 각종 강력 사건을 청소집착증 킬러가 응징한다는 추리 서사에 고단한 회사원의 삶에 대한 현대 사회적 관찰을 얹었다. 소설은 스넨이 어쩌다 결벽증을 얻게 되었는지, 그가 어떻게 자신의 복수를 행하는지를 따라간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살인마 집단, 남을 조종하는 냉혹한 사이코패스 등 전형적인 악인 캐릭터들이 잇달아 나타나 흥미가 쌓여간다.

이런 식으로 재미를 자아낸다는 것,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의 제일 큰 문제이다. 대중의 관심을 계속 붙들고자 하는 소설들이 공통으로 빠지기 쉬운 함정이기도 하다. 경쾌한 필치로 묘사되는 사건들은 실은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중범죄이다. 악인의 잔혹성을 보여주기 위해 인체 훼손 장면이 선명하게 묘사된다. <한니발>이나 <덱스터> 같은 미국 드라마에 익숙한 독자라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이다. 주인공의 과거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던 아동 대상 범죄 장면에서는 가해자의 시점과 감정이 지나치게 드러난다. 범죄소설은 누군가의 피해를 소재로 해야 성립하지만, 거기서 선을 그을 때만 문학적 감상이 우러나는 장르이기도 하다.

처음 이 책을 집었을 때 발랄한 세계관과 강렬한 인물 설정에 마음이 확 쏠렸다. 하지만 책을 닫았을 때는 무언가 다 치우지 않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사회 문화적 차이, 장르적 특성, 작가의 개성을 다 감안하더라도 윤리적 경계가 필요한 장면이 있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장르소설에서는 편집자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기는 소설이다.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적절히 버리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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