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트윈타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송지혜 기자 입력 2021. 1. 29. 03:46 수정 2021. 3. 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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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자 '근무시간 꺾기'가 없어져 토요일에 쉬게 됐다. LG그룹 가족 회사의 재하청 업체가 바뀌면서 이들은 전원 해고됐다. 업체 측은 전환배치 입장을 밝혔지만, 노조 측은 노동자를 분리시키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1월11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건물 1층 로비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27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LG트윈타워 해고 청소 노동자들.

출입은 통제되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LG트윈타워에는 사방이 경비로 둘러막혀 있었다. 동관, 서관, 지하로 향하는 모든 출입구뿐만 아니라 주차장에서까지 건장한 20대 남성 경비가 출입 이유를 묻고 사원증 제시를 요구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통행이 자유로운 건물이었다. 1월11일 사흘째 방문한 끝에 “(지하에 있는) LG유플러스 대리점에 방문한다”라고 둘러대고서야 로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경비 수십 명이 기자의 움직임을 살피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어디론가 전송했다. 자동으로 몸이 긴장됐다. 같은 날 오전 11시30분, LG그룹 직원 수천 명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로비로 쏟아져 나왔다. LG트윈타워 건물에는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전자 등이 있다. 20~40대 모든 직원은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바삐 오가는 이들을 사이에 두고 창가 끝에 선 60대 여성 청소 노동자 20여 명이 ‘고용승계’를 외쳤다. 몇몇 LG 직원은 청소 노동자들이 나눠주는 홍보물을 받아들었다. 거기에는 ‘엘지 임직원 여러분, 청소 노동자들을 조금만 이해해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 30여 명은 지난해 12월16일부터 로비에서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다. LG트윈타워의 건물 관리는 S&I코퍼레이션(S&I)이 맡고 있다. S&I는 청소 업무를 지수INC에 재하청 준다. 청소 노동자 80명은 지수INC 소속이다. 이곳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고모 구훤미씨와 구미정씨가 각각 50%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30일 S&I는 청소 품질 저하를 이유로 지수INC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지수INC 역시 고용돼 있던 청소 노동자들에게 계약 종료를 알렸다. 결국 지난해 12월31일 청소 노동자 전원이 해고되었다. 1월13일 현재, 청소 노동자들은 29일째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냉기가 올라오는 로비 대리석 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이들은 지수INC에 대한 계약해지가 청소 품질 저하가 아니라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LG트윈타워 분회가 생긴 건 2019년 10월. 그로부터 두 달 전, 박소영 분회장은 새벽 4시 출근길 버스에서 ‘노조’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이른 새벽의 첫 버스와 지하철은 청소 노동자들로 항상 붐빈다. ‘노조가 생기면 일하기 좋아진다더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청소 노동자 노조가 생겼는데, 처우가 개선됐대’라는 소리에 귀가 열렸다. 2019년 한 해 동안 ‘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 정년이 만 60세로 새로 생긴다더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나는 가장이라 정년에 관심이 많아요. 지수INC가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건강하기만 하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만 60세 정년 얘기가 들렸어요. ‘내가 총대 메고 노조를 만들자.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나가자’라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2016년 8월 환갑이 넘어 지수INC에 입사한 박소영 분회장은 정년이 서류상의 조항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2019년 당시 67세에도 일하는 동료가 있었다. 박소영 분회장은 전체 80명 가운데 39명에게 민주노총 가입 동의서를 받았다. 이에 대해 지수INC 측은 취업규칙상 정년을 만 60세로 하고 직원의 건강상태, 업무수행 능력에 따라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 근무할 수 있도록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IN 신선영LG트윈타워 로비 벽면에 철지난 크리스마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 월급은 딱 최저임금이었다. ‘근무시간 꺾기’도 있었다. 지수INC는 오전 6시부터 하루 8시간 일하는 청소 노동자의 점심 시간을 1시간이 아닌 1시간30분으로 잡았다. 그러면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매일 30분, 매주 2시간30분의 노동시간 부족분이 생긴다. 청소 노동자들은 이를 격주 토요일 근무로 채웠다. 1년에 여덟 번씩 2000평 바닥의 때를 벗겨내는 왁스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때 지수INC는 “식사 제공 규정은 없지만 간식으로 빵과 우유를 줬다”라고 밝혔다. 토요일 아침 6시부터 일을 한 청소 노동자들이 보기에는 '짠 관리자'는 1000ml 우유와 빵을 사람마다 조금씩 덜어주고, '덜 짠 관리자'는 200ml 우유 한 팩과 빵 한 봉지를 한 사람씩 나눠주었다. 12년 차 청소 노동자 박소영씨는 이렇게 일하고 한 달에 169만원을 손에 쥐었다. 노조가 생긴 뒤, 제법 많은 게 변했다. 명절 상여금 10만원이 생겼다. 근무시간 꺾기가 없어져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왁스 청소는 외부 용역업체에 맡겼다.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청소 관리자들이 우리를 밑바닥이라고 무시했는데, 나는 갑질이 뭔지, 착취가 뭔지, 헌법이 뭔지 이제 알아요”라고 10년 차 청소 노동자 유영철씨가 말했다. 박소영 분회장은 “당당하게 고용승계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생겨요. 우리는 전국 청소 노동자의 등불이 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해고 다음 날인 2021년 1월1일, 회사 측에 이들은 더 이상 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가 아니었다. 청소 노동자 30여 명은 LG트윈타워 1층 로비에 고립되었다. 사측은 식사 반입을 막고 전기와 히터를 끊었다. 청소 노동자들을 위해 음식을 반입하려는 시민들과 이를 막으려는 용역 직원이 서로 힘을 쓰다가, 시민 한 명이 회전문에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가 하면 외부에서 문틈으로 시민들이 청소 노동자를 위해 던진 초코파이를 경비들이 수건돌리기 하듯 던지고 빼앗는 영상이 SNS에 퍼지면서 LG 측에 대한 여론 비난이 쏟아졌다. 다음 날인 1월2일 점심부터 음식 반입이 허용되고 전기가 들어왔다. 그러나 청소 노동자들은 한번 LG트윈타워 문 밖으로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도, 몸이 아파도 그저 버틴다. 이에 대해 지수INC 측은 “조합원들은 트윈타워에서 나가 잠을 자고 들어오며, 옷을 갈아입고 머리도 자르는 등 사실상 자유롭게 출입하며, 방송에도 출연한다”라고 반박했다. 노조는 “언론 보도가 많이 나오니 1월15일부터 출입이 가능해졌다. 그전까지는 회사 경비가 신분을 확인하고 절대 못 들어오게 막아서, 급한 일이 있을 때 나갔다 몰래 들어가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60세 전후 들어서 평생 처음으로 ‘노조’를 꾸리고 ‘농성’을 해보는 청소 노동자들은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지만, 외롭진 않다. 당초에는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구내식당을 이용해야 했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청소 노동자들을 위한 구내식당 식권 한 장 값 5500원을 후원하는 ‘한 끼 연대’가 생겼다. 4000명가량이 한 끼 연대에 참여하면서 7000만원에 달하는 후원금이 모였다. 회사 측은 청소 노동자들의 구내식당 이용을 막아버렸다. 그렇게 되자 시민들이 나서서 도시락을 반입해준다. 10년 차 청소 노동자 유영철씨는 매일 새벽 인사를 나누던 LG화학 직원에게 ‘힘내시라’는 응원의 말을 들었다. 최근에는 LG제품 불매운동이 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청소 노동자 쫓아내면 LG 제품도 쫓겨나요’라는 슬로건이다. 유영철씨는 농성을 하며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에 대해 처음 알았다. 그가 보기에 김진숙 지도위원은 ‘대단하고 안타깝고 존경스럽고 훌륭한’ 사람이다. 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들은 복직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30일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 청와대를 향해 걷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짧은 편지를 남겼다. “힘내세요. 투쟁하며 발자취를 따라가겠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화답했다. “봉쇄된 로비 찬 바닥에서 지새우는 2021년 해고 노동자가 1986년 해고 노동자에게 힘을 내라는데 나는 눈물이 난다. 여성 노동자들이 그것도 최저임금의 노동자들이 해고돼 싸우는 현장에 가면 늘 마음이 아프다. 우리 세대 딸들이, 여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기에. 그래서 저 싸움은 생애를 건 투쟁이다.”

ⓒ시사IN 신선영해고 노동자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로비로 나온 LG그룹 직원들에게 고용승계를 호소하고 있다.

지수INC와의 계약을 종료한 S&I는 청소 용역업체 백상기업과 계약을 맺었다. 통상 용역업체가 변경되더라도 기존 업체 노동자의 고용을 승계하는 게 관례이지만, 백상기업은 공개 경쟁 채용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LG트윈타워 청소 관리자와 비조합원 청소 노동자 10여 명만 고용을 승계했다. 노조 측은 이 같은 절차를 LG그룹의 압력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류한승 조직부장은 “홍익대를 비롯해 노동조합 와해를 목적으로 용역업체를 변경해 집단해고를 추진한 사례와 동일한 양상이다”라고 말했다. 2011년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 170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지 한 달 만에 용역업체 변경을 핑계로 집단해고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49일간 본관 점거 농성 끝에 전원 고용승계 및 임금인상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이와 별도로 1월8일, 지수INC는 청소 용역업에서 손을 떼고 지분의 전량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LG그룹은 “특수관계인(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고모) 소유에 따른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수INC는 “매각과는 별도로, LG트윈타워에서 파업 중인 65세 미만 청소 노동자를 다른 현장으로 전환 배치하겠다. 65세 이상 청소 노동자에게는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 측은 노동자들을 분리시켜서 노조를 와해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1월11일 LG트윈타워 로비 벽면에는 철지난 크리스마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기 예수 탄생 축하드리며 고용승계 선물 주세요.’ LG그룹 회장을 향해 쓴 소원도 눈에 띄었다. ‘구광모 회장님, 고용승계 성탄 선물 꼭 주실 줄 믿습니다’ ‘구광모 회장님, 가장 더러운 곳을 쾌적하게 닦아드리는 우리의 손을 한번 잡아주세요’…. ‘4세대 총수’ 구 회장은 2018년 LG그룹을 세습받았다. 60대 청소 노동자들은 오늘도 고용승계라는 조금 늦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송지혜 기자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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