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칼럼] 중우정치는 음모론을 먹고 자란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2021. 1. 29.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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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기득권 집단이 지도자 박해한다는 음모론
'문빠'와 '트빠'의 공통점
'대안적 사실' 만들어 법치 파괴를 개혁으로 미화
문 정권, 暴民政 전성시대

음모론과 정치 팬덤은 나라를 둘로 쪼갠다. 문빠와 트빠(트럼프 열성 지지자)에게 객관적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충돌하는 사실은 모두 가짜 뉴스로 여긴다. 자기편 선동가들이 만들고 유포한 거짓 내러티브를 맹신한다. 이들 정치 팬덤의 믿음은 정치 종교가 되어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하다. 트럼프는 사라졌지만 극단적으로 갈라진 미국은 사회 심리적 내전 상태다. 지금도 미국 공화당원의 75%, 트럼프 지지자들의 80%는 ‘트럼프가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믿는다.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내 TV에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생중계가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강력한 기득권 집단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박해하고 있다는 게 정치 팬덤의 음모론이다. 미국을 장악한 숨은 권력 집단인 ‘딥 스테이트(Deep State)’가 ‘정치 구세주 트럼프’를 ‘사기 투표’로 축출했다는 게 트빠의 신앙이다. 문빠는 보수 야당과 언론, 검찰과 법원, 재벌이 뭉친 수구 반동 세력이 ‘정의의 사도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추미애 전 법무장관을 음해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선악 대결로 세상을 보는 정치 팬덤은 문 정권의 ‘윤석열 죽이기’가 증명하듯 정의 실현의 미명 아래 불법과 폭력을 정당화한다.

중우정치는 음모론과 거짓말을 먹고 자란다. 진영 대결이 키운 증오와 적대는 폭민정(ochlokratia)을 부추긴다. 최악의 코로나 재앙과 경제 위기에도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7400만 표를 얻었다. 총체적 실정과 민생 파탄에도 문 대통령 지지율은 40%에 이른다. 표현 자유가 보장된 ‘생각의 시장’에선 사실과 진리가 승리한다는 통설을 음모론과 정치 팬덤이 무력화시켰다. 음모론은 ‘사회적 폭포 효과’와 ‘집단 극단화’를 통해 퍼진다. 우리가 타인에 의존해 판단을 내리고 선동가가 대중을 장악할 때 폭포 효과가 시작된다.

정보의 폭포에 휩쓸린 대중은 의문이 생겨도 남의 평판을 의식하는 ‘동조화(同調化) 폭포 현상’ 때문에 침묵한다. 동조화 폭포는 집단 극단화를 낳는다. 대깨문처럼 집단 구성원의 소속감이 강할수록 집단 내에서의 정보 교류가 음모론을 키워 극단으로 치닫는다. 문빠와 트빠가 결코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사회적 폭포 효과와 집단 극단화 때문이다. 음모론 신봉자들을 사실에 입각해 설득하면 그들은 더 격분하면서 음모론을 비판하는 여론 자체를 음모의 증거로 여긴다. 인간은 자신의 편향된 입장에 맞게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이다(편향 동화·biased assimilation). 희대의 선동가이자 병적인 음모론자인 유시민과 김어준이 진보 진영에서 선지자이자 의인(義人)으로 대접받는 이유다.

정치 팬덤에 업힌 선동가의 음모론이 득세하면 민주주의는 고사(枯死)한다. 페리클레스의 리더십으로 번영하던 아테네 민주정은 순식간에 참주들이 활개 치는 폭민정으로 전락했다. 군중을 선동해 민회를 장악한 포퓰리스트들은 법과 정의를 파괴한 폭민 통치(mob rule)로 고대 아테네를 망가뜨렸다. 트럼프 시대는 중우 정치가 민주정을 잠식하면서 미국 민주주의를 균열시켰다. 문재인 정권 4년도 정의와 불의의 잣대가 뒤집히고 거짓이 사실을 압도한 음모론과 폭민정의 전성시대였다.

최악의 음모론은 거짓으로 이루어진 ‘대안적 사실’을 창조한다. 음모론의 세계 구성 효과는 커뮤니케이션을 반(反)커뮤니케이션으로 변질시킨다. 문 정권의 소통이 ‘쇼통’으로 전락한 맥락이다. 문빠들이 만든 대안적 세계에서 조국·추미애가 벌인 법치 파괴의 난장판은 숭고한 개혁 행보로 미화된다. 문 대통령은 국민이 생명 바쳐 옹위해야 할 ‘달님’이 되고 한국은 세계가 우러르는 ‘문재인 보유국’으로 추앙된다. 가짜 뉴스의 바벨탑 위에 세운 자폐적 착란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이 문 대통령을 ‘특등 머저리’라고 비난해도 화해 신호로 여길 정도로 문 정권의 집단 망상은 강고하다. 핵전략 국가로 질주하는 김정은의 야욕을 비핵화 의지로 읽는 문 대통령의 대안적 세상은 대한민국을 미증유의 안보 위기로 몰아넣는다.

파당적 언론들은 음모론을 더욱 부풀린다. 정보 혁명이 증폭시킨 가짜 뉴스의 바다엔 남을 해코지하는 인간성의 그늘이 자리한다. 음모론과 허위 정보를 바로잡지 않고선 좋은 나라와 성숙한 삶은 실현되지 않는다. 미국 사회는 ‘선동가 트럼프’의 반역 행위를 징벌하는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었다. 음모론과 폭민정에 맞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현대 한국 정치의 사활적 과제다. 맹목적 정치 팬덤과 결탁한 음모론은 열린 사회의 적(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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