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인터넷 시대, ‘개미’가 ‘군단’으로

김홍수 논설위원 2021. 1. 29.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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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게임스톱은 전국 유통망을 가진 대형 게임 유통업체지만 수년째 적자에다 부채 비율이 360%대에 이르는 부실기업이다. 이런 기업 주가가 26일 93%, 27일 135% 폭등했다. 연초 17달러 선이던 주가가 한 달도 안 돼 20배가 넘는 347.5달러로 치솟았다. 그런데 주가 폭등 이유가 황당하다. “주가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를 혼내주자”며 개미 투자자들이 총궐기한 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개미 투자자들이 “헤지펀드를 혼내고 돈도 벌자”면서 적은 돈으로 주식 대량 매입이 가능한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 등을 활용해 주식 매수에 나섰다. 주가가 급등하자 공매도 세력이 다급해졌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개미군단 편에 선 것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상장 이후 줄곧 공매도 세력의 공격에 시달렸던 머스크는 소셜미디어에 ‘게임 스톤크(게임스톱과 ‘맹폭격’을 뜻하는 스톤크 합성어)’라고 써 공매도 세력을 응징하라고 공격 좌표를 찍었다. 개미 투자자들이 “헤지펀드를 혼내고 돈도 벌자”면서 적은 돈으로 주식 대량 매입이 가능한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 등을 활용해 주식 매수에 나섰다. 주가가 급등하자 공매도 세력이 다급해졌다.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주식을 매수해 공매도 거래를 청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헤지펀드들은 폭등한 가격에 허겁지겁 주식을 매수해 공매도 구멍을 메우는 과정에서 50억달러 이상 손실을 입었다.

▶개미군단이 헤지펀드를 박살 낸 사건은 뉴욕 증시에 충격을 던졌다. 유동성 부족에 직면한 헤지펀드들이 보유 주식 투매에 나설 것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27일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 모두 2% 이상 급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월가의 권력 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했고, 파이낸셜타임스는 “개미군단이 베테랑 헤지펀드들을 비틀거리게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SNS로 소통하고 휴대폰 앱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개미 투자자들은 더 이상 파편화된 개인들이 아니다. 미국 개미 투자자 로빈후드는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서 ‘월스트리트벳츠(wallstreetbets)’라는 모임방을 만들어 투자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행동에 나선다. 레딧은 이번 전투에서도 ‘게임스톱 옵션에 투자해 며칠 만에 1100만달러를 벌었다’는 등 대박 성공담을 퍼트리며 개미를 결집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개미군단의 집단행동은 시장 교란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투기 세력이 SNS를 활용해 개미들을 지원군으로 악용할 경우 막을 장치가 마땅치 않다. 머니 게임 끝자락에 올라탄 개미는 쪽박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미 백악관 대변인이 “재무장관을 포함한 경제팀이 게임스톱처럼 이상 주가 흐름을 보이는 주식과 증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경고를 날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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