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경찰의 그 말, 못 믿겠다

허상우 기자 2021. 1. 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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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래도 담당 수사관을 믿습니다.”

김창룡(왼쪽 네번째부터) 경찰청장과 박정훈 국가경찰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북관에서 열린 국가수사본부(국수본) 현판식에서 제막하고 있다. 국수본은 경찰 사무를 '국가·자치·수사'로 분리하는 조직 개편에서 수사 분야를 맡는 조직이다. /뉴시스

서울 서초경찰서의 간부급 경찰관이 지난 22일 기자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서초서는 이용구 법무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입건도 않고 내사종결 처리한 곳이다. 경찰은 줄곧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이 차관에게 폭행당한 다음 날 서울 성동구의 한 블랙박스 업체를 찾아가 녹화 안 된 줄 알았던 폭행 영상을 찾아냈다. 기자가 통화한 날은, 해당 블랙박스 업체 사장이 “영상이 있다고 경찰에도 얘기해줬다”고 폭로한 다음 날이었다. 그래도 경찰은 “부하 직원을 믿는다”고 했다. 담당 수사관이 영상의 존재를 알았는지, 실제로 확인은 했는지 수사 과정을 되짚어 볼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통화 이틀 후, 상급 기관인 서울경찰청은 “담당 수사관이 영상을 본 것이 사실로 파악됐다”며 해당 수사관을 대기 발령했다.

한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작년 12월 28일,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 고위급 경찰은 “(서초서의) 내사 종결에 규정이나 지침상 잘못된 것은 없다”며 “서초서 의견을 저희는 존중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 역시 “블랙박스 영상은 녹화가 안 돼 있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거짓 브리핑을 한 셈이 됐다. 결국 지난 25일 “국민들께 송구하다”며 사과해야 했다.

한 달 넘게 많은 언론이 경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의혹을 스스로 확인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경찰청 지휘부는 일선 경찰서를, 경찰서 지휘부는 일선 수사관을 믿는다며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했다. 심지어 해당 사건의 수사 책임자인 서초경찰서장은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으로 영전했다. ‘믿는다’는 말은 지휘부가 책임을 부하 직원에게 전가하려는 ‘꼬리 자르기'였나. 그 의도가 뭐든, 결과는 명백한 부실 수사다. 경찰 해명에도 사건 주변인의 폭로와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경찰은 내사종결 73일 만인 지난 24일에야 뒤늦게 자체 ‘진상조사단’을 출범시켰다.

이용구 차관은 작년 11월 6일 밤 술에 취해 택시 기사를 폭행했지만 경찰에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최소한 입건해서 조사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경찰은 “112 신고됐다고 기계적으로 입건하면 (도리어) 국민에게 큰 피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건 조사 과정에선 과도하게 이 차관의 편의를 봐줬다. 담당 수사관은 택시 기사의 ‘처벌불원서’를 대신 써줬고, 서초경찰서는 사건을 내사 종결 처리한 뒤 이 차관에게 결과를 통보해줬다.

반면 ‘블랙박스 영상이 있다’고 말한 택시 기사에겐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이라 하고, ‘영상이 있다고 경찰에 알렸다’는 블랙박스 업체 사장에게는 “허위 진술로 법적 대응하겠다”고 엄포까지 놨다. 경찰 식구들끼린 믿는지 몰라도, 우리는 이런 경찰을 믿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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