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3] 고목에 핀 붉은 애기동백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2021. 1. 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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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암, ‘화조묘구도(花鳥猫狗圖)’, 16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86.4×43.9㎝, 평양 조선미술관 소장.

한겨울 추위를 뚫고 화려한 붉은 꽃으로 장식하는 꽃나무에 애기동백이 있다. 지금쯤 남해안이나 제주도에 가면 만개한 꽃을 만날 수 있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본다. 멋스럽게 휘어있는 고목나무에 애기동백 붉은 꽃이 피어 있다. 고양이와 새, 강아지가 꽃과 어우러져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이 그림 제목은 ‘화조묘구도(花鳥猫狗圖)’라 하며, 화가는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증손인 이암(1499~?)이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 줄기를 붙잡고 있다. 좀 과장하여 그리기도 했지만 줄기 굵기가 고양이 몸보다 더 가늘므로 아름드리 고목은 아니다. 애기동백은 동백나무와 비슷하지만 종(種)이 다른 별개 나무다. 동백나무는 꽃잎이 반쯤 세워져 피는 반면 애기동백은 그림처럼 꽃잎이 거의 수평으로 펼쳐져 동백보다 납작하고 편평한 꽃이 핀다. 질 때도 동백꽃은 통으로 떨어지나 애기동백은 꽃잎이 하나씩 떨어져 바람에 날아간다. 애기동백의 원산지는 일본 중남부 지방이다. 일제강점기에 수입하여 지금은 남부 지방에 조경수로 흔히 심는다. 이암은 조선 초기를 대표할 뛰어난 화가였지만 행적은 거의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한다. 그의 그림들은 한때 일본 승려의 그림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혹시 당시로서는 일본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애기동백인데, 그림 속에서 만난다는 것은 이암의 행적을 알아보는 데 조그마한 단서라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몸집 작은 참새가 기를 쓰고 고양이를 위협하고 있다. 나무 위까지 올라오는 고양이가 영역을 침범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놀러 왔던 이웃집 참새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급히 되돌아가고 있다. 나무 밑동 뒤로는 거의 괴석 수준의 모양새가 근사한 바위가 나무를 보호해 주고 있다. 주위는 약간 언덕배기로 자칫 건조하기 쉬운 곳이다. 바위는 주변의 수분을 붙잡아 애기동백이 고목으로 자라는 데 도움을 준다. 바위에는 자그마하지만 싱싱한 조릿대 한 그루가 자리 잡았다. 애기동백 바로 옆에는 때늦게 가을 도라지가 파란 꽃을 피우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계절이 가을임을 말해준다. 나무 아래에서는 강아지 두 마리가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검둥이는 장끼의 아름다운 깃털을 하나 물고 어딘가를 가고 있다. 흰둥이는 나무 위 고양이와 참새의 다툼을 무심히 쳐다볼 뿐 간여할 생각이 전혀 없다. 전체적으로 꽃과 동물들의 어울림이 정겹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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