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VIP는 명품 코너, 나머지는 온라인… 코로나 ‘공간 양극화’

유현준 교수·건축가 2021. 1. 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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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등 오프라인 상업 공간은 사람 구경하는 곳
코로나에 나 홀로 온라인 쇼핑 늘며 상품 판매 뺏겨
‘진화한 편의점’ 혹은 ‘VIP용 명품 공간’ 갈림길에
소수만 위한 주거·상업공간 늘면 사회 갈등 불 보듯
모두를 위한 도시 공간 리모델링 지금부터 고민해야

온라인 상업 공간과 오프라인 상업 공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온라인 쇼핑의 장점은 오프라인 상업 공간보다 짧은 시간에 더 다양하고 많은 물건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오프라인 공간만의 차별화된 장점은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쇼핑에서는 쇼핑하는 데 드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시간당 품을 팔아 돈을 버는 중산층은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온라인 쇼핑을 선호한다. 대형 마트가 점점 인기가 없어지는 이유다. 반면 시간이 남는 부유한 사람은 오프라인 백화점 쇼핑을 한다. 온라인 쇼핑의 단점은 ‘나’와 ‘물건’밖에 없다는 점이다. 반면, 오프라인 쇼핑 공간에서는 ‘나’와 ‘물건’과 ‘다른 사람’이 있다. 오프라인 상업 공간에는 물건을 사고, 사람 구경하고 ‘우리’를 경험하는 행위가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공간

오프라인 상업 공간은 일차적으로 물건으로 사람을 유인하고, 같은 물건에 유인된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끼리 경험을 만들고 그 경험으로 사람들을 더 유인한다. 예를 들어서 백화점 1층 화장품과 명품 코너에 가면 그 주변에 뷰티와 패션에 관심이 많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인다.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는 두부와 파가 든 시장바구니를 든 사람들 사이에서 화장품을 고르는 것과는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그런데 첫 번째 유인책인 상품 판매를 온라인 공간에 빼앗기니 오프라인 상업 공간은 주변 사람들을 통한 공간 경험으로 이어지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쇼핑몰은 인터넷에서 사기 어려운 자동차 매장을 유치하거나 ‘스포츠 몬스터’ 같은 독특한 형태의 놀이터를 만들거나 반려동물을 데리고 올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 쇼핑몰에 올 다른 이유를 계속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는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를 ‘위험’으로 만들었다. 코로나는 쇼핑 속에서 얻는 ‘우리’의 경험을 해체하여 쇼핑을 온전히 개인적인 일로 바꾸었다.

두 가지 갈림길

향후 상업 공간이 갈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지금의 위기를 소규모 다핵구조로 돌파할 것인가? 아니면 컨트롤된 대형 공간으로 갈 것인가? 소규모 다핵구조란 지난 몇 년간 진행되었던 쇼핑몰 대형화의 반대로 오프라인 공간에 작은 상업 시설을 여러 개 두는 것을 말한다. 그 길의 끝은 편의점일 것이다. 미래의 편의점에서 기존의 편의점과 차별화하고자 특별한 공간적 체험을 제공하거나, 지역성을 부각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같이 어디를 가나 똑같은 편의점이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과의 융합을 통해 독특한 체험을 줄 수 있는 편의점이다. 예를 들어 서점과 융합된 편의점이나 빨래방과 융합된 편의점 같은 것이다. 표준 모델을 찍어내는 대신 다양성이 있는 편의점이다. 다양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하나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또 다른 길은 완전히 구분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 백화점에서는 코로나 영향으로 대부분 매장의 매출이 급감했으나 명품 브랜드의 매출이 급증하면서 전체 매출은 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백화점 경영자 입장에서 100명의 중산층 소비자보다 1명의 VIP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소수의 VIP만 있는 공간은 인구 밀도가 낮고 전염병에서 더 안전하다.

향후 상업 매장은 VIP들만을 위한 공간을 늘려갈 것이다. 이미 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는 축소해서 2층으로 올라가고 그 자리에 샴페인바 같은 VIP 소비자를 위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 VIP 중심으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수 있다. 주거 공간이건 상업 공간이건 선택된 사람들끼리만 지낸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구분된 공간은 계층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그러한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혁명의 역사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를 얻어야 생존할 수 있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 길을 선택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전염병이 만드는 공간 양극화

인구 밀도가 낮은 VIP 공간이 많아질수록 그 외 남아 있는 오프라인 공간은 더욱 비싸진다. 향후 온라인 공간은 계속 저렴해지는 반면 오프라인 공간은 계속 더 비싸져서, 일반 대중은 온라인 공간에서 주로 생활하고 오프라인 공간은 부자만의 전유물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다. 영화 속 가난한 주인공들은 반지하 집에서 인터넷을 연결하려 옆집 와이파이를 찾아 헤맨다. 현실 속 오프라인 공간이 열악한 이들은 온라인 공간으로의 접속이 절실하다. 반면 부자 주인공의 집에는 거실에 TV도 없다. 대신 소파는 햇볕이 잘 드는 마당을 바라볼 수 있게 놓여있다. 이곳에서는 쉴 때도 TV를 보는 대신 마당에서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책을 읽는다. 초등학생 어린이도 스마트폰으로 놀지 않고 마당에 텐트를 치고 논다. 부자의 공간에서는 미디어 의존이 없고 인터넷 공간이 필요 없다. 양질의 오프라인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공간의 양극화는 갈수록 더 진지한 사회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시민 누구나 양질의 오프라인 공간을 공짜로 누릴 수 있도록 도시를 리모델링할 수 있을 것인가. 도시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 당국의 고민이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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