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과학 한 스푼] 미생물과 요리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2021. 1.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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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화덕에 넣고 구워야 할 신선한 밀가루 반죽을 그만 밤새 방치해두었습니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 자세히 들여다보니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반죽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요리사는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반죽으로 빵을 한번 만들어보기로 했는데 그 결과는 대성공.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풍미와 부드러운 식감은 누군가 마치 마법을 부린 것 같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빵이라 부르는 요리는 수천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그런데 이 마법사의 정체는 도무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작았기 때문입니다. 17세기 현미경이 발명된 뒤 비로소 발견된 이 마법사를 우리는 미생물이라 부릅니다. 아주 작은 생물이란 뜻인데요. 곰팡이, 효모, 세균, 박테리아 등을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흙 한 줌을 쥐면 그 안에 미생물이 수십억마리나 있다고 하니, 사실 너무 작아서 그렇지 이들이야말로 지구의 진정한 주인입니다.

비단 빵뿐만 아니라 술, 치즈, 요구르트, 그리고 우리 고유의 음식인 김치도 이들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미생물이 요리를 도와주는 셈인데요. 우리는 이런 작용을 발효라 부릅니다. 미생물도 생물인지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먹고 소화하고 그리고 배설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라는 효모는 밀가루 반죽에 포함된 당류를 소화시켜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배출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가 빵을 굽는 과정에서 증발하면서 빵에 무수한 구멍들을 남겨놓습니다. 마치 스펀지와 같은 빵의 부드러운 조직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요구르트나 김치의 경우에는 젖산균 또는 유산균이라 불리는 미생물의 활동으로 젖산이라는 산성의 물질이 만들어집니다. 김치의 신맛은 바로 이 젖산 때문인데, 장내 유해균의 번식을 막는 효과가 있어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된장과 같은 장류의 발효는 누룩곰팡이가 담당합니다. 이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효소에 의해 콩의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더 작은 크기의 물질들로 분해되어 깊은 풍미와 영양분을 제공해줍니다.

우리 속담에 ‘장맛이 바뀌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살아 있는 존재이다보니 알맞은 조건이 되어야 미생물의 발효가 잘 일어납니다. 장맛이 달라졌다는 것은 주변 환경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고, 평상시의 안정이 깨졌다는 불길한 징조로 해석되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발효는 관리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과정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유익한 발효가 아니라 음식이 썩어 버리는 부패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는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이들에 의한 피해는 줄이면서도 이득을 얻는 방법을 꾸준히 고민한 결과입니다. 현대에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미생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안정적인 통제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미생물을 선택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요리(料理)라는 단어에는 ‘헤아리고 다스린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헤아림’은 더 많은 이해를, ‘다스림’은 안정적인 통제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가 발효의 과정을 헤아리고 다스릴 수 있게 된 것 그 자체를 바로 요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헤아림과 다스림은 과학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한데요. 결국 발효를 비롯한 요리의 바탕에는 과학이 있는 셈입니다.

최근 우리는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리하는 인류가 과학을 통해 미생물을 헤아리고 다스리는 데 성공한 것처럼, 이번 미생물의 위기도 과학의 힘으로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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