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훈련 사라진 한미훈련, 컴퓨터게임 됐다" 미군사령관의 우려

국방부공동취재단 2021. 1.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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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럼스, 잇단 취소·축소 우려
서욱 국방은 "3월 훈련 컴퓨터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주요 한·미 연합훈련이 대부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전환한 것으로 28일 나타났다. 국방부에 따르면, 3대 연합훈련이었던 키리졸브(KR)·독수리훈련(FE)·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2019년에 모두 폐지된 상태다. 한·미는 남북 정상회담이 있던 2018년 이후 실제 병력·장비가 대규모로 이동하는 기동훈련(FTX)을 4년째 실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엔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훈련 취소·축소가 잇따랐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오는 3월로 예정된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최근 정부 전직 고위 관계자와 만나 “연합훈련이 컴퓨터 게임이 돼가는 건 곤란하다”며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브럼스 사령관과 전직 정부 관계자는 대화에서 “야외 기동훈련 없는 컴퓨터 훈련으로는 연합 방위 능력에 차질이 생긴다”며 “실전 상황이 되면 군인들이 혼비백산할 것”이라고 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27일 기자 간담회에서 3월 연합훈련과 관련, “실병(實兵) 기동훈련이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하는 방어적이고 연례적인 연습”이라며 “코로나 방역 수칙을 준수해 연합훈련에 임하겠다”고 했다. 훈련 규모에 대해서도 “운용적인 묘미를 발휘하겠다”고 했다.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와 관련, 전직 한·미연합사령관들은 “연합훈련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28일 보도했다. 제임스 서먼 전 사령관은 “훈련과 준비 태세를 양보하면 북한은 그 상황을 기회로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임호영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예비역 육군 대장)은 본지 통화에서 “미국은 훈련하지 않는 군대를 상상도 못 하는 나라”라며 “이러다간 주한미군의 존립 근거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시뮬레이션 워게임은 북한의 핵 위협은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어차피 한국군이 우위인 재래식 전력의 값만 입력하면 우리가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경기대 김기호 교수(예비역 육군 대령)는 “세계적인 명문 축구 구단도 3년만 연습을 안 하면 동네 축구 수준으로 전락한다”며 “4년째 시뮬레이션으로만 북한 도발에 대비한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2년 넘게 멈춘 한미훈련… 주한美軍 존립도 흔들

지난 2018년 여름 이후 북 비핵화 유도와 코로나 등을 이유로 2년 이상 연대급 한·미 연합훈련 전면 중단 상태가 지속되면서 한국군은 물론 주한 미군의 군사 대비 태세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직 군 고위 관계자들은 “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필요가 없는데 훈련 중단 지속은 군대의 존립을 흔드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미 양국은 컴퓨터를 활용한 지휘소 연습인 키리졸브(KR) 및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야외 기동 훈련인 독수리 훈련(FE) 등 이른바 3대 연합 훈련을 모두 폐지했다. 연대~여단급 이상으로 실시됐던 대규모 연합 상륙 훈련인 쌍용 훈련과 대규모 연합 공군 훈련인 ‘맥스선더’ ‘비절런트 에이스’ 등도 폐지되거나 대폭 축소됐다.

이렇게 해야 할 실전훈련이… 지휘소 컴퓨터 앞에서 시뮬레이션만 - 위 사진은 2016년 7월 경북 포항의 해병대 훈련장에서 열린 한·미 연합 해병대 공지전투훈련 장면. 상륙돌격장갑차에서 내린 한·미 해병대원들이 돌격에 앞서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한·미 연합군의 대규모 병력·장비가 투입되는 야외 기동훈련(FTX)은 2018년 이후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지휘소 훈련(CPX)으로 대체됐다. 아래 사진은 같은 해 3월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 CPX 방식으로 진행된 한·미 연합 키리졸브 연습 장면. 한·미 연합 장병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모의 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김종호 기자·해군작전사령부

특히 야외 기동 훈련의 경우 한·미 연합훈련은 대대급 이하 소규모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로 꼽히고 있다. 국회 국방위에 따르면 육군은 지난 2017년 4월 승진훈련장에서 ‘한·미 통합화력 격멸훈련’을 실시한 뒤 한번도 미군과 보병·포병·기갑 등이 함께 훈련하는 제병(諸兵) 협동훈련을 하지 않았다. 군 소식통은 “연대급 이상은 돼야 합동 화력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언론인터뷰에서 “상급 지휘부 차원에서 연합 훈련은 특히 중요하다”며 “(유사시) 북한을 신속하고 단호하게 격퇴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작전 계획과 통신, 정보, 군수 능력 운영 등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 조정된 연습과 훈련을 통해 공고한 연합방위 태세에 문제가 없도록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현직 군 고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으로 결코 야외 기동훈련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 병력과 장비가 움직이고 실탄을 쏴봐야 작전 계획대로 전쟁을 할 수 있는지 검증을 할 수 있고 유사시 즉각적인 대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은 “실탄(實彈) 훈련을 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부하들의 피를 부른다”며 실전적 야외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폭탄·포탄이 떨어지고, 장병들이 강을 건너고 산도 넘고 해야 제대로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사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한 전문가는 “북한군은 10년간 복무를 해 풀 한 포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정도로 지형지물에 정통하지만, 우리 군은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짧아졌는데 대규모 야외 훈련까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했다.

컴퓨터 지휘소 훈련의 경우도 북한 자극을 우려하거나 코로나 때문에 축소돼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9년 ’19-1 동맹' 연습의 경우 반격 단계를 빼고 방어 연습만 이뤄졌다. 지난해엔 코로나 사태 때문에 훈련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훈련을 낮에만 실시하는 ‘절름발이’ 훈련이 실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컴퓨터 시뮬레이션 특성상 ‘지는 훈련’은 없다는 의문도 제기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규모 연합훈련 중단이 2년 넘게 이어지면서 더 이상 훈련 중단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주한미군 전문가인 김기호 전 경기대 교수는 “프로 축구단도 훈련하지 않으면 동네 축구단으로 전락한다”며 “손흥민 선수도 3년간 출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북한이 지난해 10월 이후 잇단 열병식을 통해 신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핵 능력 고도화를 과시했기 때문에 더 이상 대규모 연합훈련 중단의 명분도 없어졌다는 지적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8차 대회 등을 통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계속 압박하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군사공동위를 통해 (훈련 중단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며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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