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급조 합의문, 28년 갈등 풀기엔 무리였다

정대연 기자 2021. 1. 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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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분류작업 합의 파행, 왜

[경향신문]

서울시내의 한 택배물류센터에서 28일 종사자들이 택배차량 앞으로 물품을 분류하고 있다. 연합뉴스
업체·노조 제각각 해석에
합의 이행 강제력도 없어
28일 또 잠정합의안 도출
노조의 수용결과에 따라
오늘 파업 돌입 여부 결정

택배 분류작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기구의 1차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합의가 깨질 상황에 처했다. 택배사와 노동조합이 합의문을 제각각 해석하고 있어서다. 사회적 합의 내용을 둘러싼 해석 다툼으로 노사가 충돌하는 건 처음이 아니다. 파업을 막으려고 급하게 도출한 추상적 합의가 발단이지만 사회적 합의의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 구조적 원인으로 꼽힌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지난 21일 내놓은 합의문은 그간 택배기사에게 전가돼 온 분류작업 책임을 택배사와 대리점이 지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합의문을 도출한 지 일주일도 안 돼 택배사와 노조는 분류 전담인력 투입 규모와 시기를 두고, 택배사와 대리점은 분류 인력 투입비용 분담을 두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합의문에 이런 내용이 명확히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가 급박하게 추진된 게 1차적 원인이다. 사회적 합의기구는 지난달 7일 출범했으며 불과 다섯 차례 회의를 거쳐 40여일 만에 합의문을 내놨다. 28년 동안 이어진 분류작업 갈등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정부·여당은 설 연휴를 앞두고 택배파업이 벌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협정식 날짜까지 미리 못 박고 협상을 중재했고, 그 결과 협정식 당일 새벽에야 가까스로 합의에 도달했다.

사회적 합의의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는 점도 문제다. 택배노조는 지난해 9월 추석을 앞두고 과로사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분류작업 거부를 선언했다가 정부와 택배사가 분류 인력 투입을 약속하자 방침을 철회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약속된 분류 인력이 제대로 투입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후에도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잇따르자 택배사들은 대규모 분류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노조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노조가 구속력 없는 사회적 대화에 그나마 매달리는 건 택배사들이 양자교섭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고용노동부가 설립신고필증을 발급하면서 택배노조는 ‘법내 노조’가 됐다. 노조 설립신고서 제출 두 달여 만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특수고용노동자로 구성된 노조에 필증이 발급된 건 처음이었다. 법적으로 노동3권을 갖게 된 노조는 직접 위수탁 계약을 맺은 대리점뿐 아니라 자신들의 노동으로 이윤을 얻는 택배사들을 상대로도 분류작업 해결, 표준계약서 체결 등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여전히 택배사들은 대리점이 사용자라며 노조의 교섭 요구를 거부한다. 김태완 택배노조 위원장은 “택배사가 양자대화에는 나오지않아 사회적 대화라는 틀로 갈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합의는 강제력이 없어 1차 합의문을 협정서에 담자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택배 노사는 이날 더불어민주당 중재로 협상을 벌여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노조는 29일 조합원 의견을 들어 잠정 합의안의 수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데, 그 결과에 따라 당일 파업에 돌입할지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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