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추미애 떠나던 날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21. 1. 28.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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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 헌정사에 지금까지 모두 67명의 법무장관이 있었다. 그중 67번째 법무장관이었던 정치인 추미애씨, 그 이는 지난 법무장관들 중에 “가장 소란스러웠던 장관”이 아닌가 싶다. 추미애 전 장관이 어제 법무부 과천청사에서 이임식을 가졌다. 이임식 직후 자신을 기다리던 지지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 개혁이라는 대장정에 노무현 대통령이 희생하셨고, 한명숙 전 총리가 온갖 고초를 겪으셨고, 조국 전 법무장관이 가족까지 다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러면서 추 전 장관은 눈물을 흘렸다. 지지자들은 “사랑해요 추미애”를 연호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월 2일 취임한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징계하려다 391일 만에 사실상 경질됐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추미애 전 장관은 이날 원고용지 27장 분량의 상당히 긴 이임사를 하고 떠났는데, 이임사를 보면 현직 대통령과 전직 법무장관을 호명하고 있다.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를 빌려 검찰개혁의 소임을 맡겨주시고 끝까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문재인 대통령님과 온갖 고초를 겪으며 검찰개혁의 마중물이 되어주신 박상기, 조국 전 장관의 헌신과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즉 문재인·박상기·조국 세 사람의 이름을 불러본 것이다. 이어서 이런 부분도 나온다. “저의 공직인생도 늘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 시대와 국민이 가리키는 길을 걷고자 때로는 피울음을 삼키며 무릎이 부서져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피울음을 삼키며 무릎이 부서져도’ 라고 한 부분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가 광주에서 2박3일 간 15km를 삼보일배 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추 전 장관은 이임사의 마무리 부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거의 ‘추앙한다’는 의미로 인용한다. 이렇게 말했다. “힘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제게 힘이 되어준 말씀이 있습니다. 저의 정치적 스승이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으로 이임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후회해야 할 때 낙심하지 말며, 인내해야 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

네, 그렇습니다. 추 전 장관은 이임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간접적으로 언급한 반면 지지자들 앞에서는 한명숙 전 총리와 함께 직접 거명했고, 이임사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했지만, 가장 크게 경배를 올린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어제 추 전 장관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 전·현직 대통령을 호명했지만, 자신의 마음자리에는 엄연히 앞뒤 순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법무장관 자리를 떠나는 정치인 추미애의 깊은 속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어떤 생각일까. 지난 25일 추 장관은 경향신문과 거의 원고용지 60장 분량에 달하는 장문의 인터뷰를 가졌다. 그 대목을 옮겨본다. 이렇게 돼 있다. ‘추 장관에게 내년 대권 도전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단 여유를 많이 가져야 한다. 저에 대한 위로, 보듬어줄 시간이 필요하다”며 말을 아꼈다.’ 여유를 갖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렇다. 민주당의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일이 이번 주 마감된다. 추 전 장관이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일은 이제 가능성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대권 도전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두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부분도 눈길이 갔다.

-추미애·윤석열 동반사퇴를 건의한 여권 인사들에 대한 섭섭함도 있겠지요.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시민들이 더 잘 이해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 코로나만 아니면 광장에 다시 100만명의 시민이 모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당시 동반사퇴를 건의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정세균 총리였다. 그런데 추 장관은 섭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100만 시민이 광장에 모일 수도 있었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동반사퇴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추 장관과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시민이 100만은 모일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이 같은 추 장관의 현실 인식에도 일리가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자기 편할 대로 꿈을 꾸고 있다고 보십니까. 이어서 이런 부분도 보겠다.

- 사의 표명 과정의 진실은 뭔가요. 자발적 사직이냐, 사실상 경질이냐 의구심이 일었는데요.

“제가 그날(지난해 12월16일)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에 대한 재가서를 대통령께 드리면서 분명히 사의를 말씀드린 것이고요. 그에 대한 긴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추 장관은 긴 설명은 필요 없다고 했다. 사의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날 청와대 기자실에 들러 사의 표명을 공식 발표도 하지 않고 찬바람 일으키듯 그냥 청와대를 나와 버렸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긴 설명이 필요 없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어떤 섭섭함이나 회한 같은 것이 읽혀지기도 한다. 이어서 인터뷰가 보도된 이후 가장 많이 언론에 인용이 되고 시중에 회자가 됐던 부분을 옮겨보겠다. 이렇게 돼 있다.

- 왜 사직을 결심했나요. 그날 청와대에 들어가기 4시간 전만 해도 브리핑을 통해 검찰개혁 완수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잖습니까.

“윤석열 검찰총장의 상당한 비위를 확인한 장관으로서 제가 먼저 사의를 밝히면 윤 총장도 그런 정도의 엄중함과 책임감을 가져 주리라 기대한 것이죠.”

- 추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면 윤 총장도 스스로 그만둘 것이다?

“그렇죠.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이지만, 장관의 지휘와 징계심의의결서에 드러난 일련의 사건들이 총장 자신과 총장 측근, 또는 총장 가족과 관련된 것들이잖아요. 의결서에는 윤 총장의 비위 사실은 종합적으로 해임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어요. 그러면 관련 수사팀의 수사 독립성 보장과 국민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총장 스스로 직을 내려놓는 게 옳지 않겠는가, 한 것이죠.”

- 기대가 빗나갔군요.

“제가 기대라고 표현했지만 (윤 총장이) 그 정도의 눈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국민에 대한 예의 아닐까요?”

그렇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4시간 전만 해도 브리핑을 통해 검찰개혁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는데, 갑작스레 사의 표명이 발표됐고, 추 장관은 기자회견도 없이 청와대를 빠져나왔는데, 그래서 ‘사실상 경질’이라고 했는데, 추미애 전 장관은 제가 먼저 사의를 밝히면 윤 총장도 따라서 사표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당시에는 동반사퇴 제안에 대해 추 장관이 저항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오늘 이 같은 인터뷰 내용을 보면, 결국 동반사퇴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이뤄졌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추장관도 정 총리도 그리고 문 대통령과 청와대도 법원이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많은 시청자들에게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 부분은 추 장관이 윤석열 총장에 대해 ‘눈치가 없었다’고 한 부분이다. 추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면 윤 총장도 스스로 그만 둘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이제 돌아와 그 소회를 물었더니 윤 총장이 눈치가 없었던 것이라고 한 것이다.

추 장관이 아무리 즉답을 피하고, 청와대도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이러한 인터뷰와 이임사 등을 종합하면서 그 행간을 읽어보면, 지난달 추 장관의 사임 발표 무렵에 무슨 일이 오갔던 것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려면 일국의 법무장관 교체 인사를 하면서 그동안 갈등을 빚어온 윤석열 검찰총장의 동반 사퇴를 기대하고, 그만한 눈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결정을 내리고 발표를 했을까요. 자, 이제 정치인 추미애는 잠시 우리나라 정치권의 중앙 무대에서 내려오게 됐습니다. 추 전 장관의 오랜 꿈은 서울시장 도전이었습니다. 그 꿈을 포기한 것일까요. 이제는 완전히 평범한 자연인으로 돌아간 것일까요. 아니면 서울시장 꿈 대신 대권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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