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깨기 위한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특수서비스' 예외규정 비판, '제로레이팅 규제' 요구에 "사후규제 가능"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5G 서비스가 누구나 인터넷을 평등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망중립성 원칙을 흔드는 '꼼수'가 될까.
27일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오픈넷이 공동주최한 온라인 토론회에서 정부가 지난달 개정한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의 '특수 서비스' 개념이 오히려 '망중립성 원칙'을 깰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망중립성'은 통신3사와 같은 통신망을 가진 망사업자가 이용자와 사업자들을 동등한 속도로 접속하게 하는 등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사업자'는 네이버, 유튜브, 넷플릭스 등 인터넷 사업자(CP)를 말한다. 통신사가 이용자 뿐 아니라 특정 사업자에 망 속도나 품질을 차별하면 불공정 경쟁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개정 가이드라인은 통신 사업자(ISP)가 트래픽 관리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토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면 개정 '가이드라인'은 '특수 서비스' 개념을 신설하고 특정 단말기를 대상으로 일정한 수준의 네트워크 품질을 보장하며 중립성의 개념을 예외로 적용한다고 명시했다. 자율주행차와 같은 신산업을 위해 초저지연 성능, 초고화질 영상전송에 적용되는 초대용량 서비스에 우선적인 데이터 처리가 필요하다는 산업계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대신 가이드라인은 '특수 서비스'의 조건으로 '인터넷 서비스 품질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할 것'과 '망 중립성을 회피할 목적으로 사용 금지' 등을 명시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수 서비스'를 '기부 입학제'에 비유했다. 그는 “극단적 사례로 보면 한국 사회는 공정과 정의에 대한 체감도가 커서 기부금 입학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기부금 입학을 허용하면서도 '정원외 선발'이니 입학 전형의 대원칙을 흔들지 않고, 선발 정원 자체는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니 문제 없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나”라고 반문했다.
김민호 교수는 “이게 왜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이라 불리나. '특수 서비스 허용' 가이드라인 아닌가”라며 “논의 과정에서 특수서비스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입장을 냈는데 정작 제정할 때는 이런 주장은 뺐다”고 지적했다.
전응준 법무법인 유미 변호사는 '특수 서비스'가 법적으로 판단하기 모호한 지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특수 서비스'를 '특정한 용도에 국한된 서비스'라고 보는데, 법률가 입장에선 '용도'라는 말이 나오면 주관적일 수 있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여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예를 들어 4K영상 서비스를 특정 용도라고 포장해서 서비스하면 애매해질 수 있다”고 했다.
'특수 서비스'의 요건인 '적정 수준'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박경신 오픈넷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연합(EU)과 미국은 특수 서비스와 관련해 품질 저하 금지를 명시한 반면 한국은 '적정 수준'이라는 표현으로 돼 있다”며 “적정 수준이 자칫 합리적인 트래픽 차별이 가능한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응준 변호사는 “'적정 수준' 표현을 법적으로 해석할 때 기준과 판단 주체가 누구인지 법률적으로 문제 될 수 있다”며 “더구나 '적정 수준은 기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더욱 혼란을 준다. 판단이 자의적일 수 있어 세심하게 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에서 망중립성 연구반이 운영됐는데 이용자, 시민단체는 참여할 수 없었다”며 “정책 전반에서 전문가에 대한 환상이 있다. 중립적 전문가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괜찮은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 많다. 오히려 정책을 만들 때 이해당사자 참여 속에서 이뤄져야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잇단 지적에 김남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CP(콘텐츠 업체)와 ISP(통신사) 간 오랜 갈등이 있어 협의체에서 합의 도출이 힘들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토론하면서 결론을 도출했다”며 ”특수 서비스는 근본적으로 EU와 같은 개념이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앞으로 해설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분명히 하고, 보완할 점은 계속 보완하겠다“고 답했다.
'제로레이팅'(Zero Rating)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제로레이팅을 무분별하게 허용하면 자본력이 부족한 벤처, 스타트업에 진입 장벽을 높이고 인터넷 혁신을 방해하게 된다”며 제로 레이팅을 불허하는 제도 보완을 요청했다.
'제로 레이팅'은 통신사와 제휴한 서비스의 데이터 요금을 내지 않는 것으로 '불공정 행위'라는 지적이 있다. 예컨대 SK텔레콤은 자사 이용자에 인터넷 쇼핑몰인 '11번가' 쇼핑을 하는 동안 나온 데이터 요금을 내지 않는 서비스를 운영한 적이 있다. 이 경우 다른 쇼핑몰 입장에선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와 관련 김남철 과장은 “망중립성의 근본 원칙은 사전규제인데, '제로 레이팅'은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자 차별행위로 사후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며 “코로나19 시대에 교육 콘텐츠를 제로 레이팅으로 하는 등 제로 레이팅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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