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3840원으로 올리겠다는 KBS가 놓치고 있는 것
네이버 검색창에 ‘수신료’를 입력하면 제일 먼저 ‘tv수신료 해지’라는 자동완성검색어가 뜬다. 지난 2019년 10월엔 “수신료 납부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며 KBS 수신료와 전기요금의 분리징수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21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앞서 2018년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녹색소비자연대와 공동으로 진행한 수신료 인식조사에선 응답자의 84.3%가 수신료 인상이 필요 없다고 답했고, 지난해 7월 미디어오늘과 리서치뷰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수신료를 폐지하거나 인하해야 한다는 답변이 각각 46%와 14%로 인상 의견(6%)보다 많았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국민 여론이 우호적이었던 적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KBS가 7년 만에 수신료 인상을 다시 추진한다. KBS 이사회는 27일 정기이사회를 열고 KBS 경영진이 제출한 수신료 조정안을 상정했다. 양승동 KBS 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해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코로나19는 특히 공적 영역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시켰다”며 “오히려 지금이 수신료 조정안을 제출할 계제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KBS가 책정한 수신료 액수는 3840원. 월 1340원, 연간 기준으로는 1만6080원이 인상된 금액이다. 임병걸 부사장은 “손익분기점 균형을 맞추는 수준에서 적정 수신료 금액을 산정한 것”이라고 했다. 이대로 수신료 인상이 통과될 경우 현재 KBS 전체 재원에서 46% 정도를 차지하는 수신료 비중은 58.4% 정도로 늘어나고, 광고 비중은 10%대로 축소된다. “어느 정도 공영방송다운 재원 구조가 된다”는 설명이다.
KBS는 이날 ‘주요 참고현황’이라며 3장짜리 별도의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는데, 1981년 이후 41년째 2500원으로 동결 상태인 수신료를 같은 기간 800% 증가율을 보인 신문 구독료, 391% 증가한 소비자물가지수(CPI) 등과 비교하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국가 공영방송 수신료와 비교할 때도 현저히 낮다는 걸 보여주는 자료였다. 2020년 재정 규모가 2016년 대비 1000억원이나 축소되고, 같은 기간 제작비도 500억원이나 줄어 위기 상태임을 설명한 뒤, 최근 5년간 평균 임금인상률을 1%로 억제(공무원 평균 임금인상률 2.74%)하고 97년 이후 약 1800명의 인원을 감축하는 등 자구노력을 해왔음을 표를 통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수신료 인상을 통해 KBS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설명자료는 기자들에게도, 수신료 납부자인 시청자(국민)들에게도 제공되지 않았다. 이날 이사회에는 수신료 조정안을 포함해 KBS 공적책무 계획이 담긴 별도의 책자가 제출됐는데, KBS는 이를 ‘이사회 제출자료’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보도자료를 통해 “재난방송의 강화, 저널리즘 공정성 확보, 대하 역사드라마 부활 등 공영 콘텐츠 제작 확대, 지역방송 서비스 강화, 장애인과 소수자를 위한 서비스 확대, 시청자 주권과 설명책임의 강화, 교육방송과 군소‧지역 미디어에 대한 지원 등 57개 추진사업을 제시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임 부사장이 이사들에게 설명한 내용을 종합하면 공적책무 카테고리에 12대 과제가 포함됐으며 △팩트체크K센터 운영 등 공정성 강화 프로젝트 △본사 권한 지역 위임 △실버세대·다문화·장애 가정을 위한 3대 공적 플랫폼 △대하 역사극 부활 등의 내용이 확인된다. 기자협회보는 이 12대 과제에 대해서만이라도 보충 설명자료를 공개할 계획이 없는지 물었으나, KBS 커뮤니케이션부는 “수신료 조정안에 담긴 내용은 이사들이 논의하고 의결하기 위해 제출한 내용이고 현 단계에서 최종적인 것도 아니어서 외부로 공개하는 것은 어렵다는 게 회사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날 이사회에서 야당 측 이사들은 KBS 보도의 공정성 문제, 자구노력 부족 등을 문제 삼아 수신료 인상이 국민적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당 측 이사들은 KBS의 공적책무 수행을 위해 재원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역시 KBS 경영진이 제출한 계획이 국민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강형철 이사는 “지금 나온 안들은 실무적으로 어떤 것을 추진하기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는 사업적 영역을 얘기하는데, 국민은 기본적으로 KBS가 우리에게 무엇인가, KBS에 왜 돈을 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얼마를) 올리는 걸 차치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 KBS가 더 설명하고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수신료 인상안이 미래를 약속하지만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을 진행하며 그것들이 시청자에게 보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동 사장은 이날 모두 발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일부 시청자께서는 “KBS를 안 보는데 왜 수신료를 내야 하냐?”고 하십니다. 또 “KBS가 정권의 향배에 따라 편파적”이라고 비판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잘 하면 나중에 올려 줄 수 있다”고도 하십니다. “KBS가 어려우면 직원들 급여부터 대폭 삭감하라”고도 하십니다.
양 사장은 “오늘 KBS 수신료 조정안을 이사회에 제출하는 것은 KBS의 미래에 대한 사회적‧국민적 합의를 위한 긴 여정에 돌입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김상근 이사장도 “롱텀(긴시간)으로 논의하자”고 했다. 41년만의 수신료 인상을 위한 긴 여정의 첫발을 뗐다. 양승동 사장은, KBS는 국민의 날 선 비판과 질문에 언제, 어떻게 대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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