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여당의 착각..원화는 '기축통화' 아니다

이철균 기자 fusioncj@sedaily.com 2021. 1. 2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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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균 시그널부장
패권 쥔 달러, 마음껏 풀어 美위기 대응에
전세계가 무거운 美봇짐 나눠서 지는 구조
원화 무턱댄 QE는 위기에 기름 붓는 꼴
유동성 파티 後 회색코뿔소 대응 더 시급
재정 방파제 높이고 1·2선 陣地 쌓아야
[서울경제]

미국은 천조국(千兆國)이라고도 불린다. 국방 예산만 ‘천조 원’ 수준이라고 해서 붙은 내심 부러움(?)이 깔린 수식어다. 지난해 미국의 국방 예산은 7,405억 달러. 1,000조 원은 밑돌지만 우리의 15배다. 키 맞추기를 할 엄두도, 주장도 없다. 비교의 대상이 아닌 탓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 뒤 미국이 투입하는 돈도 천문학적이다. 두 차례에 걸쳐 2조 9,000억 달러의 부양책을 냈다. 추가로 1조 9,000억 달러 안팎의 3차 부양책도 준비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미국은 우리 국내총생산(GDP·1조 6,463억 달러·2019년)의 세 배나 되는 돈을 경제 위기 극복에 쏟아낸다. 그것도 단기간에. 정상(?)의 국가였다면 돈의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되고 외국인 투자자는 앞다퉈 탈출하는 등 사달이 났을 텐데 멀쩡하다. 통화 패권을 쥔 특권이다.

기축통화가 갖는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무거운 봇짐을 전 세계가 나눠서 진다. 미 재무부가 신규 국채를 입찰하면 주요 중앙은행이나 기관투자가들이 이를 사 간다. 팔리지 않은 국채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수해 달러를 찍는다. 양적완화(QE)다. 돈을 푸는 데 걸림돌이 사실상 없다. 주연은 재무부·연준, 조연은 전 세계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인 ‘드라마’가 잊힐 만하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미국은 같은 전략이었다. 연준은 QE에 나섰다. 8,800억 달러(2008년 1월)였던 연준의 총자산이 3조 달러를 넘는 데 4년이 안 걸렸다. 각국 금융시장은 유동성 파티를 즐겼지만 후폭풍도 컸다. 민감해진 시장은 미 연준 의장의 발언 속에 긴축의 ‘긴’ 자만 들어 있어도 출렁였다. 최대 피해는 역시 신흥국. 테이퍼링(양적완화의 단계적 축소)이 있을 때마다 미 국채 금리는 치솟고 신흥국의 주가와 통화는 폭락하는 ‘긴축발작(taper tantrum)’을 반복했다. 양날의 칼, 달러는 구세주였지만 동시에 재앙의 씨였다.

두 얼굴의 달러가 지금은 더 풀렸다. 연준의 QE 규모는 더 커졌다. 올해 초 연준의 총자산은 7조 달러도 넘었다. 주요 국가도 막대한 돈을 뿌렸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코로나19는 블랙스완이었다. 재정을 더 쓰고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라도 눈앞에 닥친 ‘대홍수’를 막는 게 맞다. 문제는 우리의 여력이다.

일부 수치만 놓고 보면 체력은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40%를 웃도는 국가채무비율(D2·OECD 2017년)은 미국(105.1%)·영국(117%)·일본(224.2%) 등보다 훨씬 낮다. 외화보유액도 4,431억 달러(2020년 말)로 최대다. 수출도 지난해 말부터 방향이 바뀌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의 매출은 늘었다.

함께 봐야 할 것은 그 이면이다. 경제 선진국 중 국가채무비율이 높은 국가는 자국 통화의 국제 결제 비중이 높다. 원화와 같은 지위의 통화를 보유한 스위스(42.9%)·노르웨이(42.8%)·호주(42.6%) 등의 국가채무비율은 우리와 비슷하다. 기업과 가계의 체력은 또 어떤가. 저금리 탓에 민간 부채는 3,014조 원(2020년 3분기)을 넘었다. GDP의 1.6배다. 정부는 물론 가계·기업의 부채가 임계치다.

우리 경제는 외풍에도 약하다. GDP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65% 안팎이다. 미국(19%)·일본(28%)보다 월등히 높다. 위기 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경제 구조다.

더욱이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회색 코뿔소 떼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부채의 빅뱅’이 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신용 등급에 악영향을 끼치고 환율·금리를 출렁이게 할 재정·통화의 무한 확장 카드를 꺼내자는 일각의 주장이 적합할까. 시점이 안 좋다. 시스템 위기의 서곡이 될 수도 있다.

전설의 복서, 마이크 타이슨도 1회전에 모든 힘을 쏟아내지 않았다. 12회까지의 체력을 비축한다. 이기는 싸움을 위해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첫 트위터는 “우리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논쟁보다는 치밀한 체력의 배분이 필요하다. 재정의 방파제는 더 높이고 가계·기업·금융에 이르는 1·2선의 진지도 쌓아야 한다. 그리고 선봉에는 벼랑 끝 위기를 겪어본 경제 관료들을 세워라. 그들의 경험과 지혜가 지금은 필요해 질 때다.

/이철균 기자 fusionc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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