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 칼럼] 어떤 위로 어떤 감동 어떤 아름다움을

한겨레 입력 2021. 1. 28. 17:26 수정 2021. 1. 28.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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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칼럼]
칼럼을 시작할 때는 이런 위로와 감동과 아름다움을 안은 풍경들과 올해도 마주치고 싶어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글을 맺으면서 생각하니 그게 아니다. 백신이 개발되고 코로나가 잡혀 일상이 이른바 ‘정상화’되었을 때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기계적 효율과 경쟁과 압축 발전을 최대의 가치로 삼아 달려온 그 살벌함에 다시 실려 가는 게 아닐까 두려워서다.

잠깐 쉼표를 찍고 숨을 고르며 새롭게 한해를 맞을 수 있을까 머뭇거린다. 지난 한해는 모두가 그랬듯이 매일매일이 우울했다.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코로나 일상에서 찍은 작은 풍경을 불러 모아 새해를 맞는다. 작년 7월 코로나가 잠깐 소강상태였던 어느 날 저녁때였다. 일요일인데 골치 아픈 원고를 끝내려 사무실에 나갔다가 머리만 더 무거워져 빈손으로 귀가하는 길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집 옆의 도서관 후문 앞 작은 화단의 돌 위에 누군가 엎드려 있는 듯했고 옆에는 누가 서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은 7시가 좀 넘은 시간인데 데이트족인가 하고 그냥 모른 척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다 눈길이 자꾸 가서 발걸음을 돌려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걸터앉는 돌단에 열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배를 깔고 책을 보고 있었고 그 아이의 종아리에는 모기를 쫓으려는 듯 점퍼가 덮여 있었다. 후미진 언덕 끝 길에 인적도 드문 으슥한 곳에서 그 시간에 말을 걸면 경계의 눈빛만 되받을지도 모른다는 주저를 밀어내고 얼른 바로 옆집 산다고 대문을 가리키면서 인사를 건넸다. 아이는 세상모르게 책에 빠져 있었고 부채질을 해주는 사람은 엄마였다. 아이에게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보느냐고 말을 건넸는데 엄마가 아무런 경계심 없이 만화책이라면서 <나의 로봇 왕>이라는 책의 표지를 들어 보여주었다. 이 도서관을 멀리서 찾아왔는데 버스를 두번 바꿔 타고 오가야 해서 반납일을 지키기도 힘들고 다음날이 휴관일이어서 도서관 밖 외등을 불빛 삼아 보던 책을 마저 끝내고 가려고 열독을 하는 중이었다. 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부채질을 하고 있던 엄마가 아이한테 해주던 부채질을 낯선 내게까지 바람이 오도록 팔을 크게 휘둘러주었다. 타인을 경계해야 하는 각박한 시대에 건네준 작은, 큰 위로였다.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길거리에도 긴장감이 돌던 9월 어느 날 자동차 백미러로 보게 된 저녁노을도 불러온다. 저녁 6시40분경이었다. 별로 기억할 일이 없는 그런 날 그런 시간인데 날짜와 시간조차 또렷하다. 신촌 쪽에서 광화문을 향해 가는 사직로에서 효자동 쪽으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데 바로 앞에서 신호가 바뀌었다. 하릴없이 운전대에 손을 얹고 물밀듯이 길을 건너는 인파를 무심히 보고 있는데 어떤 젊은 커플이 바삐 건너다 말고 중간쯤에서 순간 멈추었다. 남자는 건널목 신호등에 켜진 숫자를 세고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 왼쪽으로 돌아서서 서쪽 하늘에 앵글을 맞췄다. 기습적으로 보게 된 스마트폰 앵글을 따라 나도 모르게 무슨 대단한 풍경이 있나 하고 백미러를 보게 되었다. 생각잖게 눈부신 저녁노을이 백미러에 가득 차 있었다. 그 길이 서울 한복판 광화문을 동서로 가로질러 앞은 동쪽으로 뒤쪽은 서쪽으로 뻗어 있음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서쪽 끝은 서해 바다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요즘도 그 길에 설 때면 빌딩 숲이 막지 않은 하늘길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보면서 백미러로 하늘을 본다. 백미러로 도로에 끝없이 이어진 자동차 행렬에 눈길을 주거나 차 뒷바퀴를 챙기느라 땅바닥을 본 적은 있지만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었다.

광화문 뒷길에 있는 내 사무실 가까운 곳에는 매일 11시쯤부터 저녁 늦게까지 종일 과일을 파는 트럭이 있다. 가까이에 대형마트가 있어 처음에는 누가 트럭에서 과일을 살까 생각했는데 적잖은 단골이 있어 노부부가 지키는 트럭은 심심찮아 보였다. 나도 5년 넘게 단골이다. 일흔이 넘어 보이는 아저씨는 근처에서 25년간 과일 가게를 했는데 가게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들어 트럭을 사서 과일을 팔게 되었다는 신상 이야기에서부터 과일 고르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세일즈도 하고 자녀들이 모두 속 썩이지 않고 잘 자라 부부 교사인 딸도 있고 버젓한 기업에 다니는 아들도 있어 용돈 걱정할 일은 없다는 자랑도 했다. 남편은 새벽 일찍 과일을 떼어오고 배달하는 일을 맡고 아내는 주로 트럭을 지키며 과일을 파는 분업을 오손도손 나누는 부부였는데 어느 날 아저씨 혼자 힘없이 과일을 팔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암 수술을 받아 입원 중이라고 했다. 다행히 3개월 만에 아주머니가 다시 트럭에 모습을 나타냈다. 놀면 뭐 하느냐면서 매일 열시간 넘게 마스크를 쓰고 트럭을 지켰다. 광화문 사무실 밀집지역 뒤켠 한 귀퉁이에 있는 트럭에서 일어난 일에 아무도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 동네의 1인 미용실 미용사도 아주머니가 퇴원했다면서 반가움을 나눴고 경쟁 가게가 될 만한 동네 슈퍼 주인도 아주머니가 다시 트럭에 나타난 것에 안도하며 소식을 전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다시 트럭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기회에 장사를 접으라는 자녀들의 충고를 받아들였나 보다 생각했는데 가을 과일이 제빛을 내기 시작할 때 트럭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뒷골목에 훈기가 돌았다. 과일 트럭이 잠시 장사를 멈췄을 때 사무실 코너 다른 쪽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트럭 행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트럭은 밤이나 호두 그리고 더덕 등 과일 트럭과 겹치지 않는 품목만 다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표정한 서울 한복판 대형 사무실 뒷길에서 그 나름대로 인정과 염치와 상도덕과 연대가 숨 쉬는 표정을 보게 된 것이다.

한해 동안 반경 2㎞ 거리의 집과 사무실만 오갔다. 그래서 이런 풍경들과 마주치며 마음도 읽어보고 주변도 찬찬히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칼럼을 시작할 때는 이런 위로와 감동과 아름다움을 안은 풍경들과 올해도 마주치고 싶어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글을 맺으면서 생각하니 그게 아니다. 백신이 개발되고 코로나가 잡혀 일상이 이른바 ‘정상화’되었을 때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기계적 효율과 경쟁과 압축 발전을 최대의 가치로 삼아 달려온 그 살벌함에 다시 실려 가는 게 아닐까 두려워서다. 새로운 문법으로 새롭게 판을 짜야 할 포스트 코로나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위로와 어떤 감동과 어떤 아름다움을 새로운 가치로 꿈꿀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한다. 시로 일상을 사유하는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이라는 시집을 꺼내 한 구절을 맺음말로 빌려온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누군가 내게 편지로 물었다./ 이것은 내가 바로 그 사람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또다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앞에서 언급했듯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질문들보다/ 더 절박한 질문들은 없다.”

‘20세기의 마지막 문턱에서’라는 시의 끝이다.

조은ㅣ사회학자·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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