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명 래퍼를 한자리에.. 딩고프리스타일은 어떻게 '국힙의 동반자'가 됐나 [인터뷰]

심윤지 기자 입력 2021. 1. 28. 17:03 수정 2021. 1. 2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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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62명의 래퍼가 참여한 초대형 단체곡 ‘격리해제’를 만든 딩고프리스타일팀의 장백산, 박동준, 김민정 PD(왼쪽부터) /김영민 기자

‘한국 힙합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곡’

지난 14일 발매된 ‘격리해제’가 새롭게 얻어낸 타이틀이다. 양동근, 로꼬, 사이먼도미닉, 우원재, 펀치넬로, 비비… 요즘 한국 힙합씬에서 ‘핫하다’는 아티스트 62명이 한곡 안에 모였다. 판매 수익은 코로나19 의료진과 방역 관계자에게 전액 기부한다. 발매 다음날 100만 조회수를 넘어서고 ‘유튜브 인기 동영상 1위’에 오르는 등 대중의 관심도 뜨거웠다.

피처링이 활발한 힙합계에선 아티스트 수십명이 참여한 단체곡들도 드물지 않다. 대부분은 힙합씬에서 영향력이 있는 특정 아티스트나 레이블의 주도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격리해제는 힙합 전문 유튜브 채널 ‘딩고 프리스타일(딩프)’가 기획한 프로젝트다. 딩프는 메이크어스에서 운영중인 모바일 방송국 ‘딩고뮤직’의 채널 중 하나다.

62명의 래퍼를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던 딩고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25일 강남구 신사동 딩고 사옥에서 격리해제 프로젝트를 담당한 박동준(35·팀장)·장백산(30)·김민정 PD(30)를 만나 그 답을 들어봤다.

“전반적으로 침체돼있던 힙합계에 조금이라도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어요. 처음 아이디어가 나온건 8월이었는데, 그땐 코로나19로 공연이나 축제도 줄줄이 취소된데다 <쇼미더머니9>도 방송 전이라 뮤지션들이 많이 힘들었거든요.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딩프가 가진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보자 생각했죠.”(박동준 PD)

‘한국에서 힙합하는 사람들 100명 정도를 한데 모아보자’는 야심찬 기획은 그렇게 탄생했다. 대면이 어려웠던 코로나19 상황. 섭외부터 비트선정, 촬영까지 뭐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처음엔 거리두기 지침을 지켜 온라인 공연을 하려 했어요. 그런데 촬영 직전에 집합금지 명령이 강화됐죠. 60명의 피드백을 중간에서 하나하나 조율하다보니 공개 시점도 3달 정도 미뤄졌어요. 프로듀싱을 맡았던 구스범스는 막판 일주일에 네시간밖에 못잤을 정도로 고생이 많았어요.”(김민정 PD)

격리해제 MV. 딩고프리스타일 제공


발매 2주 전부터 ‘역대급 프로젝트’를 예고했지만 참여한 래퍼들은 끝까지 비밀에 부쳤다. 누가 참여하는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발매 직후 일부 유명 래퍼들의 불참을 아쉬워하는 반응도 나왔다. “‘음악적으로 끝내주는 단체곡을 만들자’가 아니라 ‘조용했던 힙합씬에 이야깃거리를 만들자’는 것이 목표였으니까요. 여러 사정으로 더 많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성공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해요.”(장백산 PD)

참여한 래퍼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다이나믹듀오, 버벌진트, 타이거jk처럼 오래전부터 힙합을 해온 래퍼도 있지만, 이제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한 무명급 신인 래퍼도 많다. 아예 이번 프로젝트로 데뷔할 ‘신예 래퍼’도 지원받았다. “공연이 취소되면서 신인들이 나올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잖아요. 저희 채널의 지향점은 힙합씬의 저변을 넓히는 것인데, 유명하신 분만 참여해선 이에 어긋난다고 판단했어요.”(박동준 PD)

딩프는 힙합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르다. 힙합을 좋아하던 PD들이 중심이 돼서 딩고뮤직에서 ‘독립’해 나온지 3년만에 구독자 145만명의 채널로 급성장했다. 2017년 힙합 레이블 ‘저스트뮤직’과 콜라보한 <GR BOYZ>는 대중들에게 딩프의 존재를 알린 터닝포인트였다. ‘꼰대 기리보이에게 랩을 배운다’는 컨셉의 웹예능 콘텐츠가 먼저 화제가 됐고, 뒤이어 콜라보의 일환으로 발매된 음원 ‘플렉스’까지 차트 정상을 찍었다. 이후 <다모임>, <염따의 성공시대> 등 오리지널 콘텐츠의 연이은 성공으로 이제는 레이블들에서 먼저 협업제안을 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했다.

“딩프에서는 아티스트가 배우처럼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지 않아요. 제작진과 기획 회의를 하며 프로그램 방향을 함께 만들어가죠. 지금은 스케쥴이 안맞아 거절하신 분들도 항상 다음을 기약할 정도로 신뢰 관계가 쌓이게 됐어요.”(박동준 PD)

2017년 ‘저스트뮤직’과 콜라보한 <GR BOYZ>는 대중들에게 딩프의 존재를 알린 터닝포인트였다. 딩고프리스타일 제공

딩프는 MZ세대(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얼·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미디어이기도 하다. 여기엔 아티스트 뿐 아니라 구독자와의 관계 설정도 한몫 했다. “유튜브 댓글창에는 유독 저희를 ‘딩고형’ ‘딩고야’라고 부르는 분들이 많아요. 딩고라는 채널을 ‘친구처럼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시는 거같아요. 일반 방송사와는 다른 점이죠.“(박동준 PD)

딩프의 성공은 기존 미디어 업계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합류한 시기는 다르지만 세 PD 모두 CJ E&M, EBS, 카카오M 등 국내 굴지의 대형 방송사에서 ‘디지털 콘텐츠’ 실험을 해보고 싶어 이직한 케이스다. 몸집이 크고 체계가 복잡한 조직에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는 갈증이 컸다.

평균나이 28세. 딩프에선 10명의 PD가 연차나 직급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디어를 낸다. 필요한 경우 ‘투표’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한다. 빠른 실행을 위해 임원 결재 단계도 없앴다. “딩프의 최대 장점은 우리가 재밌어보이는건 일단 쉽게 시도할 수 있다는거에요. 매주 하는 회의도 회의같지 않아요. 요즘 힙합씬 이슈 이야기하며 놀다가 누군가 재밌는 아이디어를 던지면 다같이 발전시켜나가는거죠. 하지만 자유로움 속에서도 저희 나름의 규칙과 체계는 분명히 존재해요.”(김민정 PD)

‘딩프가 한국 힙합씬에 어떤 존재냐’는 질문에는 ‘국힙(한국 힙합)의 동반자’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PD는 “남들이 보기엔 유튜브 채널같아도 우리 스스로는 미디어의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신예들 발굴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때문”이라고 했다. 딩프는 MBC의 제안으로 웹툰작가 이말년·주호민과 협업한 ‘주X말의 명화’를 비롯해 비힙합 콘텐츠로도 발을 넓히는 중이다. 내년에도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박PD는 “힙합 레이블 단위를 넘어 MZ세대가 좋아하는 인물들과 재밌는 콜라보를 계속하는게 내년 목표”라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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