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실력으로 공정하게 과학자를 평가할 수 있을까

김우재 보통과학자 2021. 1. 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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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자들 가운데 자신의 발전이 자신의 실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잇다면 그 들은 자신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가질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중략) 상류층 사람들은 너무도 확신에 차 있기 때문에 이들이 스스로에게 보상을 제공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거의 없다. 오래전부터 비즈니스 세상을 억눌러왔던 제약이 사라지고 있으며, 저서에서 예측했듯이 착복을 가능케 하는 온갖 새로운 방법이 발명되어 사용되고 있다. 임금과 보수는 급등했다. 엄청난 금액의 옵션을 나눠주는 일도 많아졌다. 최고 수준의 보너스와 고액의 퇴직금도 몇배로 늘어났다." -마이클 영이 죽기 전에 쓴 칼럼 ‘실력주의 타파’ 중에서⁠

학벌의 탄생

마이클 영은 그의 책 《실력주의 사회의 도래》에서 경고한 현실이, 실제로 영국 블레어 총리의 집권하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보며, 병마에 시달리던 85세의 나이에 '실력주의 타도'라는 짧은 칼럼을 썼다. 이 글에서 그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이 소수의 선택받은 계층의 자녀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며, 그 교육시스템에서 7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찍은 낙인이 평생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에 통탄한다. 현재 한국의 정치권이 보여주는 현상이야말로, 한국이 왜곡된 실력주의 혹은 능력주의 사회로 이미 진행되었으며, 그 지독한 시스템 속에서 신음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이 선택된 상위계층에겐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능력주의사회는 몇 가지 가정을 전제로 상식으로 자리잡았고, 그 전제는 현실적인 조건들 덕분에 지켜질 수 없다. 첫째, 노력은 개인의 순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제가 있다. 둘째, 타고난 능력에는 개인 간에 큰 차이가 없고, 혹시 있다고 해도 노력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제가 있다⁠. 전자를 ‘노력의 개인론’이라 부르고, 후자를 ‘노력무한가능론’이라고 부른다. 한국사회 청년들은 이미 한국이 능력주의 사회로 진입했고, 그 바탕에 심각한 불평등이 놓여 있다는걸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노오오오오력’이라는 말로 기성세대의 꼰대스러움을 비웃고,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로 능력주의 사회의 모순을 지적해왔다. 능력주의는 비실력적 요인이 지배하는 현실 때문에 기능할 수 없다. 실제로 한국사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세계에서는 운의 영향, 가정과 사회환경의 영향, 부모의 영향, 그리고 불공정한 교육의 영향으로 인해 공정한 능력의 경쟁이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의 불평등이 현재 보이는 능력주의 사회의 왜곡을 가져온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런 심각한 모순을 교육의 개혁을 통해 풀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사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이 능력주의로 인해 새로운 계급체제를 만들고 있는 기저에는, 학벌이라는 체제가 놓여 있다. 학벌의 사전적 의미는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 혹은 “같은 학교 출신에 의하여 만들어진 파벌”의 두 가지가 있다⁠. 학벌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두 번째 의미 때문이다. 즉, 같은 학교 출신이 만든 파벌이 실력에 의한 경쟁을 저해하는 경우, 학벌주의는 사회에 해악이 된다. 원시시대부터 왕정시대까지, 혈연주의는 강력한 파벌을 만드는 중심이었다. 하지만 사회의 상식이 고양되면서, 혈연이 공정한 경쟁을 해치면 안된다는 인식은 널리 퍼졌다. 지금도 혈연주의로 인한 불공정 경쟁은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학벌로 인한 불공정 경쟁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민주화 이후 들어선 대부분의 정권에선 학벌을 타파의 대상으로 규정했고, 문재인 대통령 또한 학벌에 의한 불공정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정책기조를 가지고 정권을 시작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조차 교육부를 통해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사회를 위한 국가역량체계 구축’을 목표로 내걸었다⁠. 서울대를 폐지하고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를 만들자는 담론이 벌써 20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서울대는 법인화되었고 지방거점국립대학은 고사중이다⁠. 실제로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지방대학은 무너질 것이”라는 말은 2011년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방대학이 망하는게 아니다. 경쟁력이 없는 대학은 당연히 사라져야 하고, 지금처럼 취업양성소가 된 상업화된 대학의 존재이유는 정당화하기조차 어렵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학벌사회를 폐지하려는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점점더 부모의 배경이 중요해지는 세습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박남기, 실력주의사회에 대한 신화 해체(2016)

한국사회가 새로운 세습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전조는 최순실 사태와 조국 사태를 거치며 더욱 명확해졌다. 특히 몇몇 명문대졸업생이 법조계를 장악하는걸 막겠다며 만들어진 법학대학원제도의 도입으로 법조인 세습경향이 더욱 심해졌고, 치의학전문대학원과 의학전문대학원 등의 도입으로 부모의 부가 치과의사나 의사가 되는데 있어 가장 강력한 배경이 되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학벌을 타파하겠다며 정치인들이 벌인 개혁들은 모조리, 능력주의사회의 가장 큰 수혜자인 정치인 본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임이 드러났다. 능력주의를 강화하겠다며 벌인 대학입시제도 개혁은 공정한 경쟁은 커녕 사교육에 의한 공교육 몰락을 가져왔고, 결국 부모의 재력에 따른 교육차별을 초래했다. 즉, 능력주의라는 이념에 따라 시행된 학벌타파 정책은 모조리 실패했다. 학벌이라는 현상은 능력주의사회가 보여주는 부작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과학계의 능력주의와 불평등에 대하여

능력주의사회는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왜냐하면 능력주의가 작동한다고 가정하면, 그로 인해 얻어진 불평등은 정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현실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뿐더러, 기본적인 가정조차 틀린 이념이다. 그리고 가장 처참한 비극은, 전제조차 틀린 그 능력주의사회의 체제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차별과 불평등의 일상화다. 그리고 과학계 또한 능력주의에 대한 오해와 그로 인한 불평등과 차별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다. 어쩌면 능력에 따른 차별이 다른 분야보다 더욱 공고하게 자리잡은 과학계에선, 그런 불평등과 차별이 더욱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계에서 능력주의는 강력한 이념이다. 노벨상처럼 피라미드 꼭대기의 0.1% 과학자들을 만들고 우러러보는 현재의 과학계에서, 불평등은 아주 당연한 노력의 귀결로 정당화되고 있다. 과학계의 불평등은 다양한 수준에서 벌어진다. 먼저 과학계에서 벌어지는 가장 광범위한 종류의 불평등은 마태 효과 때문에 생긴다⁠. 마태효과란 누적이익이론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경력의 초기에 성공한 과학자가 인정과 자원을 독식하는 현상을 말한다. 마태효과는 능력주의사회에서는 부모의 영향력으로 인해 가속화되고, 과학계에서는 영향력 있는 스승과 동료로 인해 가속화된다. 마태효과로 인해 나타나는 불평등은, 논문출판와 연구비의 심사과정은 물론 과학자의 경력에서 직업은 물론 과학자가 평가받는 모든 과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물론 마태효과로 인해 나타나는 불평등이, 진정한 능력에 따른 차별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다만 과학계는 상위랭크의 논문을 출판하고, 연구비를 많이 획득하는 것이 순수한 과학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차별은 인류가 오랫동안 묵인해온 불평등의 산실이다. 그리고 과학계처럼 여성차별의 역사에서 잔인했던 분야도 많지 않다⁠. 마틸다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공고하며, 특히 이번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해야했던 여성과학자들이 받은 피해는 남성과학자들보다 심하다⁠. 소수자 차별과 인종차별 또한 과학계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다⁠. 다른 대부분의 분야들처럼, 과학계 또한 백인남성 위주로 상위계급이 형성되어 왔으며, 이들이 구축한 기득권이 세습되지 않는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노벨상 수상자의 대부분은 여전히 백인남성이고, 과학계의 피라미드를 공고히 만드는 학술지의 영향력지수를 결정하는 이들 또한 백인남성이다. 과학계는 소수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놓고 저지르지 않지만, 논문출판과 연구비 수주에 공공연한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한다는건 이미 여러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드러난바 있다⁠. 단장 한 명에게 백억을 몰아준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소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한국사회의 과학계는 이런 불평등과 차별을 더욱 교묘하고 치밀하게 조장하는 곳이다. 서울대 출신 과학자들이 대부분의 교수직을 차지하고 있고, 유학파와 국내파로 계급이 나뉘어 연구비에서 차별을 당해야 하는 현실을, 한국의 과학계에서 지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불평등은 이념이 되어 과학계에 스며들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회정치적 변화는 과학계에서도 고스란히 감지된다⁠. 첫째, 능력이 우월한 사람들이 상위계층을 차지하고 하위계층의 대표가 사라진다. 과학계를 대표하는 소위 과학계의 리더들은 대부분 서울대학교 출신이거나 미국유학파 출신으로 학벌의 수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 중에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리더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순수하게 공정한 능력에 대한 평가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만약 그렇다면 한국 과학계는 서울대 출신과 유학파 출신의 능력이 비서울대와 비유학파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서울대 출신이 얻는 사회적 자본의 정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과학계는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갖추지 못했다고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대 출신들이 구축한 한국 과학계가 그 많은 국가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연구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한국 과학계가 왜곡된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져 그동안 스스로 자위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증거다.

능력주의 사회가 정치이념이 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두번째 특징은, 상위계층이 정당성을 획득했다는 이유로 더 높은 보상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과학계, 특히 한국 과학계 또한 각종 연구소장과 정출연 원장, IBS 단장 등의 연봉을 테크니션과 비정규직 포닥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이런 격차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능력주의 사회의 세번째 특징은 부와 빈곤의 세습이다. 특히 부유한 부모를 가진 자녀가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승자독식사회가 세대를 거쳐 세습되면서, 능력주의는 완결된다. 이러한 엘리트주의는 다른 어느분야보다 과학계에서 강력하게 작동한다. 의사나 변호사보다 낮은 지위 덕분에 부모에 의한 세습은 찾을 수 없지만, 과학계는 또다른 형식의 세습된 엘리트주의를 개발했는데, 그게 바로 학벌과 저명한 과학자의 권위를 이용한 세습이다. 특히 족벌주의가 심각한 한국 과학계에서 연구비를 독식한 명문대학 교수의 제자들이 학계를 장악하는 모습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불평등의 대표적인 사례다⁠. 

과학계의 불평등은 능력주의라는 이념을 토대로 극한의 경쟁을 정당화한다. 과학자들은 학술지인용횟수와 학술지의 영향력지수를 따라 논문을 출판해야 살아남는다 생각하고,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과 포닥의 인권을 짖밟는것은 물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일부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과학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던 행태와 악행들이, 이젠 대부분의 평범한 과학자들에게서 발견된다. 모두가 하나의 트로피를 두고 싸우는 경기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과학자사회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무한경쟁의 생태계를 만들어냈고, 이젠 빠져나올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승자라는 착각에 빠진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 중 하나는, 이런 무한경쟁이 가속화되면 결국 승자도 패자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과학계의 경쟁은 갈 수록 심화되고 있다. 

※참고자료 
-마이클 영 칼럼 인용, 원문 https://www.theguardian.com/politics/2001/jun/29/comment

https://m.blog.naver.com/3sang4/221703052849 의 번역을 인용함
-박남기. "실력주의사회에 대한 신화 해체." 敎育學硏究 54.3 (2016): 63-95.
-http://www.yes24.com/Product/Goods/67127194
-박남기. "실력주의사회에 대한 신화 해체." 敎育學硏究 54.3 (2016): 63-95.
-박근혜 정부의 ‘능력중심사회 구현’ 성과와 2016년 전망 http://policy.nl.go.kr/cmmn/FileDown.do?atchFileId=152232&fileSn=31503
-김종영. (2019). 세계적 대학체제로서의 대학통합네트워크. 경제와사회, 171-213.
- https://www.etoday.co.kr/news/view/1988273
-박남기. "실력주의사회에 대한 신화 해체." 敎育學硏究 54.3 (2016): 63-95.
-https://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12354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95
-김윤태. (2018). 불평등과 이데올로기: 능력, 경쟁, 확산의 담론에 대한 비판. 한국학연구, 67, 33-72.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40327.html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김우재 보통과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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