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윗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승우 2021. 1. 2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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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머와 지혜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나는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하지 않는다. 그건 헌법이 허용한 권리다. 그런데 트위터에 내 가짜 계정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걸 안 순간 나는 꼭 카살레조의 짝퉁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한번은 어떤 부인을 만났는데, 느닷없이 내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트위터에서 내 글을 잘 보고 있고, 심지어 가끔 나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지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트위터상의 그 인물은 가짜 에코가 틀림없다고 점잖게 설명했지만, 부인은 마치 자기를 자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트위터를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데카르트의 말을 변주하자면 <트위토, 에르고 숨 Twitto, ergo sum>이다."

20세기 최고 지성이자 천재 중 한 명인 움베르토 에코가 '빅 테크'로 불리는 글로벌 소셜 미디어를 소재로 풍자한 촌철살인 같은 글이다.

'트위토, 에르고 숨'은 철학자 데카르트가 라틴어로 말한 그의 대표적 명제인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을 뒤틀어 본 것이다. 우리 말로 하자면 '나는 트윗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정도가 되겠다.

길지 않은 에피소드이지만 이 짧은 몇 문장으로 에코는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많은 부조리와 광기, 무지를 날카롭고도 통렬하게 드러낸다. 천재다운 비범한 재능이다.

이 글은 에코가 2016년 2월 타계하기 전까지 약 15년간 쓴 55편의 에세이를 모은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의 한 대목이다. 에코의 유작 산문집인 셈이다.

이뿐 아니라 무릎을 탁 칠 명문(名文)이 차고 넘친다. 현대 문명의 폐해와 인간의 무지함, 맹목성 등을 드러내는 글이다.

"아스팔트 위에 사람의 뇌수가 흘러내린 광경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다행히도 그게 마지막이다). 죽은 사람을 본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만일 그때 내가 오늘날의 거의 모든 청소년처럼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쩌면 나는 사고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 그 장면을 찍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아는 사람들을 위해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을지 모른다. 그다음에도 그런 짓을 계속해 나가다가 또 다른 사고 장면들을 찍고,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한 인간으로 변해 갔을지 모른다. 그 대신 나는 모든 것을 내 기억 속에 저장했다. 70년이 지난 뒤에도 이 기억 속의 영상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타인의 고통에 냉담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실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른들은 영원히 구제할 길이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가 뭔지 몰라 일일이 지시 내려 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필사적으로 찾는 나라는 불행하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바로 그것이 <나의 투쟁>에 담긴 히틀러의 이념이었다."

에코는 당대 유럽 학자들 대부분이 그랬듯 젊은 시절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골수 좌파 지식인이었지만, 이후 학식과 경륜이 쌓여갈수록 이념의 한계와 틀을 넘어 좌파 사회주의에도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그가 세계적으로 무려 3천만 부가 넘게 팔린 소설 '장미의 이름'을 쓴 계기에도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의 모순적이고 교조적인 속성에 대한 반발이 작용했다고 한다. '장미의 이름' 서문에는 그가 목도했던 '프라하의 봄'이 언급됐다.

에코는 이 산문집에서 좌파의 구조적 모순을 풍자적 방식으로 꼬집는다. 좌파는 정권을 잡지 않았을 때는 반대의 기치만 들고 도덕적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권력을 잡고 국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 모순에 빠진다고 그는 주장한다.

박종대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했다.

1923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에코는 1971년 볼로냐 대학교 부교수에 오르면서 세계적인 기호학자이자 미학자, 정치학자, 문화사학자 등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1980년 출간한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혜와 지식을 문학적 상상력에 결합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세계적 스테디셀러에 올랐다. '푸코의 진자', '바우돌리노', 프라하의 묘지' 등의 소설이 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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