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나이트 춤꾼들 소환한 '아카이브K', 이 짜릿한 전율 얼마 만인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는 상업방송 SBS의 오랜 엔터테인먼트 노하우가 드러나는 예능이자 교양 프로그램이다. 예능과 교양, 그리고 토크와 쇼의 결합이 이렇게 절묘하게 어우러지기란 쉽지 않다.
감정의 흥겨움을 주는 프로가 예능이라면, 생각의 여지를 만들어주는 프로가 교양이다.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 K>는 두 가지 역할에 굉장히 충실하다. 또한 예능을 파느라 교양이 허물어지거나, 교양을 찾기 위해 쇼의 즐거움이 무뎌지지도 않는다. 교양과 예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많은 프로그램 사이에서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는 균형을 찾고, 즐거움을 주고, 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특히 발라드와 1990년대 나이트댄스를 지나 이태원 문나이트에 이르노라면 지난 회차와는 미묘하게 다른 지점을 가리킨다. 그간 이태원 문나이트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의 알아주는 춤꾼이 모여든 곳으로 유명했다. 이곳에 1980년대 한국 댄스뮤직의 기억니은을 만든 박남정이 드나들었고, 현진영이 강원래와 구준엽, 이현도, 김성재를 와와로 픽업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이들'이 문나이트에서는 이미 반짝반짝 빛나는 빅스타이기도 했다. 또 문나이트는 채리나와 미애, 김송 같은 걸출한 여성 춤꾼들의 고향이기도하다. JYP 박진영이 춤의 느낌을 배우고, '룰라' 이상민이 부러워하던 춤꾼들이 모여든 곳도 이곳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알다시피 문나이트는 1990년대 댄스가요의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었다. 이곳의 춤꾼들이 노래하고 춤추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들이 바로 1990년대 댄스가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문나이트는 그간 여러 차례 음악방송에서 그땐 그랬지 풍문처럼 언급되기는 했다. 다만 문나이트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닌 언더그라운드 댄서들의 세계여서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비밀스럽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했다.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는 이 문나이트의 세계 안으로 시청자를 이끌고 들어간다. 이 프로그램에서 문나이트의 춤꾼들이자 1990년대 음악프로를 휩쓸었던 이들은 한 자리에 모여 그때를 생생하게 추억한다. 뿐만 아니라 문나이트 사장님의 사모님과 야옹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당시 DJ까지 등장한다. 또한 이들이 스타가 된 후 부르던 노래와 댄스를 후배가수들과 함께 하는 무대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는 귀를 빵빵 때리는 스피커의 음악, 바둑판무늬의 바닥, 댄서들의 땀 냄새와 오래된 클럽 특유의 퀴퀴한 냄새까지 그대로 느껴질 것 같은 짜릿한 전율이 있다. 19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문나이트는 못 갔어도 비슷한 음악이 흘러나오던 락카페에는 가보았을 테니까.
하지만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는 단순히 추억을 곱씹는 예능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 안에서 문나이트를 통해 한국의 대중문화 유행 트렌드를 훑어보는 즐거움이 있다. 1970년대 쉘부르나 세시봉 같은 음악감상실을 중심으로 퍼진 것이 통기타라면, 1990년대에는 문나이트 출신 댄서 가수들이 텔레비전으로 진출하면서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춤을 배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K팝 댄스뮤직의 춤꾼으로까지 이 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문나이트의 스타들은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말하기도 한다. 그 느낌은 대략 이러하다. 그 시절 춤꾼들이 재밌게 즐기기 위해 춤을 췄다면, 지금의 K팝 가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춤을 배우는 듯하다.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를 보다보면 하나의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거대산업이 될 때에 느껴지는 현실적인 씁쓸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한편 오는 31일에 방송 될 홍대 앞 인디뮤직 역시 기대가 되는 기획이다. 1990년대 중반 PC통신의 발달과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맞물리면서 태어난 홍대 인디뮤직의 등장은 그 어떤 대중문화와도 발생 지점이 다르다. 사이버 세상과 길거리 정신이 만나 '말달리는' 새로운 음악이 홍대 거리에 태어났다.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가 1990년대 중반의 그 홍대 에너지를 어떻게 부활시킬지 궁금해진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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