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클래식>19세에 악단 창단.. 아버지 명성 뛰어넘은 '왈츠의 왕'

기자 2021. 1. 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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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가 중엔 같은 이름으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이들이 있다.

오늘 소개할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요한 슈트라우스 1세(1804∼1849)와 그의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는 이름까지 똑같아 음악가들조차 종종 헷갈리곤 한다.

이렇게 춤곡의 반주로만 여겼던 왈츠를 예술적인 음악 장르로 격상시킨 이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이고 그가 '왈츠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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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부친 반대 딛고 음악가의 길

빈 무도회장서 화려한 데뷔

세상 뜬 아버지 악단과 합병

대형악단으로 美·유럽 공연도

38세엔 궁정무도회 감독 부임

클래식 음악가 중엔 같은 이름으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이들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다. 독일에도 같은 성을 쓰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있지만, 그나마 이름(리하르트)이 다르고 또 독일인이라는 것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요한 슈트라우스 1세(1804∼1849)와 그의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는 이름까지 똑같아 음악가들조차 종종 헷갈리곤 한다. 동명이인이 있을 경우 별명이나 특징 등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이 두 사람은 그마저도 비슷하다. 이 두 부자는 각각 ‘왈츠의 아버지’와 ‘왈츠의 왕’이라는 별칭으로 추앙받는 ‘왈츠’의 대가들이다.

19세기 초, 당시 빈에서는 왈츠 열풍이 불고 있었다. 부둥켜안는 자세를 연상케 하는 왈츠는 퇴폐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젊은이들 사이에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왈츠는 그야말로 춤 그 자체였고 음악은 춤을 추기 위한 반주에 불과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원래 무도음악회장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현악 4중주단의 멤버였다. 하지만 왈츠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자 21세에 자신의 악단을 창단, 직접 왈츠 작품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그는 해를 더해가며 악단의 규모를 키우고 왈츠 곡의 길이를 늘려갔다. 현악 4중주였던 소규모의 악단은 어느새 정규 관현악단의 규모로 커졌고, 5분 내외로 짧았던 소품 형식의 왈츠는 형식미를 더해 10분 정도의 어엿한 관현악 작품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렇게 춤곡의 반주로만 여겼던 왈츠를 예술적인 음악 장르로 격상시킨 이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이고 그가 ‘왈츠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음악가로서의 인생 여정이 고돼서였을까? 그는 자신의 장남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음악가가 아닌 은행가가 되길 바랐다. 기대와 달리 슈트라우스 2세가 음악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는 매질을 해댔다. 채찍으로 내리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버지로부터 재능과 피를 물려받은 슈트라우스 2세는 한술 더 떠 겨우 19세에 15명의 단원을 모아 자신의 악단을 창단한다. 그리고 아버지 몰래 빈 근교의 유명한 도박장 겸 무도회장인 돔마이어에서 호평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물론 연주한 곡들은 왈츠를 비롯한 춤곡들이었다. 이후 그는 거칠 것 없는 성공가도를 달렸고 두 부자는 어느새 왈츠의 양대 산맥이 됐다.

슈트라우스 1세가 45세의 이른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슈트라우스 2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몰래 음악을 배워왔던 차남 요제프 슈트라우스와 4남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도 악단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악단을 자신의 악단과 합병시켜 규모를 키워 빈 사교계를 거머쥐게 된다. 이후 오스트리아를 넘어 전 유럽과 미국에까지 가서 공연할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38세에는 궁정무도회 감독에 임명된다. 슈트라우스 2세는 ‘왈츠의 왕’으로 군림하며 폐렴으로 숨진 74세 때까지 왈츠를 비롯한 500여 편의 작품과 18편의 오페레타를 남겼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대표적인 왈츠 작품. 오스트리아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작품으로 ‘제2의 국가’라고도 불리는데 거기엔 특별한 작곡 배경이 있다. 1866년, 7주 동안 벌어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는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참패하고 만다. 패전으로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당시 빈 남성합창단의 지휘자 요한 헤르베크는 국민에게 음악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전해주고 싶었고, 그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찾아가 전 국민이 따라 부르며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합창곡의 작곡을 의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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