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하얀 목련.. 큰 고모님

기자 2021. 1. 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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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기가 옷자락 속을 파고드는 봄의 문턱 입춘 날을 앞둔 오후, 나는 가족들과 함께 여러 날 병마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하얀 목련을 만났다.

그 목련은 나의 큰 고모님이다.

그 정원에는 목련과 함께 생기를 잃고 시름을 앓는 너덧의 꽃나무들이 정원 도우미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순간 나는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님 영체감응(靈體感應)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슬그머니 돌아서서 훔치고는 목련 가지를 꾹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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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숙(1933∼2003)

아직 한기가 옷자락 속을 파고드는 봄의 문턱 입춘 날을 앞둔 오후, 나는 가족들과 함께 여러 날 병마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하얀 목련을 만났다. 그 목련은 나의 큰 고모님이다. 그 정원에는 목련과 함께 생기를 잃고 시름을 앓는 너덧의 꽃나무들이 정원 도우미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하얀 목련은 깊은 동면에서 갓 깨어난 양서류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한 채 생장점을 밀어 올리듯 좁고 하얀 잔디밭 울타리에 매여 있는 생명 끈을 잡아당겨 일어나 잔디밭 언덕에 비스듬히 기댄 채 나를 맞아줬다. 지난해 가을 고희연에서 보았던 그 맑고 흰 목련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오랜 세월 풍상에 휘둘린 가지 없는 고목처럼 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님 영체감응(靈體感應)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슬그머니 돌아서서 훔치고는 목련 가지를 꾹 잡았다. 하지만 목련은 앞서 부러진 가지가 아물고 떨어진 잎에 새순이 피어난 이웃 목련이 외출 짐을 거두어 귀가하는 모습과 봄이 오면 새싹이 돋는 자연불변의 진리를 믿으며 희망의 싹을 틔우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면서도 목련꽃 그늘 아래서 뛰어놀던 아이들과 한평생을 같이 아끼고 보듬어준 연로한 정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월의 밤하늘을 소망의 별빛과 함께 환히 비추었던 보름달이 하루가 기울고 다시 얼굴을 내밀 때쯤 그 목련은 병마의 바위를 밀쳐내지 못하고 망팔(望八) 운명을 다한 꽃잎이 되어 차디찬 대지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급보에 정원으로 달려온 정원사와 아이들은 목련처럼 희고 곱기만 하였던 떨어진 꽃잎을 주워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소생해 보려 노력하였지만 이미 허사였다. 목련꽃은 그 순박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오래도록 이어주지 못하고 너무 쉽게 져버리고 말았다.

목련은 여러 날을 같이 지내던 정원 꽃나무들과 수발해준 고마운 도우미와 제대로 이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보름여 남짓 외출 후 영구의 몸으로 귀가한 윤회(輪廻)의 정거장에는 마중 나온 많은 이웃의 눈물과 울음소리만이 들렸다. 목련은 목련을 아주 가까이했던 이들에 의해 모든 것을 태우고는 목련 꽃잎과 똑같이 몇 조각 또 다른 하얀 꽃잎으로 다시 나타나 차세(此世)의 흔적만 남긴 채 천도영면(天道永眠)했다.

하얀 목련 꽃잎이 떨어진 지 49일째 되던 날, 나는 꽃가마에 앉아 환히 웃음 짓고 계신 목련을 찾아 정토왕생(淨土往生)을 합장 기원했다. 법당 한편에 가슴으로 통곡하며 눈물을 훔치는 정원사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하얀 목련과 눈을 맞추어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5일장 보러 양곡장터로 떠나신다면 치맛자락 붙들고 따라가련만…. 이것이 인생무상 회자정리라 하였나? 스님은 마지막 먼 길 떠나는 목련을 위해 노잣돈을 놓으시란다.

길가 소공원과 주택가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의 전령 목련은 정원사와 아이들의 아픔과 그리움을 모르는지 따스한 봄볕과 바람에 마냥 즐거운 듯 춤추며 웃고만 있었다. 신축년 추운 겨울. 눈이 녹고 봄이 오면 내 가슴속에 영원히 지지 않는 하얀 목련을 다시금 심으련다.

조카 심재성

(창강서화각연구회장·전 광명시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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