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산책] 한 걸음 뒤로 물러서니..보여요

최동현 입력 2021. 1. 2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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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정직해야 한다. 나는 그래서 추상을 좋아한다. 나는 내가 잘 알고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곳에서 느낀 것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자연을 대상으로 순전히 추상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 중인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유영국(1916~2002)의 1964년 작품 'work'를 감상하다 벽면에 쓰인 이 글귀도 보게 됐다.

그러나 이 문구 덕에 작가가 자연을 표현한 것이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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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밖 미술관 프로젝트 파트1
다음달 28일까지 가나아트센터
유영국·김창열 등 작품 전시
새해 첫 경매시장 달궜던 작가들
유영국, work, 1964, 캔버스에 유화, 138x196cm.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예술은 정직해야 한다. 나는 그래서 추상을 좋아한다. 나는 내가 잘 알고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곳에서 느낀 것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자연을 대상으로 순전히 추상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 중인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유영국(1916~2002)의 1964년 작품 ‘work’를 감상하다 벽면에 쓰인 이 글귀도 보게 됐다. 작품 특유의 모호함과 추상성으로 그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였다. 그러나 이 문구 덕에 작가가 자연을 표현한 것이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자연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 게 아니라 자신에게 내면화한 자연을 캔버스에 토해낸 것이리라.

다시 그림으로 시선을 돌리자 사람 키보다 큰 억새풀이 가득한 넓은 동산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어느덧 작가의 내면으로 들어간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최근 작고한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의 ‘회귀’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부 작품은 캔버스가 아니라 거친 마대를 사용해 가까이 다가가면 물방울이 왜곡돼 보인다. 하지만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보니 물방울의 입체감이 살아나 방금 뚝 떨어진 이슬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물방울 주변에는 의미 없이 나열된 한자가 동양미를 더한다. 작가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던 것에 대한 향수가 담겨 있다고 한다.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라고 작가는 말한 바 있다.

두 거장의 작품은 최근 열린 새해 첫 메이저 미술품 경매시장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유영국의 1989년작 ‘work’는 케이옥션 경매에서 7억3000만원으로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김창열의 1983년작 ‘물방울 SH84002’는 5000만원에서 시작해 결국 1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예술가의 작품을 가격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하지만 가격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대중적 선호와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창열, 회귀, 2013, 캔버스에 유화, 80.5x117cm

전시관에는 원로 조각가 최종태(89)의 조각품도 여럿 전시돼 있다.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근육질 남성의 역동성이나 육체미 등과는 대조적으로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동양 여성의 얼굴이 시선을 끈다. 짙고 검푸른 청동으로 만들어져 무거움과 차가움이 느껴진다. 전시 공간은 다소 어둡게 꾸며져 조각품 표정들에서 고독함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전에는 내가 얼굴을 만들면 모두 슬픈 모습이 됐지만 요즘엔 그것이 날아간 것 같다. 내가 봐도 편안한 어머니 같다." 과거 인터뷰에서 최 작가가 한 말이다.

가나문화재단은 ‘자문밖 미술관 프로젝트 파트1’ 전시를 다음 달 28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이어간다. 국내 문화예술계 거장 12명의 작품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3월5일부터는 또 다른 12명의 작가를 소개하는 파트2 전시가 시작된다. ‘자문밖’은 종로구 구기동, 부암동, 신영동, 평창동, 홍지동 등 자하문 바깥 동네를 일컫는다. 이 일대는 화가, 조각가, 소설가, 건축가 등 문화예술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유명하다.

가나문화재단은 자문밖문화포럼·종로구청과 함께 자문밖 소재 작가의 자택을 미술(자료)관으로 활용하는 ‘기념미술관’과 종로구 구유지에 한국 근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미술관’ 설립도 추진 중이다. 게다가 자문밖 소재 작가 작업실을 향후 미술관 등 문화유산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최종태, 얼굴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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