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흑인, 여성이니까..그럴거라는 '암묵적 편견' 차별·불평등 씨앗이 되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입력 2021. 1. 28. 13:57 수정 2021. 1. 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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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제니퍼 에버하트 지음, 스노우폭스북스 펴냄
[서울경제]

“우리는 노예의 후손으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깡마른 흑인 소녀가 자신도 장래에 대통령이 될 꿈을 꾸면서 대통령에게 시를 들려주는 나라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새로운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조 바이든 못지않게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가 있으니, 젊은 나이에 월계관을 쓴 22세의 시인 어맨다 고먼이었다. 그는 미국의 첫 흑인이자 여성 부통령이 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보다도 더 시선을 끌었다. 고먼은 자신의 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을 낭독하며 “부서진 마음”을 치유하는 민주주의의 힘, “우리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있는 것으로 시선을 들어 올리는” 미래를 이야기했다. 어린 여성, 게다가 흑인인 그는 백인 남성이 주류인 미국 정치의 중심부에서 자신이 주변인으로 지냈기에 더 일찍 깊이 깨달은 삶의 통찰을 펼쳐 보였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의 시 낭독 장면이 특별할 것은 아니건만 이날 취임식에 압도적 찬사가 쏟아진 것은 흑인, 여성에 대한 그간의 편견이 그만큼 확고했다는 방증 아닐까?

신간 ‘편견’은 미국 최고의 인종 편견 전문가이자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 교수인 제니퍼 에버하트의 책이다. 차별을 조장하고 사회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편견의 원인과 작동 방식을 경험과 사례에 기반해 추적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암묵적 편견’이다. 으레 그러리라 생각하는 암묵적 편견은 인간의 두뇌 체계와 사회 격차가 만들어낸 일종의 왜곡된 렌즈다. 인종을 예로 들어보자. 편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인종에 대해 ‘특정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생각이 동력으로 작용해 인식,기억,행동을 왜곡한다. 흑인을 생각하며 권총을 떠올리고 폭력 범죄에 백인이 아닌 흑인을 결부시키는 식이다. 편견과 고정관념의 결합은 강력하다. 편견은 인종차별을 유도하고 차별은 편견을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이렇게 눈덩이처럼 구르며 편견은 더욱 커져 간다.

스스로 편견 없다고 생각해도

인종·성별 등에 '특정한 생각' 가동

인식·기억·행동 왜곡해 갈등 조장

'편견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가정 자체를 버려야 악순환 끊어

대학 교육을 받은 1세대 흑인인 저자는 자신의 실제 경험도 고백한다. 어느 날 함께 비행기에 탄 다섯 살 짜리 아들이 한 승객을 가리키며 “아빠와 닮았다”고 말했다. 남편보다 키는 10㎝ 이상 작고 머리도 긴 남성이었다. 대머리인 저자의 남편과 닮은 점은 흑인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곧이어 아들은 “저 사람이 비행기를 털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자는 “다섯 살 난 아이조차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을 자연스레 예상하게 만드는 심각한 인종 계층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결론을 받아들여야 했다.

저자가 강연장으로 나섰던 오클랜드 경찰서에서 한 경찰이 털어놓은 위장근무 일화도 소개한다. 그는 “흑인에다 신장과 체구까지 나와 비슷했지만 그 남자는 지저분한 턱수염과 헝클어진 머리에 닳아빠진 옷을 입어 범죄자처럼 보였다”면서 “남자가 내 쪽으로 점점 가까이 올 때, 그가 총을 가졌을 거라는 느낌이 들고 어딘가 좀 이상하다, 정상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도로를 따라 추격전을 벌인 후에야 그가 반사되는 유리 벽을 통해 마주한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

인종이 다른 사람들을 두고 “다 똑같이 생겼어”라고 말하거나 같은 인종의 얼굴에 더 강한 반응을 보이는 ‘타인종 효과’도 실제는 축적된 경험이 뇌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하는 저자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무의식적 편견이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직접 대면하는 것에서 편견의 문제들을 고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암묵적 편견은 생활 속에서 인종 편견을 합리화한다. 숙박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의 유색 인종 게스트 거부 사건, 흑인이 주문하지 않고 화장실부터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고발한 스타벅스 사건 등이 그 사례다. 책은 교육, 거주, 경제 활동, 사법 체계, 사회 내 관계 등 삶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에 편견이 뿌리 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사법부의 인종차별적인 부당 판결이 대중의 마음 속 편견을 강화하듯이, 다인종 학교를 통한 통합 교육을 시도해도 흑인 학생이 선생님으로부터 정기적·반복적으로 모욕을 당하면 불평등이 오히려 심해지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편견에 대해 말하는 일은 단순히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화두이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이다.···(중략) 편견이 재생산되어 결국 편견의 연료가 되는 불평등을 이해하고 거절할 수 없게 된다. 편견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가정을 버려야 이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낼 수 있다.” 1만7,000원.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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