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출근하는데" 프리랜서 미명 아래 근로계약서 없는 방송작가

권영은 2021. 1. 2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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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부지부장 인터뷰
"방송작가 대부분, 주 5일 출근..
정규직 사원과 지정된 자리 근무"
김한별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 부지부장이 2019년 찍은 다큐멘터리 '일하는 여자들'은 방송에는 나오지 않는 방송작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하는 여자들' 속 한 장면. 김 부지부장 제공

오전 6시 생방송되는 MBC '뉴스투데이'의 방송작가 김모씨는 주 5일 오전 3시 30분이면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통신사 뉴스와 조간을 훑고, 뉴스 아이템을 고른 후 데스크의 지시에 따라 원고를 쓰는 게 그의 업무. 아이템은 데스크 판단에 따라 수시로 바뀌고, 최종 원고는 반드시 데스크 승인을 거친다. 이렇게 10년 가까이 일한 김씨는 지난해 6월 갑작스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계약서상 계약 기간을 6개월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는 같은 처지의 동료 이모씨와 함께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결과는 각하. 부당해고 여부를 따져보지도 못한 채 종료된 것이다. 방송작가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김한별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 부지부장은 2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방송사로 출근해 업무 지시를 받으면서 일해온 방송작가는 노동자"라며 "그동안 프리랜서로 위장된 채 마땅히 누려야 할 노동권을 박탈당해왔다"고 주장했다. 방송작가는 근로계약서가 아닌 프리랜서 계약인 '업무위임계약서'를 쓴다. 이마저도 없이 구두 계약으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여전하다. 방송계 관행이다.

하지만 방송작가 대부분은 사전적 의미의 프리랜서와 거리가 멀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특히 보도국 내 방송작가의 경우 10명 중 8명(82.9%)은 5일 이상 출근해 "정규직 사원과 동일 장소 내 지정된 자리"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가 지난달 보도국 방송작가 123명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다. 응답자의 89.4%는 기자, PD, CP 등 회사 정규직에게 업무지시를 받고 일했다. 김 부지부장은 "사용자의 실질적인 지휘·감독 아래 상시 지속 업무를 하는 보도국 방송작가에 대한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법적 테두리 내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근로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부지부장. 김 부지부장 제공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부지부장. 김 부지부장 제공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라는 지위는 방송작가를 더 취약한 현실로 내몬다. 프로그램 개편을 명분으로 숱하게 반복되는 계약 해지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방송사가 제작비 긴축에 나서면서 수많은 방송작가들은 일자리를 잃었지만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했다. 그나마 전국민 고용보험의 첫 걸음으로 지난달부터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됐지만 여기서도 보도국 방송작가는 제외됐다. 예술인복지법상 예술인에는 보도 분야를 제외한 드라마, 예능, 시사교양 방송작가만 포함된 탓이다. 김 지부장은 "실질적으로 정말 보호받아야 하는 이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현재의 협소한 고용보험 적용대상 범위는 더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하는 사람은 노동자고, 노동이 있는 곳에 근로계약은 상식입니다." 7년차 방송작가인 김 부지부장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해도 구두계약을 하고 해고가 되도, 다들 그러니까, 그게 관행이니까 이상하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며 "2017년 노조가 출범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그게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는 피드백을 주변에서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던 막내작가(경력 3년 안팎의 취재작가)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를 받게 된 것도 노조가 목소리를 높인 결과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지위에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방송작가 300여명이 모인 방송작가유니온은 2017년 11월 탄생했다. 김한별 부지부장 제공

노조는 앞선 지노위 판정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한 두 방송작가와 함께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고, 노동자성을 인정 받겠다는 계획이다. '위장된 프리랜서'로서 받지 못했던 퇴직금 청구에도 목소리를 보태는 게 올해 목표다. 마침 지난해 고용노동청은 JTBC 방송작가가 낸 퇴직금 체불 진정에 대해 지급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과거엔 사측에서 원고료를 떼먹고도 '계약서 있냐'고 발뺌하고 나서면 '똥 밟았구나'하고 말았죠. 이젠 노조에서 전화 한 통이면 바로 입금이 돼요. 노조가 생겨서 좋은 점이에요. 방송작가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조가 함께 싸울 겁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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