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의 디코드] 중국에서 520만대 판 일본차의 위협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입력 2021. 1. 28. 11:12 수정 2021. 2. 1.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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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자동차산업이 IT·서비스와 깊이 연결되면서 전통 자동차산업의 가치가 희석되는 것 같습니다. 이젠 자동차산업보다 모빌리티서비스산업이라는 말이 더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런 경향이 최근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매출·수익성보다 미래에 얼마나 큰 비즈니스를 일굴 수 있느냐에 대한 ‘선행적 기대’가 주가에 과도하게 반영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자동차산업을 분석하는 중요한 판단자료는 여전히 ‘현재 어디서 누가 얼마나 차를 팔고 있느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동차산업에 있어서 여전히, 그리고 너무나 중요한 가치인 ‘판매 데이터’를 얘기해보려 합니다. 자동차는 소비자가 대량 구입하는 최종제품 중 가장 비싸지요.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다는건, 결국 그 회사의 브랜드가치와 앞으로의 지속성장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의 판매 데이터와 관련해 딱 한 곳, 한 쪽의 회사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중국시장, 그리고 중국에서 엄청나게 차를 팔고 있는 일본차 회사들입니다.

광저우도요타의 홈페이지. 광저우도요타는 도요타와 중국 광저우자동차의 합작사이다. /광저우도요타

우선 작년에 중국 자동차시장이 어땠냐 하면요. 당연히 세계최대일 뿐 아니라, 빅마켓 중에 판매감소가 거의 일어나지 않은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전년보다 2% 줄어드는데 그쳤습니다. 승용차(2018만대)는 전년보다 6% 감소했지만, 상용차(513만대)가 19% 증가한 덕분이었습니다. 반면 유럽은 24%, 미국은 15% 시장이 축소됐지요.

◇세계 신차 3대 중 1대는 중국에서 팔려... 작년 중국시장, 빅마켓 중 유일하게 시장규모 유지

세계에서 팔리는 차 3대 중 1대는 중국에서 팔립니다. 중국의 작년 신차(상용차 포함) 판매는 2531만대였는데요. 2위 미국의 판매량보다 80% 많습니다. 중국은 또 친환경차 시장 규모로도 최대이고, 앞으로는 그 규모가 폭발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중국에서는 작년에 전기차(플러그인 포함)만 137만대가 팔렸습니다. 곧 전기차로 다 바뀔 것만 같았던 유럽의 작년 전기차(플러그인 포함) 판매가 105만대였지요. 중국이 훨씬 많았던 겁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2035년부터 순수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고, 신차 판매의 50%는 전기차(플러그인·수소연료전지차 포함), 나머지 50%는 하이브리드카로 채울 방침입니다. 2035년 중국 자동차시장을 3000만대로만 추산해도, 9년 뒤에는 중국에서만 연간 1500만대의 전기차와 1500만대의 하이브리드카 시장이 각각 열린다는 얘기입니다.

중국 시장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 보는 이유는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이 향후 수년간 큰 돈 벌 수 있는 곳이 중국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동차회사들은 점점 더 돈 벌 곳은 줄어들고 돈 쓸 곳은 늘어나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유럽·미국은 환경규제가 엄격해지면서, 잘못하면 돈 버는 것보다 규제에 따른 벌금을 더 내는 시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유럽은 자동차회사마다 거액의 벌금 피하느라 난리입니다. 잘못하면 차를 팔면 팔수록 돈을 잃는 겁니다. 버는게 아니고요.

게다가 현재 어떤 자동차회사도 전기차만 팔아서는 돈을 벌지 못합니다. 자율주행에 통합전자제어·모빌리티서비스 개발까지 조 단위로 돈 들어갈 곳이 많지만, 사실 이런 것으로 언제 돈을 벌어들일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하나 확실한 것은 돈을 엄청 쓴다해도 몇 년 안에 충분한 매출·수익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도요타·폴크스바겐 같은 우량기업조차도 개발비 충당하느라 허리가 휘어지는 상황이죠.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하는 곳이 중국인 겁니다. 연간 2500만대, 곧 3000만대 시장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만 137만대의 전기차(플러그인 포함)가 팔린데 이어, 몇 년 안에 연 200만, 300만대, 2035년 1500만대의 전기차(플러그인 포함)가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수퍼 빅마켓이기 때문이죠. 중국에서 판매량을 높이는 것, 점유율에서 밀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겁니다. 판매를 늘린다는건 중국 소비자 머릿속에 자사 브랜드를 각인시킨다는 의미지요. ‘이 브랜드 믿을만하다. 써봤더니 만족스럽다. 주변에서도 잘샀다고 칭찬한다. 그러니 이 회사가 나중에 뭘 내놓더라도 구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인식만 심어줄 수 있다면, 앞으로 위기가 닥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판매가 많고 점유율이 높다는 것, 혼돈의 마켓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겁니다.

그럼 이 중요한 중국시장에서 작년에 일본차들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일본차 회사들은 중국에서만 520만대(현지생산분+일본에서 중국으로 수출한 분량의 판매)를 팔아 점유율 26%를 기록했습니다. 중국에서 팔린 승용차 4대 중 1대 꼴로 일본차였다는 얘기입니다.

중국 시장에서 일본차의 약진이 무서운 것은 일본차의 브랜드이미지가 중국에서 고착화될 경우 한국차의 재도약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작년 중국에서 판 자동차 520만대가 얼마나 많은 것이냐 하면요. 작년의 일본 전체 신차 판매량(460만대)보다도 많습니다. 일본 신차 판매량을 일본차 업체의 중국 판매량이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또 일본차 업체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의 작년 일본차 판매 합계(534만대)를 거의 따라왔습니다. 아마도 올해나 내년 쯤에는 중국 내 일본차 판매량이 미국 내 일본차 판매량을 넘어 일본차의 최대 시장으로 등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년 중국에서만 도요타 180만대, 혼다 163만대 판매

작년 중국 내 일본차 판매를 이끈 것은 도요타였습니다. 180만대를 팔아 전년보다 11% 성장했지요. 같은 기간 중국 승용차 시장이 6% 감소한 것에 비해 돋보이는 성과였습니다. 도요타는 중국 판매가 늘어난 덕분에 폴크스바겐을 제치고 5년 만에 다시 세계 판매 1위에 복귀했습니다.

둥펑혼다 홈페이지. 둥펑혼다는 혼다와 중국 둥펑자동차의 합작사이다. /둥펑혼다

도요타만 중국에서 차를 많이 판게 아닙니다. 혼다도 163만대를 팔아 전년보다 5% 성장했습니다. 중국의 애국 마케팅도 효과를 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중국 토종 업체의 판매도 전년보다 8% 줄었으니까요. 물론 전체 판매량은 774만9000대(38%)로 가장 많긴 했지만, 결국 일본차가 브랜드 이미지와 상품성, 게다가 가성비까지 중국 소비자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반면 현대·기아차의 작년 중국 판매는 전년보다 27% 감소한 66만5000대였습니다. 시장 평균보다 훨씬 큰 폭의 감소이니 어떻게 봐도 결과를 좋게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현대·기아차는 2016년 중국에서 179만대를 팔아 정점을 찍었지만, 2017년 사드사태로 판매가 꺽인 이후 줄곧 하향세입니다. 사드사태가 원인을 제공한건 맞지만, 이후에도 계속 회복 못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다 얘기하긴 어렵지만, 핵심은 구매(부품조달)의 철저한 현지화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왜 문제인지 사드사태와 유사한 ‘센카쿠(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중·일 충돌)사태’를 한국차보다 먼저 겪었던 일본업체들의 사례를 통해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일본차의 약진은 코로나 사태 이후의 수요 반등분을 일본차가 상당부분 가져갔기 때문인데요. 이런 경쟁력 상승의 계기를 찾으려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도요타는 중국에서 2011년(89만5000대)까지 잘 성장하다가 바로 이듬해 대형 위기를 맞았습니다. 2012년 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중·일 외교 대립이 격화되면서 중국 판매가 일시적으로 반토막 났지요. 당시 급성장중이던 현대·기아차는 일본차 판매 감소분까지 빼앗으며 약진했습니다. 중국 판매는 2011년 117만2000대에서 2012년 133만7000대로 급증했고요. 성과에 고무된 현대·기아차는 이후 중국 공장의 대대적 증설에 나섰지요.

도요타는 2012년 중국 판매가 반토막난 뒤 구매의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경쟁력 쇄신에 나섰습니다. 당시 도요타·혼다의 고민은 중국 토종업체 차량이나 현대차에 맞서, 어떻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였지요. 차의 매력을 높이면 원가가 올라 수익을 못내고, 원가를 낮춘다고 사양을 줄이거나 부품의 급을 낮추면 차의 매력이 떨어져 안팔리니 수익이 안나겠지요.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냐였죠.

도요타가 취한 방법은 중국시장에 특화된 제품의 부품조달·설계를 철저히 현지화하고, 중국 합작 파트너에게 더 많은 이익과 동기를 부여해 더 높은 신뢰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거였습니다. 당시 도요타가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라는 새로운 형태의 차량 설계·부품 공용화 계획을 완성한 것도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기술 혁신을 통해 중국에 최적화된 모델을 더 고품질·저가격에 더 빨리 개발하는게 가능해진 것이지요.

기술유출을 우려해 현지화를 꺼렸던 하이브리드카까지 과감히 중국 현지 개발·생산체제로 바꿨습니다. 2014년 중국 장쑤(江蘇)성 창수(常熟)시에 개발센터를 짓고 2015년부터 하이브리드카를 현지 생산해 판매를 계속 늘려갔습니다. 하이브리드카는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연비도 좋고 친환경적이라 세제혜택도 기대할 수 있지만, 값이 비싼게 단점이었습니다. 도요타는 핵심부품까지 중국 현지생산으로 바꿈으로써 중국내 하이브리드 판매가를 낮췄습니다.

◇중국에서 밀리면, 자동차회사의 미래는 없어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중심으로만 판매했던 자사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도 중국에 투입했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판매량으로 인정받은 고급브랜드라는 점이 이름값을 중시하는 중국 소비자들에게 그대로 먹혔지요. 작년에도 중국에서만 렉서스가 월 평균 2만대씩 팔리며 도요타 전체의 중국 내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렉서스는 일본에서 만들어 중국으로 수출합니다. 관세를 물기 때문에 가격적으로 불리하지요. 그런데도 렉서스가 중국에서 잘 팔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물론 도요타에서 만들었다는 것도 크겠지만, 가장 큰 것은 ‘렉서스가 이미 미국이라는 선진 자동차시장에서 많이 팔리고 인정 받은 브랜드라는 것’입니다. 즉 중국인들은 그 브랜드가 고급차라고 아무리 선전해봐야 잘 믿지 않고, 그 브랜드가 해외 선진국에서 정말 인정받는지를 중시한다는 겁니다. 중국에서 고급차를 많이 팔고 싶으면, 우선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서 그 고급차를 많이 팔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혼다도 2륜(오토바이) 사업부의 압도적 경쟁력을 4륜(자동차) 사업부가 배우는 식으로 중국시장에서의 경쟁력 혁신에 나섰습니다. 4륜에서 혼다는 연간 500만대를 파는 7~8위권 회사이지만, 2륜은 연간 2000만대 이상을 파는 글로벌 1위 브랜드입니다. 특히 기획만 일본에서 하고 설계·부품조달까지 모두 현지화해 전체 판매량의 99%를 일본 바깥에서 만들고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 결과 2017년 일본차와 현대·기아차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됩니다. 당시 사드사태로 현대차 판매가 급감하게 되는데, 이 감소분을 일본차가 고스란히 가져가게 된 것이었지요. 그해 일본 메이커들의 중국 판매는 전년 대비 두자릿수 성장을 기록했고, 도요타·닛산·혼다·마쓰다 모두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일본차가 작년에 중국에서 520만대나 팔았다는 것은 충격적일 뿐 아니라 한국 자동차산업에 대단히 위협적인 일입니다. 중국 시장은 규모뿐 아니라 미래가치 면에서도 절대 건너뛸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2035년 1500만대의 전기차(플러그인 포함), 1500만대의 하이브리드카 시장이 중국에서 열릴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렇게 되면 하이브리드·플러그인 기술력이 높은 도요타·혼다가 유리합니다. 지금처럼 중국 소비자에게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판매를 늘려나가는 일본 업체들이 앞으로도 계속 많이 팔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글로벌 자동차메이커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포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한국차가 반드시 중국 시장을 되찾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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