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와 출생 사이, 언제부터 생명인가
육중한 문을 열자 이제는 익숙하지만 절대 친숙해지기는 어려울 듯한 냄새가 마스크를 아랑곳하지 않고 스며들어왔습니다. 불결함에서 오는 냄새는 아니었습니다. 실험용 동물을 키우는 곳이기에 먹이와 물은 늘 신선했고, 오물은 깨끗이 치워졌으며, 온도와 습도도 정확히 관리되고 있어 청결도로만 본다면, 며칠 피곤함에 절어 쓰러져 자는 데 바빠 거의 청소하지 못한 제 방보다 깨끗할 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포유류가 이 정도 수로 밀집한 곳에선, 그 숨주머니들이 만들어내는 끈적하고 비릿하며 열감이 배어든 숨결이 공간을 가득 채우기 마련입니다. 케이지(실험동물 우리)에 붙은 라벨을 체크하고 다시 한번 안을 확인했습니다. 케이지 안에는 이제 제법 배가 묵직해진 암컷 생쥐들이 있었습니다.
실험동물 태아를 해체했던 기억
오늘 할 일은 실험동물 뇌조직에서 세포를 추출해서 배양하는, 1차 세포배양(Primary Cell Culture)입니다. 이번 실험에 필요한 신경세포는 태아 시절, 그것도 재태 주기(임신 기간)가 3분의 2(쥐의 재태 주기는 3주로 3분의 2는 2주)에 이른 때만 배양이 가능하고, 이 범위를 벗어나면 잘 배양되지 않기에 잘 확인해야 합니다. 자칫 날짜를 혼동하면 애먼 쥐만 잡는 꼴이 되니까요. 다시 한번 라벨을 확인한 뒤, 어미쥐들은 프로토콜(실험계획)에 따라 처리하고 자궁을 적출했습니다. 대개 한번에 한 아이만을 품는 사람의 자궁은 역삼각형 주머니 모양이지만, 한배에 여러 마리를 품는 생쥐의 자궁은 콩깍지 두 개가 V자 형태로 붙은 모습니다. 다만 그 안에 콩알이 아닌 양막에 둘러싸인 쥐의 태아가 들어 있는 게 다를 뿐이죠.
이제 세밀한 작업만이 남았습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생쥐의 태아에게서 머리만을 분리해 현미경 위에 올리고, 렌즈로 보면서 끝이 미세한 핀셋으로 얇디얇은 두피와 그보다 더 얇은 뇌막을 벗기고 뇌조직만을 분리하는 일입니다. 생쥐가 여러 마리였고 세밀한 작업이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현미경 접안렌즈에 눌려 눈 주위에 동그란 자국이 생길 지경이었지요.
제법 긴 시간 동안 눈과 손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며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내가 지금 한 생명체의 목숨을 빼앗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숨을 끊고 그것을 낱낱이 해체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지금 다루는 건 생명이 아니라 오직 세포 덩어리일 뿐이라고 되새김하면서 말입니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아기를 낳는 데 도움받은 난임센터에서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지난번 시험관 시술 때 난자가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게 과배란됐기에, 개인적으로는 부작용에 따른 난소과자극증후군으로 힘들었지만, 수정란이 많이 만들어져 일부를 냉동해둔 상태였습니다. 그 냉동 배아의 보존 기간 5년이 다 됐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계약서에 명시된 상호조약에 따라 배아를 폐기하겠다고 했습니다.
‘폐기’라는 두 글자가 뇌리에 선명하게 박히던 순간, 문득 그보다 10년 전에 겪은 실험실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살아 있는 쥐를 죽이고 그 태아를 꺼내 배양하던 과정에서 애써 떠오르는 걸 억누르며 지웠던 생각, 언제부터 하나의 오롯한 생명인가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생명윤리법은 연구 목적 배아 금지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직관적으로 간단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받아 그에 맞는 법적·제도적 권리를 주는지는 매우 다릅니다. 생물학적 발생 기준에 따라서는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순간부터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자궁에 착상해 모체와 연결된 순간부터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초기 발생 과정에서는 모두 동일한 기능을 가진 줄기세포가 기능적 특성을 가진 세포로 분화하는 순간을 제시하거나, 태아가 모체와 분리돼 몸 밖에 나온 이후를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문화권에 따라서는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태동을 시작한 순간에 영혼이 주입됐다고 이 시기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생살여탈권이 주어져 아기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야만 인정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혹독한 성인식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의 아이와 여성은 가부장에게 종속돼 가부장이 이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기도 했고,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노예 신분인 경우 인간의 권리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문화권도 있습니다.
최근 다양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발생 과정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서, 기본적으로 생물학적 발달 단계에 따라 법적 권리가 주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태아의 전부가 모체 자궁 밖으로 노출되는 때를 기점으로 독립된 인간의 지위를 인정하는 편이지만, 세부 법에 들어가면 조금 달라집니다.
형사법에선 출생 신호로 보는 진통이 시작되는 때를 기점으로 잡고, 손해배상청구권 혹은 유족과 관련된 법률에서 태아는 출생아와 동일한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인간의 발생 단계별로 좀더 세세한 기준을 제시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배아(胚芽)란 ‘인간의 수정란이 수정된 시기부터 발생학적으로 모든 기관이 형성되기 전까지 분열된 세포군’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모든 배아는 임신을 목적으로 할 때만 형성을 허가받고(처음부터 연구 목적으로 배아를 만드는 것은 금지된다는 뜻), 다만 임신 시도 뒤 남은 배아 중 권리권자가 기증을 허용한 때는 예외적으로 연구에 이용될 수 있으나, 이 역시 신경계의 기원이 되는 원시선이 발달하기 전(수정 뒤 14일)까지 배아에 한해서만 가능하다고 명시됐습니다.
이 아이와 저 배아들 사이, 그 거리감
당시 냉동된 배아들의 일령은 ‘수정 뒤 7일’이었습니다. 법적 기준 내에서 이 배아들은 일종의 ‘세포군’이며, 법적인 보존 연한을 넘겼기에 즉시 폐기하거나, 기증 이후 연구 목적으로 7일간 이용 뒤 폐기하는 것이 남은 절차였습니다. 게다가 애초 냉동 자체가 세포에 부담되는 과정이라 해동해보면 이미 배아가 손상된 경우가 많아, 녹이기 전까지는 세포군으로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지식과 경험과 제도에 따르면 이 세포군은 생명이 아니라, 대상이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대하고 있으며, 법적으로도 그러했습니다.
그걸 모르지도 않았고 그에 대해 어떤 거리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수정란을 기점으로 죽을 때까지 연속선상에 놓인 생명체의 발생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 문제였습니다.
인간 생(生)의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적입니다. 인간은 매우 아날로그적인 존재이죠. 과학 발전은 어느 수준부터 인간인지를 구별하기보다, 오히려 인간의 생이 연속적이란 사실만을 더욱 확고하게 했습니다. 제아무리 현미경으로 세세히 들여다보고, 심지어 세포와 분자 수준에서 샅샅이 살펴봐도 딱 이 시점부터 인간으로서 대우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명확한 구분이 없다는 것만을 알아낸 셈이니까요.
게다가 당시 제 눈앞에는 도저히 부재를 상상할 수 없는 살아 숨쉬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와 저 배아들 사이의 거리감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만들어졌으나 서로 다른 바이알(실험용기)에 나뉘어 보관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숫자가 쓰인 라벨이 붙었다는, 그 작은 차이에서 비롯됐습니다.
선택은 순전히 마음의 문제
그러니 이후 선택은 순전히 제 마음에 달린 것이었습니다. 이들을 세포 덩어리로 규정해 그에 걸맞은 결정을 내릴 것이냐,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아이들로 받아들여 품을 것이냐. 이 연재 칼럼의 전체적 주제인, “책으로 배운 객관적 지식과 실제 내게 일어나는 개인적 경험 사이의 괴리”를 가장 강렬하게 겪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과연 저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다음편으로 계속)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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