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되더라도, 트럼프는 계획이 다 있구나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1. 1. 28.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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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위기에 빠졌지만 트럼프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설령 2024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영향력과 선거자금 후원을 무기로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을 쥐락펴락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AFP PHOTO워싱턴 D.C.의 연방의회 의사당 주변에 배치된 주방위군 병력들이 1월12일 경비 근무를 서고 있다.

1월13일 현재, 미국 의회는 퇴임을 목전에 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내란 선동’ 혐의다. 미국은 새해 벽두부터 심각한 내홍에 휩싸여 있다.

지난 1월6일, 트럼프 지지 세력들이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당선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던 의사당으로 난입했다. 지난해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광범위한 부정투표가 이뤄졌다며 선거 불복을 주장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로 인해 당선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던 상·하원 의원 수백 명이 대피하고 사상자도 수십 명 발생했다. 이 폭거(내란)의 배후로 트럼프가 지목된 것이다.

1월20일 취임하는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급증 추세인 코로나19 퇴치와 경제회복에 전념해야 하지만 집권 초기부터 ‘트럼프 탄핵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국정의 동력이 떨어질까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불참을 선언한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탄핵 움직임을 ‘정치 역사상 최악의 마녀사냥’이라면서 여전히 지지층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4년 재임 내내 국정 운영에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트럼프는 지난해 11월3일 대선에 패배한 직후부터 두 달 이상 근거 없는 대선 조작과 부정을 주장해왔다.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한 수십 건의 소송을 내는가 하면 일부 공화당 인사들을 협박해 대선 결과를 부인하도록 요구했다. 급기야 바이든 당선자에 대한 의회의 공식 인증이 진행 중이던 1월6일엔 백악관 인근 엘립스 공원에 모인 수천 명의 지지자들 앞에 나가 “우리가 대선에 이겼다. 압승했다. 맹렬히 싸우지 않으면 더는 나라를 갖지 못할 것이다”라며 대선 불복을 노골적으로 부추겼다. 하원이 1월13일 가결한 탄핵소추안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트럼프가 내란을 선동해 미국의 안보와 정부기관을 중대한 위험에 처하게 했다. 미국의 민주제도를 위협했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방해했으며 입법부를 위험에 빠뜨렸다.”

탄핵소추 결의안은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222명과 공화당 10명 등 232명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공은 상원으로 넘어갔다. 미국 헌법에 따르면 하원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통과시키면 상원이 심리를 맡아 통과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트럼프에 대한 하원의 탄핵소추안은 그의 퇴임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통과됐다는 점에서 실제 탄핵 여부를 떠나 정치적 상징성이 크다. 트럼프는 2018년 12월에도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 개입 혐의로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으나 이듬해 2월 상원에서 기각돼 기사회생한 바 있다. 이번엔 ‘내란 선동’ 혐의로 또다시 같은 일을 겪게 되면서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두 번이나 하원에서 탄핵소추를 당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AP Photo1월6일 대선 결과 인증 반대 시위에 참석해 연설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

바이든 취임(1월20일) 이전에 트럼프가 탄핵될 가능성은 낮다. 1월13일 현재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은 1월19일까지 휴회다. 다만 민주당은 바이든 취임과 함께 상원에서도 다수를 장악하게 된다. 지난 1월6일 조지아주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상원에서 2석을 추가 확보(상원 100석 중 50석)한 덕분이다. 공화당도 50석이긴 하다. 그러나 미국에선 부통령이 상원의장을 겸하며 안건의 찬반이 ‘50대 50’인 경우엔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다. 즉, 바이든 취임 이후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상원의장을 맡게 되므로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탄핵소추안은 상원의원 3분의 2인 67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소추안이 가결되려면 적어도 17명 이상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민주당에 동조해야 한다. 트럼프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대거 협조하지 않으면 통과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변수’는 있다. 퇴임 후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출마 가능성이다. 공화당 입장에서도 트럼프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다. 유권자들의 뜻인 대선 결과를 노골적으로 부인하고 불복 운동을 선동하다가 지지 세력의 의회 난입까지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1월12일)는 공화당 내에서 조성 중인 트럼프 탄핵에 대한 공감을 시사하기도 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원내총무는 트럼프가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저질렀음을 인정했다. 그는 향후 탄핵안이 가결되면 당 차원에서의 축출이 좀 더 쉽다는 뜻을 측근들에게 내비쳤다.” 17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이런 인식을 공유한다면 트럼프를 탄핵할 수 있다.

탄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상원은 특정 인사의 공직 진출을 원천봉쇄하는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안건은 3분의 2가 아닌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된다. 민주당만으로(상원의원 50명+상원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이 안건을 통과시켜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출마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트럼프를 둘러싼 공화당 역학구도를 보면 이 같은 전망이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공화당의 베테랑 여론조사 전문가인 프랭크 룬츠는 〈워싱턴포스트〉에 “현재 공화당에서는 △바이든 당선 인정 △대선 부정이 맞지만 대선 결과는 수용 △대선 불복 운동 계속 추진 등 3개 세력이 내전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당내 사정이 복잡한 데다 트럼프의 퇴임 후 정치활동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니 공화당은 매우 난감한 처지다.

하지만 공화당 내부(행정부와 의회)에서 최근 사태에 격분한 나머지 트럼프에게 등을 돌린 분위기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행정부에선 일레인 차오 교통장관과 베치 디보스 교육장관, 매슈 포틴저 국가안보 부보좌관, 믹 멀베이니 북아일랜드 특사 등이 항의 사표를 던졌다. 상원에선 최소 4명 이상의 상원의원이 트럼프와 결별했다. 리사 머카우스키 의원은 “공화당이 트럼프와 결별하지 않으면 당을 떠날 수도 있다”라고 선언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선서를 무시했다”라면서 탄핵안에 찬성할 뜻을 내비친 벤 사세 의원도 있다.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 바이든 인준에 반대한 의원은 고작 8명이다. 하원에서도 트럼프의 즉각 사퇴를 주장한 애덤 킨징어 의원을 포함해 20명 정도가 트럼프 탄핵에 동조적이라고 알려졌다. 트럼프의 반대 호소에도 바이든 인증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하원의원이 72명에 달했다.

ⓒEPA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1월6일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민심도 트럼프에게 불리하다. ABC 방송의 최신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6%가 트럼프가 즉각 대통령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응답했다. 공영방송 PBS 여론조사에서도 48%, 악시오스·입소스 공동 여론조사에서도 51%가 트럼프 탄핵을 선호했다.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진보적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대표적 보수지인 〈월스트리트저널〉도 사설을 통해 의회 난입 사태에 대한 트럼프의 무책임한 선동 행위를 통렬히 비판했다.

트럼프는 극렬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동 사태 이후 사면초가에 빠진 듯한 양상이지만 나름 꿋꿋하다. 그는 사태 후 처음으로 1월12일 공개석상에 나타나 자신의 대선 불복 발언이 “전적으로 적절한 것”이며 자신의 탄핵소추로 “엄청난 분노를 야기하고 있다”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자신을 찍어준 유권자들, 특히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포함한 극렬 지지층이다. 그들을 ‘위대한 애국자’로 치켜세우고 있는 트럼프는 향후 지지층을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벌일 태세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그는 대선 패배 직후 측근들에게 2024년 대선 출마 계획을 밝히고, 바이든 취임 당일 이를 발표하려다 막판에 취소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 납세 실적 등 재정 상황을 선거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데, 그 경우 현재 진행 중인 민형사 소송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트럼프와 통화했다는 공화당 전략가 제이슨 밀러는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는 자신의 후원 계좌로 들어온 수천만 달러를 무기로 2022년 의회 중간선거 때 자신을 지지한 의원들을 돕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2024년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가능성도 열어두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정치 후원 조직인 ‘세이브 아메리카(Save America)’는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1억50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설령 2024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영향력과 선거자금 후원을 무기로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을 쥐락펴락하는 ‘파워 브로커’로 활약할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미국 내 백인 우월주의 단체 199개

트럼프의 이런 힘은 지지자들로부터 나온다.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앞으로 선거에서 살아남으려면 트럼프 지지자들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다. 공화당의 한 상원의원은 의회 전문 매체 〈더힐〉에 “지역구 사무실이 바이든 당선자를 인증하지 말라는 유권자들의 전화로 폭주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지지자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폴리티코〉에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 해도 이 나라 유권자 중 45%는 ‘지난 대선은 부정과 사기로 얼룩진 선거였다’고 믿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7400만 유권자들이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며 대선 부정을 사실로 믿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트럼프 지지 세력 가운데 극단적으로 의사를 표출한 사람들이 바로 의회 난동 사태의 장본인들이다. 바이든은 의회 난입자들을 ‘국내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상태다.

의회 난입자 중에는 백인 우월주의 조직인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 음모론 집단인 ‘큐어논(QAnon)’ 등 극우단체 소속이 상당수다. 국토안보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엔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만 199개에 이른다. 트럼프 재임 전에 비해 55%나 늘었다. 4년 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패한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1월11일자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트럼프를 탄핵하는 것만으론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극단주의자들을 근절하지 못한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형법을 신설하는 등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코로나19 극복과 경제회복에 전념해야 하는 만큼 첫 100일 동안 트럼프 탄핵 심의를 멈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취임 초부터 트럼프 탄핵 사태로 또다시 분열된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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