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행복한 숨 쉬기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2021. 1. 2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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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해가 지척인 남도의 들녘에 어린아이가 바람을 맞고 있다. 고개를 들고 지그시 눈을 감은 아이는 이내 손바닥을 편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천천히 반복한다. 약 20년 전 미국으로 이사 가느라 아버지 산소에 잠시 들렀을 때 두 돌배기 아들의 모습이다. 봄뜻이 완연했고 대도시와 사뭇 다른 시골 공기의 신선함을 어린아이도 몸소 만끽했음에 틀림없다. 행복하게 숨을 쉬는 일은 내게 바로 저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코로나19가 해를 넘기면서 유모차 비닐 덮개 안에 마스크를 쓴 젖먹이들을 간혹 보게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미안하기 짝이 없다. 아직 발걸음도 채 떼지 않은 저 아이들 세대에게는 숨을 잘 쉬는 일의 절박함이 더 커질 것이다. 인간은 보통 1분에 약 17번 숨을 쉰다. 심장이 뛰는 횟수는 공교롭게도 호흡수의 네 배다. 심장과 폐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안으로 산소를 전달하는 생물학적 경계면(境界面)이다.

계면의 특징은 면 안팎으로 물질의 농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대기의 산소 농도는 모세혈관이나 세포 안의 농도보다 높고 반대로 혈액 속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대기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바로 이런 농도 차이를 이용하여 우리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공기가 들어오는 첫 관문은 폐다. 무게가 약 1.1㎏인 폐는 오른편이 무겁고 부피도 더 크다. 왼쪽으로 치우친 심장이 폐가 들어설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최대 부피는 약 6ℓ에 이르지만 실제 성인이 한번 숨 쉴 때 폐로 들어오는 공기의 양은 약 0.5ℓ에 불과하다.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 있을 때 그렇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격하게 운동할 때는 더 많은 양의 산소를 신체에 공급할 수 있도록 폐가 여분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들숨의 5분의 1은 산소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번 숨을 쉴 때마다 폐로 들어오는 산소의 양은 0.1ℓ, 즉 100㏄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 산소의 약 4분의 3은 날숨을 통해 공기 중으로 되돌아간다. 얼핏 보면 상당히 비효율적인 체계라 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산소를 공급할 잉여 공간이 언제든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인공호흡을 할 때 날숨을 불어넣어도 별 탈이 없는 까닭도 바로 이 숫자 생리학에 있는 것이다. 폐를 거쳐 몸 안으로 들어온 산소는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놀랍게도 세포 안으로 들어온 산소 대부분은 물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는 우리가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뱉는다는 호흡의 통념과 상치된다. 하지만 식물이 물을 깨서 다시 산소를 만든다는 엄정한 과학적 사실을 떠올리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산소는 물이 되고 그 물은 돌고 돌아 식물의 몸에서 다시 산소로 변한다. 이산화탄소는 물을 구성하고 있던 고에너지 전자를 버무려 포도당을 만든다. 바로 탄소동화작용이라고도 불리는 광합성이 그 과정이다. 우리는 입을 통해 소화기관으로 들어온 포도당을 이산화탄소로 바꾸어 돌려보낸다. 그것이 바로 호흡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호흡 안에는 ‘변질하지 않는 생명의 원형’처럼 거대한 생물학적 사건들이 시시각각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날숨에는, 들숨에는 거의 없는 이산화탄소가 약 4% 들어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밥을 먹기에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산소를 마시듯 밥을 먹는 동안 평생 우리는 이산화탄소를 내보내야 한다. 한참 숨을 참다가 다시 호흡을 재개할 때는 날숨이 먼저다. 경험적으로 다 아는 사실이다. 거기에 예외는 없다. 생리학자들은 체내에 이산화탄소를 축적하지 않는 것이 호흡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말한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스모그가 가득해 산성비가 내리듯 이산화탄소가 많이 녹아 있으면 혈액도 산성으로 변한다. 산성도가 허용 한계치를 넘기면 우선 효소가 망가지고 생체고분자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

생리학 교과서에 기록된 몇 가지 숫자를 동원하여 어림짐작해 보면 인간이 하루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데 초당 산소 1해(垓)개가 필요하다. 각 세포에 약 1억개의 산소 분자가 배급되고 꼭 그만큼의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행복하게 숨 쉬는 일은 곧 ‘계면하는’ 것들의 쉼 없이 분주한 몸짓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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