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달라도 OK.. 복서는 눈빛으로 말하니까"
캐나다 국가대표 코치 지내 "한국 선수들 습득력·끈기에 반해"
“말은 안 통하지만 선수들은 다 이해해요. 복서들은 눈빛만 봐도 통하거든요.”
한국 복싱 역사상 최초의 여성 코치가 된 아리안 포틴(37)이 푸른 눈을 빛내며 말했다. 키 175㎝인 그는 2006·2008년 AIBA(국제복싱협회) 세계선수권 70㎏급 우승, 2005년부터 팬아메리칸 챔피언십 4연패(連覇)를 달성한 캐나다의 대표적 복싱 선수다. 27일 충북 충주종합체육관에서 만난 그는 트레이닝 바지에 긴 팔 티셔츠와 반팔티를 겹쳐 입은 ‘편한 동네 누나’의 모습이었다. 복싱 얘기를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연신 주먹을 휘두르며 열띤 ‘강의’를 펼쳤다. “세계적으로도 복싱 국가대표 여성 코치는 많이 없어요. 기회를 준 한국에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
포틴과 한국의 첫 만남은 지난해 2월 충북 진천에서 열린 캐나다와 한국의 국가대표 합동 훈련이었다. 임애지(22)에 이어 오연지(31)까지 지난해 3월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 짓자 여성 지도자가 필요해졌다. 지난해 6월 포틴에게 제안하자 하루 만에 ‘OK’ 사인을 보냈다. 입국 제한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일 자가격리를 마치고 본격 합류했다.
캐나다 국가대표 코치로 받고 있던 연봉과 큰 차이가 없었고, 계약 기간도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태평양 너머 동양 국가에서 ‘타향살이’를 주저하지 않은 이유는 ‘한국 선수들의 매력’이었다. 작년의 합동 훈련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한국 선수들이 그에게 먼저 어떻게 펀치를 날려야 하는지, 발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좋을지 서툰 영어로 물어봤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배워서 돌아가려는 게 훈련 태도에서 보였어요. 당연히 습득력도 빨랐죠.”
훈련 첫날부터 매력을 또 느꼈다. 포틴이 처음 참관한 훈련 스파링에서 임애지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는데, 임애지는 그에게 다가가 영어로 “더 나아지겠습니다(I will be better)”라고 말하곤 체육관을 떠났다. 포틴은 “좋은 훈련 태도(work ethic)를 가진 선수가 성장 가능성이 높다”며 “임애지와 오연지는 그런 면에서 뛰어난 선수”라고 했다.
포틴의 현재 직함은 ‘남녀 국가대표 총괄 코치’다. 담당 선수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나동길 복싱 국가대표 총감독은 “포틴이 국가대표 생활 적응을 마치는 대로 본격적으로 선수 육성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의 곁에 전문 통역사는 없지만, 개의치 않는다. “몸과 눈빛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같은 복서끼린 100% 이해한다”고 했다. 자신의 기술을 단 하나만 전수한다면 “꾸준함을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17년이란 비교적 긴 현역 생활을 한 포틴은 “나는 경기에서 지든 이기든 바로 다음 날부터 비디오를 분석해 단점을 보완했다”며 “꾸준함이 내일 당장 발현되진 않지만, 언젠가는 선수 생활을 길게 할 수 있는 ‘보상’으로 따라올 수 있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