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607] 옥작불휘 (玉爵弗揮)
송나라 문언박(文彦博)이 낙양령으로 있을 때 일이다. 옥 술잔을 꺼내 귀한 손님을 접대했다. 관기(官妓)가 실수로 하나를 깨뜨렸다. 문언박이 화가 나서 죄 주려 하자, 사마광(司馬光)이 붓을 청해 글로 썼다. “옥 술잔을 털지 않음은 옛 기록에서 전례(典禮)를 들었지만, 채색 구름은 쉬 흩어지니, 과실이 있더라도 이 사람은 용서해줄 만하다(玉爵弗揮, 典禮雖聞於往記. 彩雲易散, 過差可恕於斯人).” 문언박이 껄껄 웃고 풀어주었다.
이 말은 ‘예기'의 ‘곡례(曲禮)’ 상(上)에 “옥 술잔으로 마시는 자는 털지 않는다(飮玉爵者弗揮)”고 한 데서 나왔다. 옥 술잔에 남은 술을 털려다가 자칫 깨뜨리기가 쉬우니 아예 털지 말라는 뜻이다. 옥 술잔을 깨뜨린 것은 혼이 나야 마땅하지만, 채색 구름은 금방 흩어진다. 저 젊은 관기의 어여쁜 용모도 얼마 못 가 시들고 말 테니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다. ‘동고잡록(東皐雜錄)’에 나온다. 다산도 이 글을 ‘목민심서'에 인용했는데, 관기를 관노(官奴)로 잘못 적어 문맥이 이상해졌다.
백거이(白居易)는 소간간(蘇簡簡)이란 어여쁜 13세 소녀가 일찍 죽은 것을 애도해 지은 ‘간간음(簡簡吟)’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대부분의 좋은 물건 단단치가 못하니, 채색 구름 쉬 흩어지고 유리는 잘 깨진다네(大都好物不堅牢, 彩雲易散琉璃脆).” 귀하고 좋은 것은 깨지기 쉽고, 노을빛이 곱고 아름답지만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그것이 더 아깝고 귀하다.
한위공(韓魏公)이 높은 벼슬에 있을 때 1백금을 주고 옥 술잔 한 쌍을 샀다. 밭 갈던 자가 옛 무덤에서 얻은 것으로, 흠집 하나 없는 희귀한 보물이었다. 하루는 귀한 손님을 맞아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아전 하나가 잘못 다뤄 옥 술잔 두 개가 다 깨졌다. 그는 낯빛을 바꾸지 않고 좌중의 손님에게 말했다. “물건이 이루어지고 부서지는 것 또한 절로 때가 있는 법이지요.” 아전을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잘못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니 어찌 죄가 있겠느냐?” 귀한 옥 술잔을 부주의로 깬 것은 아깝지만, 아랫사람의 실수를 보듬어 감싸는 윗사람의 뜻이 참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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