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특단'의 대책이 불안하다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2021. 1. 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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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월18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공급에 있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려 한다”는 언급이 있었다. 공공재개발, 역세권 개발, 신주택지의 과감한 개발을 통해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을 일거에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특단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특단’은 어떤 행위의 강렬함이나 각별함이 보통 정도를 훨씬 넘은 상태를 말한다. 생경한 일본식 어투니까 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시장이 예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정책에 대한 언급은 오히려 불안감을 더했다. 이미 정부는 2020년 8월 수도권 127만호, 서울 36만4000호 주택을 순차적으로 공급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특단의 조치란 여기서 더 나아간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투기수요 억제 일변도의 정책은 2017년 8·2대책에서 시작하여 2020년 6·17대책, 7·10대책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2020년 8·4대책이 나온 후부터는 여야를 막론하고 공급 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정책 논의가 한 극단에서 또 다른 극단으로 쏠리고 있다.

주택 공급에는 시간이 걸린다. 공공택지 개발은 해당 지자체가 반발하고 있다. 정비사업은 분양가상한제, 초과이익환수제, 기부채납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벽을 넘어야 한다. 무리하게 추진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역점을 둔 역세권 청년주택은 비싼 임대료가 문제였다. 규제완화로 물량을 늘리자는 논의에 벌써 역세권 부동산 값이 들썩인다는 소식이 들린다.

2010~2019년 서울시내 아파트 입주물량은 연평균 3만1000호였다. 2021년 서울 신규 입주물량은 약 2만5000호, 2022년에는 1만3000호로 예상된다. 3기 신도시의 물량 공급은 2020년대 중반에나 가능하다. 향후 4~5년간 공급불안의 협곡을 거쳐야 하는데 이 시기를 잘 관리해야 한다. 그간의 수요억제 일변도의 정책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지만, 물불 가리지 않는 공급대책은 시장 불안을 더 가중시킬 수 있다. 선거를 앞둔 비이성적 과속이 걱정이다.

그간 한국의 주택공급은 국가-공급자-수요자의 개발동맹에 의해 이루어졌다. 수요억제나 공급확대 일변도로 주거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공적 투자재원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국가 주도의 주거복지체제를 단번에 형성할 수도 없다. 정책의 극단적 순환을 경계하면서 차분하고 원칙적인 행보를 취하는 것만이 민생의 고통을 줄이는 길이다.

마법의 묘책을 단언하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공공택지, 정비사업 등 공급방안을 꾸준히 추진하되 6·17대책, 7·10대책을 일부 조정하여 시장기능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도심 용적률을 일거에 높이면 초고밀화의 비용도 급증한다. 다핵 교통망에 투자하고 기존 신도시부터 재정비하는 게 순서다. 장기적으로는 사회주택 비중을 늘려 공공-사회-영리 부문의 협력모델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세제를 가격안정의 수단으로 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역대 모든 정부가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는 고가주택 중심으로 보유세 강화를 추진하다 가격 안정기에는 이를 다시 조정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현 정부도 보유세를 보편적·점진적으로 강화하기보다는 차등적·급진적 조치로 급선회하는 길을 택했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식이 아니다.

사회과학과 정책의 세계에서도 교과서적 틀이 있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 물론 최적의 정책은 사전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탐색을 통해 얻는 것이다. “이것만이 정답이다”라는 말은 주술의 세계에 가깝다.

지금은 왕년의 노멀이 무너지고 있는 시기다. 사회과학의 표준을 제시했던 서구도 변화 속에 있다. 안병진 교수에 의하면 미국조차도 연착륙(점진주의적 적응), 레트로피아(복고적 환상), 유토피아(새로운 헤게모니) 등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이행기에 있다고 한다. 책임지는 입장이라면, 이행에 대한 연착륙 방안도 숙고해야 한다.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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