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트윈스 류지현 신임 감독 "말의 힘 절감..귀 열어 마음 얻겠다"
[경향신문]
어쩌면 가장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 프로야구 감독의 시즌 전 약속이다. 연일 이어지는 승부 속에서 처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즌을 끝내는 사령탑이 숱하다.
류지현 LG 신임 감독은 ‘초보 사령탑’이지만 지도자 이력은 초보 같지 않다. 2005년 플레잉코치로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은 뒤 시작한 지도자 생활. 2년간 시애틀 매리너스로 해외 연수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LG 코칭스태프로 지도자 이력을 차곡차곡 쌓았다.
류 감독 또한 지난 20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약속 하나를 했다. 류 감독은 그중 하나로 “게임 중에 선수가 어떤 실수를 하거나 좋지 않은 모습이 나왔을 때 감독은 입으로 그에 대해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시즌을 준비하는 나로서는 꼭 지켜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입보다는 귀의 리더십
감독의 혼잣말, 팀 전체를 흔들어
게임 중 실수에도 말조심할 것
김경문 감독 감정 컨트롤 롤모델
류 감독이 스스로 말조심을 다짐한 것은 말의 힘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그런 상황에서 혹여 감독이 어떤 말을 했을 때 해당 선수는 그라운드에 나와있어 그 말을 듣지 못할 수 있지만, 동료선수들이 더그아웃에 앉아있다. 그런 경우, 팀에 분명히 영향이 간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생각과 행동을 같이하기는 늘 어려운 법이다. 류 감독은 ‘감정 컨트롤’의 롤모델로 김경문 야구대표팀 감독을 떠올렸다. 류 감독은 “김경문 감독님이 경기 중 화면에 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선수가 실수하거나 삼진을 먹고 들어올 때 박수를 쳐주는 모습이 좋아보였다”며 “그런 상황이 아쉬움이 없을 리 없고 속에서 끓어오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게 하셨다. 배워야 할 모습”이라고 말했다.
류 감독이 감독실 한쪽 벽에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커다란 액자를 걸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말이다. 류 감독은 “예전부터 늘 마음속에 담아둔 말이다. 그래서 액자로 걸어두려 준비하던 중에 구단에서 선물을 해주셨다”며 고마워했다.
■표현은 선수 몫으로
90년대의 신바람 되찾아가는 중
주장 김현수의 ‘파이팅’ 고마워
선수들 자신 믿고 맘껏 뛰어주길
스타군단으로 통하던, 90년대의 LG는 표현의 왕국이었다. 선수의 작은 몸짓조차 세리머니로 승화돼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곤 했다. 2000년 암흑기를 거치면서 특유의 문화와 점차 멀어져갔던 LG는 최근 한두 시즌 사이 다시 그라운드에서 이른바 ‘신바람’을 되찾아가고 있다.
류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성적이 동반되지 않다 보니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위축돼 있는 게 보였다. 코치로서뿐 아니라 선배로서 그 부분은 너무 안타까웠다”며 “아무리 벤치에서 활기차게 해달라고 얘기해도 지도자가 언급하는 건 지시형이 되고 만다. 그런데 최근 3년간 우리 더그아웃 분위기가 무척 밝아졌다. 이런 부분은 굉장히 긍정적 신호”라고 말했다.
류 감독이 주장 김현수에게 고마운 마음인 것도 이 때문이다. “(김)현수가 일부러 더 ‘V자’를 그려 보이고 하는 것은 젊은 후배선수들에게 속에 있는 것들을 조금 더 내놓으라는 뜻이다. 위축되지 말고 보여주라는 것인데 지도자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것들을 선수 스스로 만들어내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초 날아온 문자 메시지
류 감독은 이달 초 한 오랜 팬으로부터 신년 인사를 담은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LG 트윈스 감독님이 되신 것도 너무 축하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LG 트윈스의 감동님으로 남아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류 감독은 “그 메시지가 마음에 크게 왔다.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LG 트윈스 출신 감독 팀 정서와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을 앞세우겠다. 그러다 보면 성적도 따라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류 감독이 2월1일 시작될 이천 캠프에서 가장 먼저 꺼낼 말도 같은 흐름 속에 있다. “LG 트윈스의 이름으로 선수들 모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선수들도 기량이 정점에 올라와 있는 때이기도 하다. ‘본인을 믿고 뛰어라. 하고 싶은 표현을 과감하게 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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