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지 않는 정치..'고인 물' 보궐선거

박순봉·박광연·심진용 기자 입력 2021. 1. 27. 21:08 수정 2021. 1. 2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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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보선..그때 그 사람들

[경향신문]

주요 정당 후보들 재수·3수
‘대중이 인정’ 장점 있지만
새 시대정신·어젠다 없어
강화된 검증·상향식 공천
정치 신인엔 ‘걸림돌’ 작용

오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그때 그 사람들’이 다시 주인공이 되고 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지우고 나면, 현재 여야 주요 후보들은 과거에도 등장했던 이들이다. 10년이 지났어도 등장인물은 그대로다. 새 인물, 새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에 새로운 인물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이 같은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권은 왜 ‘고인 물’이 됐을까.

■높아진 시민의 기대, 까다로워진 검증

“기업가를 영입하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정당에서 새 인물 영입을 담당했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에 오지 않으려는 이유로 검증 절차에 대한 두려움을 들었다. 정치인 등 공직자를 바라보는 시민 눈높이가 높아지고, 정치권의 검증 과정도 엄격해진 결과다.

인사청문회가 대표적이다. 인사청문회는 2000년 도입 당시 국회 동의가 필요한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 등만 대상으로 했으나 2003년 국가정보원장, 2006년 장관 등 국무위원, 2012년 공정거래위원장과 한국은행 총재 등으로 확대됐다. 요구 조건도 까다로워졌다. 문재인 정부에선 7대 인선 조건을 내걸었다. 정당들도 국회의원·지자체장 후보 검증 절차를 강화해왔다.

자연스럽게 신인의 정치권 진입은 어려워졌고 기성 정치인들이 나섰다. ‘신입사원’ 없는 곳을 ‘경력직원’이 채우게 된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보면,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중 국회의원(115명)과 정당인(102명), 즉 기존 정치인은 217명에 이른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만 놓고 보면 신진 인사가 더욱 도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선 전초전으로 여야가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적잖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넥스트 아닌 포스트’에 머문 정치인들

정치를 오래했다는 점이 흠결은 아니다. 장점이 될 수 있다. 전문성을 가질 수 있고, 오랫동안 대중에게 인정받았다는 뜻도 있다. 문제는 새로운 시대정신 또는 새로운 의제가 없다는 점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통화에서 “ ‘옛날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옛날 생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선 의원=구태 정치인’으로 귀결되는 이유는 과거를 답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례를 들었다. 메르켈은 2005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다. 서 교수는 “메르켈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새로운 어젠다를 던지기 때문”이라며 “기후, 불평등 등 새 의제가 제기되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생명력을 이어간다”고 평가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여야 후보들의 정책은 부동산과 교통에 국한돼 있다. 전직 시장의 계승 또는 타파에 초점이 있다. 자신만의 새로운 어젠다를 내놓은 경우는 보기 힘들다.

■상향식 공천의 역설

여야 모두 채택하고 있는 상향식 공천은 역설적으로 정치권의 새 인물 영입의 걸림돌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계파를 이끌었던 과거 보스형 정치인들은 ‘찍어서’ 새 인물을 영입할 수 있었다. 이들의 시대가 저문 지금 정치권에선 상향식 공천이 대세다. 여론조사가 많이 반영되는 상향식 공천은 국민 뜻을 넓게 반영한다는 점에선 장점이 있다. 하지만 경험과 인지도가 부족한 신인들에게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예전 같았으면 보스가 신인을 꽂아서 자리를 만들어줬다”며 “이제는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야 해서 신인이 정치권에 들어오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운동권 시대 VS 탄핵 낙인

여야의 정치적 상황도 작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추진 역풍으로 대승을 거뒀던 17대 국회의원들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당시 대거 정치권으로 영입된 운동권 출신들이 민주당을 주도했다. 윤태곤 실장은 “17대 국회 때 들어온 사람들의 규정력이 굉장히 크다”며 “친문(재인계)으로 범주화되면서 (세력의) 다양화가 이뤄지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도 “정치적인 기득권층인 386 정치인들만 돌고 도는 시스템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박근혜 정부 당시 사람을 키우지 않은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박 전 대통령 때 인재를 안 키웠다. 목소리가 다르면 친박계를 동원해서 목 조르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내쫓았다”고 말했다.

탄핵 낙인 효과도 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와 관련된 사람들은 파산당한 회사의 임원과 다를 바 없다”며 “낙인이 찍혀 신선함을 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순봉·박광연·심진용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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