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집콕에 층간소음 갈등 '폭발'.. 중재기구·지자체도 역부족

윤한슬 2021. 1. 27. 21: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집콕' 생활 늘며 지난해 층간 분쟁 61% 급증
이웃사이센터, 중재 시도하지만 강제성 없어
자구책 마련하거나 갈등 누적돼 인명피해도
층간소음. 게티이미지뱅크

"새벽부터 쿵쿵쿵, 발망치 소리가 들려와요. 할 수만 있다면 이사를 가고 싶어요."

경기 지역 아파트에 사는 전모(51)씨는 윗집에서 들려오는 천둥같은 소리에 매일 밤잠을 설친다. 전씨의 불면은 2년 전 4남매를 둔 가족이 윗층으로 이사 오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시끄러운 TV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지고, 아이들과 어른들의 쿵쾅쿵쾅 발소리가 밤낮으로 들려오는 통에 신경증(노이로제)이 생길 정도로 고통스럽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부활동 대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층간소음 분쟁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27일 한국환경공단에서 운영하는 층간소음 중재기구인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2019년 2만6,257건이던 층간소음 상담 신청 건수는 지난해 4만2,250건으로 60.9% 급증했다.

통계상 층간소음 원인의 대부분은 '발망치'로 불리는 이웃 주민의 발걸음 소리다. 이웃사이센터에 201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접수된 5만4,099건의 상담을 분석한 결과, 뛰거나 걷는 소리로 인한 피해가 3만6,856건으로 68.1%를 차지했고, 망치질 소리 2,267건(4.2%), 가구 끄는 소리 등이 1,941건(3.6%) 순으로 조사됐다.


이웃사이센터, 강제성·실효성 논란

소음 원인별 층간소음 접수현황.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제공

층간소음 논란은 아파트 주거가 보편화된 이후 계속된 해묵은 갈등이지만, 피해자들은 이사 외에는 해법도 대안도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 관련 분쟁조정위원회나 소음 전문 중재기구인 이웃사이센터가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권고에 강제성이 없고 소액의 금전 보상 수준에 그쳐 '소음 감소'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쉽지 않다.

층간소음을 일으키는 세대가 발뺌하면 중재를 시작하기조차 어렵다. 4남매 가족에 시달리는 전씨가 바로 그런 경우를 당했다. 윗집이 "우리 애들은 안 뛴다"고 막무가내로 나오는 바람에 관리사무소마저 개입을 포기했고, 결국 전씨는 이웃사이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윗집이 이웃사이센터 요청에도 응하지 않아 전씨는 센터 상담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문제가 공론화되면 소음 유발 세대가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권모(40)씨는 여러 번 관리사무소를 통해 윗집에 소음 자제를 요청했지만, 오히려 더 큰 소음이 되돌아왔다. 이웃사이센터 상담도 보복이 두려워 신청했다 취소하길 반복했다.

어렵게 상담이 시작되더라도 신속한 처리를 보장받기기는 어렵다. 1년 전 이웃사이센터에 층간소음 데시벨(dB)측정을 신청한 윤모(32)씨는 지난달에서야 센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윤씨는 "측정을 기다리는 사이 소음을 내는 집은 이미 이사를 가버렸다"며 "1년이나 층간소음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안하무인 이웃집… 피해는 고스란히 '내 몫'

2014년 정부가 마련한 층간소음의 법적 기준. 공동주택 층간소음 규칙

정부가 규정한 층간소음 기준에 현실성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는 50데시벨 안팎의 소음이 법적 층간소음의 기준이다. 기준치를 초과하면 이를 근거로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거나 민사소송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준에 미달하는 소음도 피해가 상당하다는 것이 층간소음 피해자들의 호소다.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김모(34)씨는 2019년 12월부터 윗집과 아랫집 양쪽에서 들어오는 '샌드위치 소음 피해'를 겪고 있다. 관할 지자체에도 문의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지난해 이웃사이센터 상담을 시작했지만, 여기서 문제 해결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소음을 측정하더라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준에 못 미치는 소음이어도 계속 들으면 정말 힘들다"며 "제도에 허점이 많아 층간소음 피해자들은 계속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이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이, 갈등은 누적되고 때론 곪아 터지기까지 한다. 층간소음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위층에 경고나 보복을 하기 위한 우퍼 스피커 설치, 고무망치 활용 등 자구책용 비법을 소개하는 후기가 잇따른다.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다투다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숨지게 한 40대가 최근 대전고법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는 등,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층간소음 갈등도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현 제도로는 층간소음 문제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아파트 층간 간격을 넓히는 등의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신축에만 적용될 뿐 기존 아파트 소음 문제는 계속 이어지게 된다. 이승태 법무법인 도시와사람 변호사는 "현 제도 하에서는 소음 유발세대가 비협조적이라면 도움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며 "지금으로선 사실상 개개인이 조심하도록 바뀌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